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연결될 권리
입력 : 2024.11.20 20:08 수정 : 2024.11.20. 20:15 고영직 문학평론가
수년 전부터 ‘동네지식인’을 자처했지만, 요즘 정작 동네를 비우는 경우가 잦다.
동네 술벗들로부터 “동네를 너무 자주 비우는 것 아니냐”며 힐난을 받곤 한다.
그럴 때마다 15년 전쯤 자발적 백수가 된 이래 직장인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잘 지켜온 것에 만족해하는 편이다.
올해 유독 자주 찾은 지역은 전남이었다.
전남문화재단 자율기획형 사업 책임심의위원을 맡아 해남, 담양, 곡성, 고흥 등지를 찾았다.
시인보다는 ‘전사’이고자 했던 김남주 시인(1945~1994) 30주기를 맞아 김남주기념사업회가 극단 토박이와 손잡고 상연한 시극 <은박지에 새긴 사랑> 관극차 해남을 처음 방문했다. 곡성 한국실험예술정신이라는 단체가 옥과면 신흥마을에서 국내외 예술가들과 함께 옛 신흥상회를 꾸며 마을 갤러리를 만든 멋진 프로젝트를 만날 수 있었다. 따뜻한 10월의 가을 한낮에 이루어진 오프닝 행사는 조촐한 마을 잔치가 되었다. 하지만 아츠뷰라는 단체가 신안군 매화도 옛 매화분교에서 추진한 프로젝트 ‘잊혀지는 섬, 사라지지 않는 기억’에는 태풍 때문에 방문하지 못했다.
지역에 갈 때마다 우리나라 지역은 대중교통 체계가 잘 정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실감한다.
곡성역에서 옥과면 신흥마을까지 20㎞ 남짓 거리이지만 군내버스는 어쩌다 한 대씩 오는 꼴이었다.
그렇게 시골살이는 자동차를 권장하는 삶이다.
서울 한동네에서 30년 동안 살아온 생활을 정리하고
소도시 귀촌을 생각하는 나로서도 지역 대중교통 정비는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지역활동가 양미는 <너무나 정치적인 시골살이>(동녘)에서 우리는 ‘연결될 권리’가 있으며,
“연결되지 못하는 시골살이는 사람들을 각자도생으로 몰아간다”고 말한다.
수년째 시골살이를 하는 그가 ‘여전히’ 자동차를 운전하지 않으며,
자립하는 삶을 고민하는 분투기가 적혀 있다.
“불편하다고 각자 개인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면 결국 악순환이 되지 않을까요?”라는 그의 말에서 진심이 느껴진다.
지역 대중교통 체계 정비는 ‘노답’인가.
양미가 제시한 해법은 ‘버스공영제’다.
2013년 5월 전국 최초로 버스공영제를 실시한 전남 신안군,
2020년 7월 버스공영제를 도입한 강원 정선군은 공영제 이후 이용객이 급증했다.
2021년 기준 신안군은 20만명에서 67만명으로 늘었고, 정선군은 약 54% 증가했다.
2023년 ‘모든 승객 공짜’를 표방한 경북 청송군의 농어촌버스 무료 운영 또한 주민과 관광객들의 호평을 받는다.
혈세 먹는 하마로 전락한 시내버스를 완전공영제 또는 준공영제로 바꾸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드높다.
문제는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정책 의지와 대책 마련이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경제학자 앨프리드 칸은 ‘소소한 결정들의 폭거’라는 소논문에서 자가용 이용자가 급증함으로써
철도 노선이 사라진 미국 사례를 언급한다.
우리는 합리적인 선택(자동차)을 했다고 하지만,
실상은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그래서, 시골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라는 양미의 질문에 우리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자동차 중심의 교통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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