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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 44년 만에 들이닥친 전두환 쿠데타군

닭털주 2023. 12. 2. 21:31

'서울의 봄' : 44년 만에 들이닥친 전두환 쿠데타군

 

오동진 영화평론가

mindle@mindlenews.com

 

 

영화감독 김성수가 역()쿠데타에 성공했다.

그는 자신의 신작 '서울의 봄'으로 이제서야 전두환의 반란군을 진압해 냈다.

실로 44년만의 일이다.

김성수는 당시 반란의 수괴 조직인 하나회의 실체를 낱낱이 들춰내고 그동안 우리 사회와 정치가 해내지 못했던 역사의 심오한 심판을 내렸다. 영화 속 모든 배역은 가명이지만 명백하게 전두환 노태우(이상 육사 11) 일당의 만행을 폭로해 낸다. 여기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차규헌(육사 8), 황영시(육사 10), 박희도 박세직(이상 육사 12), 최세창(육사 13), 장세동(육사 16), 김진영 허삼수 허화평(육사 17) 등 군 범죄자들의 진상을 철저하게 가려낸다.

영화가 역사를 바로 세웠다. 놀라운 일이다.

다만 지금의 관객과 언론, 사회와 정치가 어떻게 반응해 낼지가 관건이다.

 

영화 '서울의 봄'은 지루한 역사서가 아니다. 흥미진진한 대결의 서사를 펼치고 있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10.26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고 있으면서도 12.12 사태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이 같은 현상은 1980년대생 이후에서 두드러진다.

사건의 복잡성, 전후맥락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사안인 만큼 12.122시간여 만에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란 다소 어려운 일이다.

'서울의 봄'은 이를 전두광(황정민)과 이태신(정우성), 두 인물의 대결 구도로 풀어내며 그 대립의 서사, 선과 악의 싸움으로 상업영화가 갖는 재미를 꽉 붙들고 나아간다.

아프고 더러운 역사의 얘기지만 영화 '서울의 봄'은 역설적으로 매우 재미있다.

그 재미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그 재미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당시 사건을 반추하게 만들며, 그 재미를 통해 사람들에게 그 시대의 통한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상업영화가 지녀야 할 진정한 덕목, 재미에서 의미로 이어지는 좁은 협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을 주저없이 진행시킨다.

 

재미로 붙들어 맨 통한의 군사반란 이야기

 

전두환은 박정희 정권 후반기에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 경호실에서 근무하다 (경호실장 차지철의 천거로) 보안사령관에 발탁된 직후 터진 10.26 사건으로 기회를 잡는다. 그는 합동수사본부 본부장을 맡아 권력을 틀어쥐기 시작한다. 그런 그를 견제하기 위해 1980년 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 육군 참모총장(극중 이름은 정상호, 배우 이성민)은 갑종 출신의 장태완 준장(이태신, 정우성)을 소장으로 진급시켜 수도경비사령부(지금의 수도방위사령부)의 사령관직을 맡게 한다. 나날이 권력이 확대돼 가고 있는 전두환(전두광, 황정민)과 노태우(노태건, 박해준)의 군대 내 사조직 하나회에 맞서 수도와 육본, 국방부를 지킬 수 있는 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두환 등은 자신들이 곧 보직 해임돼 한직으로 쫓겨날 것이 확실시 되자 모처럼 잡은 권력을 잃고 군 수뇌부에서 숙청될 것을 우려해, 그리하여 순··· ··· 하나로, 상관인 육참총장을 체포해 납치하고 군부를 장악한다. 바야흐로 정치권력 전면에 나서려 한다. 나라 전체를 뒤흔들어 엎어 버린다.

 

영화 '서울의 봄'이 특이한 것은 19791212일에서 다음날 새벽으로 넘어가는 10시간 동안 한남동 참모총장 공관과 용산 국방부 청사, 육군본부가 어떻게 탈취되고 어떤 불상사와 총격전이 벌어졌는지를 시간대별로 촘촘하게 전개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 면밀한 기록이 만들어 내는 긴장과 서스펜스가 상당하다.

사람들은 이미 전두환의 승리를 잘 알고 있고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분루(憤淚)를 흘리게 될 것임을 알고 있지만 마음 속으로는 제발 영화에서만이라도 정의의 편이 승리할 것을 기원하게 된다.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서울의 봄'은 서스펜스의 드라마이며 사건을 추적해 가는 과정을 매우 흥미롭게 진행시킨다. 당시 역사에 대해 무지하거나 혹은 애써 무시하고 살아가려는 사람들, 심지어 당시 사태의 주동자들조차도,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드라마이다.

 

많은 할리우드 영화의 컨벤션(관습과 관행)은 다수의 악당이 활개를 치고 소수의 정의로운 사람들, 혹은 홀로 이에 맞서는 주인공으로 서사 구조를 짠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악의 편으로 넘어 가거나 그쪽에 줄을 선다.

정의는 늘 외롭다.

예컨대 서부극의 전설 '하이눈'을 생각하면 된다.

마을 사람들은 악당들에 맞서 싸우지 않는다. 다들 문을 닫아 건다.

보안관만이 외롭게 대결을 준비한다.

'서울의 봄'에서도 1공수와 3공수, 5공수 쿠데타군이 서울 진격에 나서자 육본의 많은 장성들이 어떻게 돌아섰고 또 얼마나 무력한 모습을 보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 단순한 대립 구도, 캐릭터들의 이분화가 당시의 복잡했던 사건, 쿠데타의 전후 과정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게 도와 준다.

감독이 영리한 선택을 한 셈이다.

 

참군인들의 분투, 언해피엔딩인데도 통쾌해지는 영화

 

영화 속에서 이태신=장태완 사령관이 홀로 동분서주하는 모습이 눈물겹다.

그가 단신으로 행주대교 중간에 서서 몰려 오는 5공수 부대를 막아 내려는 장면은, 얼마나 윤색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영화가 만들어 내는 영웅주의가 비록 허구라 할지라도 올바르게 작동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한다. 5공수는 이태신 앞에서 회군하는데 쿠데타에 반대했던 특전사(육군 특수전 사령부) 정병주 사령관 휘하의 9공수와의 접전을 피하는 척, 급습을 노려 성공한다.

정병주 사령관(정만식)이 습격을 받는 장면과 그의 부관인 오 소령(원래는 김오랑 소령, 배우 정해인)이 사살되는 장면은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자 12.12 사건의 분기점이다.

영화도 이 장면 이후 비극의 능선으로 넘어가게 된다.

9공수의 방어가 실패하고 정병주가 체포됨으로써 이태신과 수도경비사령부는 더욱 더 고립된다. 영화 속에서 정우성은 황정민에게, 이태신은 전두광을 향해, 장태완은 전두환에게, 울부짖는다.

"너는 군인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다"라고.

정우성은 이를 간다. 사람들도 이를 갈게 된다.

그 울분의 비수가 가슴 곳곳을 찔러 댄다.

 

대개의 상업영화가 갖는 이야기 구조는 정의가 끝내 승리한다는 것으로 짜인다.

영화가 주는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현실과는 정반대의 틀을 짜곤 한다.

영화의 리얼리즘을 의도적으로 축소시킨다.

그럼에도 사람들, 관객들은 그 허구의 판타지를 받아들이려 애쓴다.

그게 삶을 편하게 하니까.

슬프고 어두운 얘기를 영화에서까지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반면에 영화 '서울의 봄'은 어쩔 수 없이 언해피엔딩이다.

사실을 왜곡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이라도, 그러니까 44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정의가 승리하고 있고, 승리 중이며, 끝내 승리할 것이라는 믿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런 맥락에서 '서울의 봄'은 궁극의 해피엔딩이다.

상업영화가 만들어 내야 할 영화적 쾌감을 느끼게 해준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면 대체로 분할 것이다. 치가 떨릴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역설적으로 통쾌해질 것이다.

이제서야 역사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공유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악의 무리 전두광 노태건 일당과 3인의 '협객' 이태신과 김준엽 헌병감(김진기, 김성균), 특전사 사령관의 대립 구도와 대결의 서사가 리드미컬하게 구성돼 있다.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노재현(김의성)이 펼치는 비열하고 비루한 에피소드조차 이 영화에 볼거리와 얘깃거리,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준다. 비겁한 배신자 연기로 김의성만한 배우가 없다.

'서울의 봄'에는 중량감있는 수많은 배우들이 조단역으로 단 몇 컷의 장면에 스치듯 나온다.

배우들의 스스럼없는 연기 투혼이 빛나는 작품이다.

 

한국 역사를 진화시키는 영화의 반란

 

'서울의 봄'19791212일에 한국에서는 과연 어떠한 일이 벌어졌었는지, 군인들의 부당하고 무모한 반란이 이후 5.18 광주에서는 어떤 학살로 이어지게 됐는지, 그 역사의 상흔은 제대로 치유됐는지에 대해 묻고 있는 작품이다.

과거는 미래이고 미래는 과거이다.

과거의 진상을 올바르게 파헤치지 않으면 미래를 향해 한 걸음도 나아가기가 힘들다.

'서울의 봄'은 가히 혁명적인 영화이다.

김성수 감독이 일으킨 역사적이며 올바른 의미의 쿠데타, 그 영화의 반란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그건 다분히 관객의 몫이자, 언론의 사명이며, 국민들이 선택할 부분이다.

다만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지금의 한국 역사는 영화와 문화가 진화시키고 있는 중이라는 점이다. '서울의 봄'1122일 개봉된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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