책이야기 365

책을 읽다가 [서울 말고]

책을 읽다가 [서울 말고]수정 2024-06-02 19:18등록 2024-06-02 19:13  게티이미지뱅크  이고운 | 부산 엠비시 피디  어린 시절, 부모님이 집을 비울 때면 까치발을 들고 부모님의 책장을 구경했다. 한자가 많아 도저히 읽을 수 없는 책, 사진이 많아 읽기 좋은 잡지, 손때 묻은 소설책을 뒤적이다 보면 가끔 부모님이 선물 받은 것 같은 낡은 책들도 만났다. 그런 책의 첫 장엔 꼭 어른스러운 글씨로 새겨진 짧은 문장이 있었다. 나의 소중한 친구에게, 천구백팔십몇년 모월 모일. 그런 글씨를 볼 때면 내가 모르는 시절의 부모님에게 누군가 건넸을 어떤 단정한 마음에 대해 상상했다. 쑥스럽지만 손글씨가 새겨진 책이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선물 같다고 믿던 시절도 있었다. 그 무렵 누구에게, ..

책이야기 2024.06.09

‘창가의 토토’에게 배운 자유

‘창가의 토토’에게 배운 자유입력 : 2024.06.06 20:46 수정 : 2024.06.06. 20:49 김봉석 문화평론가  구로야나기 데쓰코의 자전 소설을 각색한 애니메이션 창가의 토토>.  매월 마지막 수요일에는 영화를 보러 간다. 문화의날이라 영화 관람료가 절반이다. 하루 중에 할인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그래도 일정을 맞춰 보러 간다. 코로나를 거치면서 관람료가 1만5000원까지 올랐기 때문에, 잘 모르겠는데 일단 아무 영화나 보러 갈까라는 선택은 사라졌다. 이 영화를 꼭 보고 싶은지, 몇번이나 생각하고 신중하게 결정한다. 5월의 마지막 수요일, 집에서 가까운 극장의 상영표를 살펴봤다. 시간대로 훑어내리다, 창가의 토토>를 발견했다. 내가 아는 창가의 토토> 맞나? 개봉 소식을 어디에서도 듣..

책이야기 2024.06.08

버섯과 원고료

버섯과 원고료입력 : 2024.06.03 20:27 수정 : 2024.06.03. 20:32 심완선 SF평론가  막막(makmak)을 뒤집으면 캄캄(kamkam)이라는 말장난을 보았다. 관점을 바꿔도 앞이 보이지 않는다니, 어쩜 그리도 막막하고 캄캄한지…. 작가로 지내면서 나도 종종 그런 감정에 빠졌다. 마감일이 코앞인데 한 글자도 쓰지 못했을 때. 당장 닥쳐오는 일정에 허덕이느라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 프리랜서로 몇년 혹은 몇십년을 버틸 수 있을지 궁금해질 때. 통계청의 예술인 실태조사를 참고하면 작가 중에서 예술활동으로 최저임금 이상의 소득을 얻는 사람은 전체의 10% 이하다. 앞날이 창창한 사람이 한국에 얼마나 많겠냐마는, 책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상당량의 불안과 우울을 공유하는 편이..

책이야기 2024.06.04

원초를 향해 나아가는 문학

원초를 향해 나아가는 문학입력 : 2024.05.22 20:48 수정 : 2024.05.22. 20:49 인아영 문학평론가  1920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지만 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생후 2개월에 브라질로 이민 간 여아가 있었다. 10대에 어머니를 잃고 가난한 이민자로 살았지만, 문학을 몹시 사랑했고 1943년 23세에 출간한 첫 소설 야생의 심장 가까이>로 포르투갈어로 쓰인 최고의 소설이란 평을 들었다. 포르투갈어에 강한 애착이 있었지만, 이국적 이름 탓에 명성을 얻은 후에도 브라질에서 이민자 작가로 여겨졌다. 키 큰 금발에 화려한 외모로도 주목받았지만, 수줍음 많고 예민한 성향으로 세간의 오해를 사기도 했다. 평생 브라질의 버지니아 울프라 불렸지만, 울프의 자살을 용서할 수 없다며 작가에게 주어진 ..

책이야기 2024.05.24

편집자가 눈에 선해지기까지

편집자가 눈에 선해지기까지입력 : 2024.05.19 20:35 수정 : 2024.05.19. 20:41 이슬아 작가  한창 책을 만드는 시기엔 꿈에 꼭 편집자가 등장한다. 꿈속에서 편집자는 휴양지로 도망친 나를 기어코 찾아내거나(도대체 어떻게 알고 오셨을까) 별 수확이 없을 게 뻔한 나의 텃밭을 둘러보며 해결책을 강구하고(마냥 송구스럽다) 혹은 별말 없이 내 책상 근처에 앉아 그저 커피를 홀짝이곤 한다(이 경우가 가장 신경 쓰인다). 무의식에서도 편집자가 보일 만큼 출간 과정 내내 그를 의식하며 지내는 것이다. 문학 편집자로 일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신뢰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글을 읽고 돌려주는 피드백에는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데뷔 전부터 나는 여러 편집자들 근처를 맴돌았다. 무수한 작가들의..

책이야기 2024.05.21

온갖 열망이 온갖 실수가

온갖 열망이 온갖 실수가입력 : 2024.05.16 20:46 수정 : 2024.05.16. 20:50 김해자 시인   나는 고요하게 몸을 부풀리는 중일 초 일 초 아주 조금씩 늘어나는 중내일 보면 모르겠지 일년 후에도 모를 거야멀리서 돌아보면 나는 커져 있을 예정스멀스멀 징그럽게한이나 화 나뭇가지 이것저것 모아서너를 지우기 위해 말이지약한 자라 참고 있는 거 아니냐 하면맞아 난 강해져도 티내지 않는식물성 힘을 갖게 될 거야 크게 자라신령하게 될 거야모두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게 될 거야기도하는 손들 점점 늘어술과 떡을 바치게 될 거야어느 날 벼락을 맞을지도 모르는 일 그러나알 바 있니 늘어나는 중인데 부푸는 중인데세상의 이치를 거슬러 시간을 뛰어넘어고요하게 날뛰는 중인데물을 머금고 공기와 스킨십하며 - ..

책이야기 2024.05.17

같이 읽으면 즐겁지 아니한가 [조형근의 낮은 목소리]

같이 읽으면 즐겁지 아니한가 [조형근의 낮은 목소리] 부유할수록 책을 많이 읽고, 가난할수록 책에서 멀어진다. 공공도서관, 서점이 부족한 지방도 책에서 소외되기는 마찬가지다. 독서를 순전히 개인적 행위로 간주하고 책을 시장에 맡기면 이런 불평등을 교정할 길이 없다. 공공도서관과 지역서점을 포함한 독서생태계 형성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수정 2024-05-14 19:37 등록 2024-05-14 19:15  일러스트레이션 노병옥  조형근 | 사회학자  “밤 열두시에 문 닫는 거는 인자 고마하입시더. 그 시간에 누가 온다꼬.” 어머니는 애절했다. “안 돼요. 책방을 열어둬야 길이 환하지. 책 사는 학생들도 있고.” 아버지는 단호했다. “새벽 여섯시부터 밤 열두시까지 말이 됩니꺼? 사람 쫌 삽시더.” 책방 ..

책이야기 2024.05.15

은미(隱微)한 당신

은미(隱微)한 당신입력 : 2024.05.08 20:08 수정 : 2024.05.08. 20:10 고영직 문학평론가  “난 평이 니가 시를 쓰고 읽어줄 때가 너무 좋아. 그럴 때면 너한테서 막 빛이 난다. 반딧불 천 마리가 모인 것처럼. 네 시를 읽으면 눈물이 나고 마음이 맑아지고 힘이 나. 난 알아. 넌… 강한 아이야. 평아, 넌 꼬옥 훌륭한 시인이 될 거야.” 1980년대 ‘얼굴 없는 시인’으로 잘 알려진 시인 박노해의 첫 산문집 눈물꽃 소년>(2024)에 수록된 수필 ‘연필 깎는 소녀’의 한 대목을 읽다 울컥하는 마음이 일었다. 근래 읽은 책들 가운데 가장 윤기 나는 물기가 있고, 뭉클한 감동이 있는 책이었다. 만약 당신이 어린 ‘평이’라면 마음이 어땠을까. 내 곁에서 나를 편들어주고 기꺼이 품어주..

책이야기 2024.05.11

글쓰기는 포롱포롱

글쓰기는 포롱포롱입력 : 2024.05.08 20:12 수정 : 2024.05.08. 20:29 성현아 문학평론가  이번주에는 담당하는 교양 강의에 특강 강사로 한 시인을 모셨다. 강의를 시작하며 시인은 한 편의 에세이를 보여주었다. 그러고는 “누가 쓴 글 같아요?”라고 물었다. 사유도 문장도 아름다운 완성도 높은 글이었다. 나는 우리가 함께 아는 여러 작가를 떠올렸다. 친하다고 말했던 그 소설가의 글인가? 아니면 수필집을 펴낸 그 시인의 것일까? 학생들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이 글은 코미디언의 글입니다.” 나를 비롯해 강당에 앉은 이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방송에서 보아왔던 유쾌한 이미지와 사뭇 다른 진중함에 놀란 것이기도 하겠지만, 다들 그 글을 전문 작가가 썼다고 추측했기 때문일 테다..

책이야기 2024.05.09

모르는 단어를 기대합니다

모르는 단어를 기대합니다입력 : 2024.05.06 20:07 수정 : 2024.05.06. 20:09 심완선 SF평론가  창피한 기억이 있다. 내가 열 살 언저리였던 때, 어느 공터에 있는 트럭에서 ‘어름’을 팔고 있었다. 지나가던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트럭 쪽으로 돌아가 주인아저씨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어름은 틀렸어요. 얼음이라고 써야 맞아요.” 아저씨는 웃으면서 자기가 몰랐다고, 알려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덕분에 나는 조금 간질간질하고 뿌듯한 기분으로 집에 도착했다. ‘어름’이 예전에는 맞는 표기였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조금 겸허함을 배웠다. 어린이를 대하는 방법도 약간은 배운 듯하다. 이때 배운 겸허함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SF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가 되었다...

책이야기 2024.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