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말글살이] 내연녀와 동거인

닭털주 2023. 4. 11. 17:42

[말글살이] 내연녀와 동거인

 

 

최태원 에스케이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 연합뉴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가끔 연락하는 <한겨레> 기자가 있다. 말을 주제로 기자끼리 토론이 붙나 보더라.

말에 대한 감각이 천차만별이니 토론이 자못 뜨거워 보였다.

기자들이 말에 대한 고민이 많군하며 즐거워한다.

내기를 거는지는 모르지만, 급기야 생각 없이 사는 나한테까지 질문을 한다.

내 대답은 늘 어정쩡하다.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 있지 않겠소이까?’

며칠 전엔 아트센터나비 관장 노소영씨가 티앤씨(T&C)재단 이사장 김희영씨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김씨를 에스케이(SK) 회장 최태원씨의 내연녀라 할지 혼외 동거인이라 할지로 논쟁이란다.

상식적(?) 으로 보면,

내연녀 / 내연남은 개인의 사생활을 매도하고 편견을 조장하는 말이니

혼외 동거인이라 쓰는 게 맞다고 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연락해온 기자는 노소영씨 입장에 주목했다.

노씨가 소송을 한 데에는 두 사람의 내연 관계에서 받은 정신적 상처가 영향을 끼쳤을 텐데, 김씨에게 혼외 동거인’(‘동거녀도 아닌) 이란 중립적인 표현을 쓰는 게 온당한가?

은밀함, 비도덕성, 부적절함 같은 말맛이 풍기는 내연녀란 말을 써야 본처의 분노를 조금이나마 담을 수 있지 않겠냐는 마음일 듯.

이렇게 볼 수도, 저렇게 볼 수도 있겠다.

나는 다른 데에 눈길이 갔다.

내연녀혼외 동거인사이에서 새삼 고민하게 된 계기가 뭘까 하는 것.

유사 이래로 혼외 연애 범죄는 끊임이 없었다.

그걸 다룬 기사는 한결같이 내연녀 / 내연남 고소 / 협박 / 폭행 / 살해였다.

그렇다면 혹시 고결한 재벌가의 연애사를 다루다 보니 비로소 번민이 시작된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