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단맛의 비밀 캐낸 20여년 집념 [강석기의 과학풍경]

닭털주 2025. 5. 22. 14:17

단맛의 비밀 캐낸 20여년 집념 [강석기의 과학풍경]

수정 2025-05-20 18:41 등록 2025-05-20 16:52

 

 

 

2001년 실체가 드러난 단맛수용체 분자의 구조가 마침내 밝혀졌다. 단맛수용체는 TAS1R2 단백질과 TAS1R3 단백질의 복합체로 이 가운데 TAS1R2 단백질의 특정 부위에 감미료 분자(빨간색)가 달라붙어 수용체를 활성화해 단맛 신호를 전달한다. 셀 제공

 

 

강석기 | 과학칼럼니스트

 

 

단맛 쓴맛 다 보았다는 표현이 있다.

세상의 온갖 일을 겪어보았다는 뜻으로, 단맛은 좋은 일을, 쓴맛은 나쁜 일을 가리킨다. 실제 단맛은 음식에 영양(탄수화물인 당분)이 풍부하다는 신호이고 쓴맛은 독을 지니고 있다는 경고다. 즉 동물의 생존에 도움을 주기 위해 진화한 감각들인 셈이다.

 

그런데 단맛은 좀 허술한 데가 있다.

사카린이나 아스파탐처럼 열량이 미미한 물질이 설탕보다 오히려 100, 200배 더 달기 때문이다(같은 양일 때). 심지어 한 열대식물의 열매에 들어 있는 감미단백질 모넬린은 설탕보다 2000배나 더 달다.

사실 설탕이 덜 단 건 진화의 교묘한 전략이다.

만일 설탕이 아스파탐만큼이나 달다면 설탕이 조금 들어 있고 나머지는 소화할 수 없는 부실한 음식도 맛있게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설탕이나 인공감미료에서 단맛을 느끼는 건 혀에 이들 분자를 감지하는 단맛수용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추측에 기반해 많은 과학자가 단맛수용체 사냥에 뛰어들었고 2001년 마침내 미국 컬럼비아대 찰스 주커 교수팀과 미국 국립보건원의 니컬러스 리바 박사팀이 공동연구로 발견에 성공했다.

 

이들은 단맛뿐 아니라 나머지 기본 맛의 수용체도 발견했다.

1년 앞서 2000년 쓴맛수용체를 시작으로 2002년 감칠맛수용체, 2006년 신맛수용체, 2010년 맛있다고 느끼는 짠맛수용체(낮은 농도의 나트륨이온 감지)를 연달아 밝혔다.

 

그럼에도 단맛수용체의 정확한 구조는 20여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많은 과학자가 도전했음에도 수용체 분자의 구조가 불안정해 번번이 실패했다.

그런데 지난 7일 학술지 의 사이트에는 저온전자현미경으로 마침내 단맛수용체의 구조를 규명하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을 담은 논문이 실렸다. 역시 주커 교수팀의 결과로 단맛수용체에 인공감미료인 수크랄로스나 아스파탐이 결합한 활성 상태, 즉 단맛 신호를 보내는 상태의 구조다.

 

단맛수용체는 TAS1R2TAS1R3라는 두 단백질이 짝을 이룬 복합체로 이 가운데 TAS1R2의 특정 부위에 수크랄로스 또는 아스파탐이 달라붙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여기에 약하게 달라붙을 것으로 보이는 진짜 감미료인 설탕(자당)이나 포도당, 과당과 함께한 단맛수용체의 구조는 아직 밝히지 못했고 감미료가 달라붙지 않아 비활성 상태인 단맛수용체 구조도 여전히 모른다. 연구자들은 이런 상태의 단맛수용체를 안정화하는 조건을 찾아 구조를 밝힌다는 계획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순수 과학의 관점에서 큰 업적이지만 식품산업과 보건에서도 주목할 성과다. 이번에 밝혀진 단맛수용체 구조를 면밀히 살펴 설탕이 좀 더 안정적으로 결합할 수 있게 도와주는 분자를 설계하는 데 성공한다면 설탕을 덜 쓰고도 충분한 단맛을 낼 수 있어 건강에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공감미료가 이미 이런 일을 하고 있지만, 이들은 다른 맛수용체도 건드리기 때문에 설탕의 순수한 단맛을 재현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24년 전 단맛수용체를 발견하고 이번에 구조까지 밝힌 찰스 주커 교수의 집념에 감탄하며 조만간 노벨상을 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참고로 시각과 후각, 촉각의 신비를 밝힌 과학자들은 이미 노벨상을 받았다.

'칼럼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 커피가 가장 저렴한 날입니다  (3) 2025.05.24
오월의 달력  (0) 2025.05.23
발버둥  (0) 2025.05.22
이심과 무심과 고심의 여행 [이명석의 어차피 혼잔데]  (1) 2025.05.21
일부러 배회하는 사람들  (1) 2025.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