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과 무심과 고심의 여행 [이명석의 어차피 혼잔데]
수정 2025-05-21 19:01 등록 2025-05-21 17:33
이명석 | 문화비평가
“이심이 뭐야? 이심전심할 때 그거야?”
“유심 비슷한데 물리적 실체가 없는 거야.”
“불교 용어야? 일체유심조 같은?”
“나 참. 너 스마트폰은 있지?”
나도 한때 여행작가로 꽤나 기고를 했고, 유튜브도 없던 시절부터 여행 리얼리티 방송을 찍었다. ‘의혹 가득한 여행사’라며 친구들의 여행 스케줄을 짜주는 일도 좋아했다.
하지만 늙은 고양이들을 수발하고 팬데믹을 거치느라 긴 경력 단절의 시간을 보냈고, 그사이 놀랍도록 바뀐 여행의 기술 앞에 초기화된 컴퓨터처럼 멍해져 있다.
초등학생들과 세계 탐험 지도를 그리며 물었다.
“이런 나라에 갈 땐 뭘 꼭 챙겨야 하죠?”
손으로 네모를 그리며 예상한 정답은 ‘여권’.
하지만 아이들은 외쳤다.
“휴대폰이요.”
맞다. 항공권, 숙박 바우처, 각종 티켓이 모두 그 안에 있다.
지도 앱에서 식당을 예약한 뒤 큐알코드로 결제하고 우버 택시를 탈 수도 있지.
나도 이런 편리함을 만끽하려고, 이심 데이터 상품을 검색 구매 설치한 뒤 여권 사진을 보내 인증했다.
어르신들이 키오스크를 무서워하는 마음이 이해되었다.
모든 절차가 부드럽게 넘어가면 다행이지만, 뭔가에 걸리는 순간 휴대전화를 내던질 것 같다.
“휴! 이심은 끝. 현지에서 켜면 자동으로 되겠지?”
“그럼 이제 환전해.”
“내일 하자. 은행 문 닫을 시간이야.”
“뭔 소리야? 앱 깔고 현지 에이티엠(ATM)에서 찾으면 돼.”
“뭘 깔라고?”
“그리고 거긴 카드를 잘 안 받는대. 대신 메신저와 연동하는 간편결제수단을 등록해.”
나는 뻣뻣해진 목과 허리를 소파에 뉘었다.
눈이 감기며 먼 기억, 이 모든 번거로움이 없던 원초적인 여행의 때가 떠올랐다.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없고, 유명 도시가 아니면 ‘론리 플래닛’ 영문판의 몇줄이 정보의 전부였던 때.
기차역 안내소에서 얻은 지도를 따라 발을 옮겼고,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여행자의 한마디로 내일을 결정했다.
허튼 짓거리도 적지 않았다. 파리에선 노트르담 성당에서 라데팡스까지 직선으로 보이기에 거대한 배낭을 메고 10㎞를 걸어갔다. 그리스 피레우스 항구에선 배에 붙은 조개를 떼는 어부에게 어느 섬으로 갈지 정해달라고 했다.
살아 돌아온 게 신기할 정도이지만, 내가 생각하던 여행은 항상 그런 것이었다.
고국에서 누리던 문명의 이기와 연락 수단을 내버리고, 무지의 불편함이 미지의 환희로 바뀌는 순간을 만끽하는.
투덜거리던 내가 공항에 내렸다. 곧바로 스마트폰의 도움으로 현지 화폐와 교통패스를 구했다.
구글맵을 따라가니 곳곳의 식당, 박물관에 대한 정보들이 튀어나왔다.
“편하긴 정말 편하네. 이젠 허접한 가이드북 같은 건 필요 없겠어.”
그렇지만 모든 여행지에 가득한 남의 발자국들을 보고선 김이 새기도 했다.
다음날 오후, 갑작스러운 비를 피하려고 길거리 처마 밑으로 들어갔다. 작은 식당에서 풍겨 나오는 국물 냄새에 침이 고이는데, 메뉴판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종업원에게 영어로 말을 걸자 몸을 홱 돌렸다. 에이, 포기하자.
떠나려는데 종업원이 휴대전화의 번역 앱을 펼쳤다.
비 내리는 야외 탁자에서 인생 최고의 곱창국수를 먹었다.
문득 내 안에서 삐걱대던 소프트웨어가 업데이트되는 느낌을 받았다.
돌아보면 옛 여행은 늘 한치 앞을 못 보는 불안감 속에 있었다. 그런 예민한 감수성이 경험을 각별하게 만들지만, 또한 많은 경우 용기를 꺾는다.
멋진 해안을 추천받고도 교통편을 몰라 포기했고,
최고의 재즈 라이브를 듣다 막차 걱정에 성급히 일어섰다.
즉흥의 낭만과 도전도 결국 안전이 보장된 상태에서 가능하다.
나는 지도 앱을 들여다보았다.
“저녁은 늦게 먹어도 되지? 전철 말고 버스를 타볼까? 강가에 공원이 있는데 분위기가 되게 특이하다네. 지나다 괜찮으면 내리고, 아니면 그냥 쭉 숙소로 가고.”
“버스는 자주 와?”
“이제 아이스크림 빨면서 3분만 걸으면 딱 탈 수 있어.”
분명 기술과 정보는 편리하다.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그만큼 여행은 편안해진다.
다만 그 무심을 위해 건너야 할 강이 너무 자주 바뀌지는 않았으면 한다.
다음에는 이심 대신 저심을 깔기 위해 고심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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