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어른의 덕질

닭털주 2022. 2. 11. 12:22

어른의 덕질

남경아 서울시50플러스재단 일자리사업본부장

 

 

 

두 달 전 유튜브 프리미엄 유료 서비스를 신청했다. 방탄소년단(BTS)의 음악과 영상에 집중하고 싶어서다. 고백하건대, 나는 요즘 BTS에 빠졌다. 우연히 작년 9BTS의 유엔총회 연설과 유엔회의장을 배경으로 한 퍼미션 투 댄스를 보았다. 그 자체로도 대단했지만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세대 간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기성세대가 ‘BTS 대단하네라고 했다면, MZ세대는 유엔 대단한걸?’이 압도적이었다. 무척 흥미로웠고 처음으로 그들이 궁금해졌다.

 

덕질’, ‘덕후MZ세대에게 익숙한 이런 말들은 이제 대기업 신입사원 면접 질문으로도 등장했다. 세대를 불문하고 다양한 분야와 장르 구별 없이 덕질이 일상화된 시대가 된 것 같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지행 중앙대 교수는 과거 세대에게 삶의 인식과 동질감을 형성하게 한 요소가 신념이었다면, 최근에는 취향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그 자리를 대신하며 세계에 대한 인식을 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절친인 천둥작가를 통해 덕질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록밴드에 빠졌다. 오랫동안 자가면역 질환을 앓고 있는 그녀는 특히 바람과 햇볕에 취약하다. 이런 그녀가 전국을 쫓아다니며 두세 시간의 스탠딩을 불사하고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과 교류하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일종의 간증을 듣는 것처럼 경건해졌다. 친구는 덕질 덕분에 오랜 지병과 갱년기의 파고를 무난히 피해 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덕질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담은 <요즘 덕후의 덕질로 철학 하기> 단행본까지 발간했으니 그야말로 덕후로 인생이 바뀐 사례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의 트로트 열풍으로 보는 오팔 세대의 부상과 팬덤 경제보고서에 따르면 5060세대는 팬덤 활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사회생활을 할 때와 같은 활력을 느끼며, 젊은 세대보다 결집력과 행동력이 매우 강하며 지속성이 긴 편이라고 한다. 덕질에 나이 구분이 따로 있겠냐마는 자신이 원하는 삶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중년기야말로 덕질 하기에 딱 좋은 시간이 아닐까 싶다.

덕질과 관련해 내가 주목하는 것은 몰입설렘이다.

오직 설렘만이 생기와 재미를 공급한다. 나이 들어도 밥 먹듯 설렘이 필요하다는 김재환 영화감독의 글을 읽으며 감탄을 자아낸 기억이 있다. 나이 들수록 쓸데없이 눈물은 많아지는데, 뭘 봐도 감흥이 떨어지는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씁쓸했다. 나는 미친 듯 열정적으로 무엇에 빠져본 적이 있던가!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좋아하고 몰입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덕질로 작가가 된 내 친구조차 아직까지 본인의 얘기를 꺼낼 때마다 긴장이 된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나는 덕질에 대해 편견이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찌 보면 지금이 크고 작은 다양한 사회적 편견에 맞설 용기와 맷집을 키워야 할 시간이 아닐까?

 

BTS가 좋다고는 했지만, 나는 아직 덕후라 하기엔 애매하다. 내 마음 깊숙한 곳 조용히 자리 잡은 이 감정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혹시 아는가? 조만간 나도 BTS 월드 투어를 쫓아다니며 괴력을 발휘하게 될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상상이 현실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