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전쟁은 인간의 얼굴 속에 있다

닭털주 2022. 3. 8. 12:03

전쟁은 인간의 얼굴 속에 있다

 

 

 

5(현지시각) 저녁 폴란드 바르샤바 중앙역이 자원봉사자들과 우크라이나에서 온 난민들로 북적이고 있다. 바르샤바/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조해진 | 소설가

 

 

전투기 조종석에 앉으면 무엇이 보일까.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 공군의 관련 문서 10만여장을 분석하여 집필했다고 알려진 김태우의 <폭격>(창비)을 읽은 뒤부터, 나는 내 삶과 무관한 전쟁 중의 전투기 조종석을 상상해보곤 했다. 그 자리에서는 사람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분명하다. 폭탄이 투하되기 전의 일상 속 얼굴뿐 아니라 투하 이후 죽거나 죽어가는 얼굴 역시 구름 위에서는 확인할 수 없을 터이다. 고통받는 구체적인 얼굴 대신 불길과 연기, 무너진 건물만 보이는 곳에서 죄책감은 당연히 옅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나는 폭격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을 죽여야 하는 전쟁에서 감정마저 마비될 때 광기는 폭발하고 비극은 더 큰 비극으로 치달을 테니 말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는 바로 우크라이나에 폭격을 퍼부었는데, 그 폭격은 군사기반시설만을 목표로 하는 정밀폭격이 아니었다. 러시아는 최첨단 기술로 정밀폭격을 했다고 주장했지만, 전쟁 초기부터 우크라이나의 아파트와 학교 등이 불타고 무너지는 광경은 그 주장이 애초부터 지킬 마음이 없는 헛된 공언임을 증명했다.

공중에서 떨어지는 폭탄과 지상의 인간은 그 힘의 불균형으로 싸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폭격이 지나간 곳에는 되돌릴 수 없는 대규모의 죽음이 남지만 그 공격과 희생은 모두 일방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알고 있다.

잿더미가 된 도시 자체도 충분히 참담하지만 그보다 더 큰 참담함은 그곳에서 희생된 사람과 그 희생자를 사랑하는 생존자들, 바로 그 얼굴 속에 있다는 것을.

이런 영상을 보았다.

가족과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폭격으로 머리를 다친 소녀가 허름한 병실에 누워 심폐소생술을 받고 있을 때, 곁에 서 있던 의사는 푸틴에게 이 소녀의 눈을 보여주라며 절망적으로 외친다. 소녀는 결국 죽었다. 전투기 조종사는 사각형 건물을 보며 폭탄 투하 버튼을 눌렀겠지만 그 폭탄은 소녀를 죽게 했고 그 죽음을 지켜보는 사람들을 울게 했다. 전쟁의 본질은 이런 것이다.

사실 나는 뉴스나 유튜브로 우크라이나의 피해 상황을 실시간으로 목도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할 수 없어 한동안 영상 매체에 선뜻 접속하지 못했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후)을 아껴 읽은 기억 때문이었다.

<타인의 고통>에서 작가는 전쟁의 잔인한 이미지를 열거한 뒤 이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과 값싼 연민을 경고한 바 있다.

그러나 막상 관련 영상을 접하고 나자 나는 내 걱정이 조금은 기우였음을 안도하며 인정하게 됐다.

폭격을 피해 고향을 떠난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담요와 먹을 것을 챙겨주기 위해 대가 없이 국경 지대로 달려온 폴란드 사람들을 보면서, 포로로 잡힌 어린 러시아 군인에게 빵과 차를 내주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보면서, 전쟁의 어떤 영상은 희망으로 독해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2022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으며 타인의 고통을 분담하려는 마음을 공유하고 있다는 환한 신호를 확인한 기분이었다.

전쟁은 비참하다. 쓸모없는 쓰레기 짓이다.

그런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훨씬 더 좋았겠지만, 한편으로는 피해자 편에서 연대한 이 방식은 이번 전쟁으로 습득한 귀한 자산이라고 믿고 싶기도 하다.

미래의 그 어떤 전쟁에서도 우리는 이 방식을 기억하며 함부로 침공을 선택한 국가를 제재할 것이고 침공당한 국가의 사람들은 각자의 여력 안에서 도울 것이다.

물론 미래는 미래일 뿐이다.

지금은 그저 하루빨리 이 전쟁이 끝나기를,

더는 희생되는 사람이 없기를,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을 보여줘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