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운가 [김탁환 칼럼]
마을 사람들은 영화 내내 곳곳에서 언성을 높이며 다툰다. 상처는 쌓이고 빚은 늘고 해결할 방법은 없기에, 분노로 지르는 주먹질이요 슬픔으로 뻗는 발길질이다. … 한마을에서 긴 세월 지내다 보면, 이웃의 자랑할 만한 빛기둥뿐 아니라 어둡고 탁하고 때론 추한 그림자까지 낮은 담을 넘어온다. 연민과 위로와 격려와 응원이 겹겹이 쌓인다. 법 따위로 논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 사람 마음이다.
수정 2024-12-04 08:02 등록 2024-12-04 08:00
김탁환 | 소설가
올해는 망했다. 아직 한달이 남았지만, 일찌감치 2024년을 결산하는 마을활동가들의 탄식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해서, 작년보다 올해가 나았다는 목소린 어디서도 들리지 않는다.
최악이었다는 평가만 돌림노래처럼 울린다.
여름 더위가 가을까지 이어지는 바람에 논이든 밭이든 작황이 나빴다.
마을 활동에 필요한 각종 예산이 삭감되는 바람에 훈훈하게 정을 나누던 모임들이 사라졌다. 갖가지 세금은 인상되었지만, 곡물 가격은 제자리걸음이다.
상경하여 주말 집회에 참가하는 이도 점점 늘었다. 지방 농촌의 참담한 현실을 알리고 곤두박질의 책임을 따져 묻기 위함이다.
답답한 판국에 죽곡 농민열린도서관에서 주최한 문학기행을 통영으로 갔다.
통영 앞바다라면 이순신으로부터 박경리와 백석과 김춘수와 전혁림과 이중섭에 이르기까지 할 말이 많으니, 기꺼이 길라잡이를 맡았다. 망한 올해는 깡그리 잊자고 한숨 푹푹 쉬며 망년회를 하느니, 바다라도 실컷 보고 오는 편이 나을 듯싶었다.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그 방을 생각하며’)고 고백한 이는 시인 김수영이다. 섬진강과 대황강을 끼고 살며 순천 와온 해변으로 나들이도 종종 가지만, 곡성에서의 삶은 사방을 두른 산자락이 기본 풍경이다. 통영 강구안에 내리는 순간부터 탄성이 터졌다.
초겨울 바닷바람이 맵게 볼을 때려도 웃음이 사라지질 않았다.
한려수도는 아름답지만, 어촌 형편은 농촌과 마찬가지다.
최근 개봉한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에 고된 현실이 적나라하게 담겼다.
마을 사람들은 영화 내내 곳곳에서 언성을 높이며 다툰다.
상처는 쌓이고 빚은 늘고 해결할 방법은 없기에,
분노로 지르는 주먹질이요 슬픔으로 뻗는 발길질이다.
고깃배 늙은 선장 영국은 판례와 이웃사촌이다. 판례는 외아들 용수, 베트남 출신 며느리 영란과 함께 산다. 영국은 용수를 선원으로 쓸 뿐만 아니라, 판례와 영란의 일이라면 늘 돕는다. 관공서에서 영란과 사이가 어떻게 되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영국은 마을 사람이라고 당당하게 답한다. 나라 법에 따르면 가족이어야 의료정보 열람이 가능하고 공식문서에 서명할 수 있다.
영국은 법 앞에서도 포기하거나 물러서지 않는다.
영국의 처지를 판례가 알고 판례의 처지를 영국이 알기 때문이다.
한마을에서 긴 세월 지내다 보면, 이웃의 자랑할 만한 빛기둥뿐 아니라 어둡고 탁하고 때론 추한 그림자까지 낮은 담을 넘어온다. 연민과 위로와 격려와 응원이 겹겹이 쌓인다. 법 따위로 논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이 사람 마음이다.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 트리플픽쳐스 제공
용수의 실종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함께 바다로 나갔던 영국은 새 선원까지 들이며 사건을 끝내려 하고, 판례는 부두에 의자를 놓고 앉아 밤낮없이 아들을 기다린다.
둘의 대화는 거두절미한 선문답에 가깝다.
찡그린 얼굴로 투박하게 찌르는 영국과 단호한 목청으로 맞서는 판례의 대결은 곧 터질 홋줄처럼 팽팽하다. 갯내 맡으며 버틴 세월이 바탕에 깔렸기에, 한두 지점만 등대처럼 집어 묻고 답하면 그만인 것이다.
침묵도 말을 한다.
어촌살이의 고통이, 윤주상과 양희경 두 배우의 눈짓과 몸짓에 가득 배어 나온다.
관객도 함께 젖지 않을 도리가 없다.
곡성 농민들을 배웅한 후 홀로 강구안에 남았다. 백개의 섬 백개의 길을 하나로 잇는 ‘백섬백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완성한 섬연구소 강제윤 소장을 만났다. 섬을 위해서라면 두 팔 걷고 나서는 강 소장이 시린 바다 푸른빛을 닮은 시집부터 슬그머니 내밀었다.
이주빈의 첫 시집 ‘내 고향 흑산도 푸르다 지쳐 검은 섬’이 어둠을 몰고 왔다.
곡성과 통영을 지나 남쪽 바다에 별처럼 뿌려진 섬마을 이야긴 끝날 줄을 몰랐다.
누가 누가 더 약자이고 누가 누가 더 핍박받아 왔는가를 들여다보는 무거운 자리였다.
손익을 계산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방식으론 섬사람들의 인권과 행복을 지키기 어렵다. 태어난 곳이고 추억이 있기에 섬으로 돌아가고 또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퇴락한 줄 알지만, 죽을 수는 없다며 돌아온 사람을 거듭 받아주고 살길 열어주는 사람들이 여전히 마을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마을은 죽곡이기도 하고 뱃길로 이어진 뭇 섬들이기도 했다.
숙취로 어지러운 갓밝이에 엎드려 시집을 읽었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국이 수평선을 향해 배를 몰며 던졌을 질문이 흑산도 시인의 목소리로 넘실거렸다.
‘대답 원치 않는 물음/ 메아리 원반을 타고/ 객선머리 빙 돌아 다시/ 바다로 나아간다// 인생은 아름다운가’(‘객선머리에서’)
'칼럼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용필, 말년의 양식 (3) | 2024.12.07 |
---|---|
차마 어찌할 수 없는 것들 (4) | 2024.12.06 |
묵은 술, 오랜 지혜 (3) | 2024.12.05 |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3) | 2024.12.04 |
지역에서 연결될 권리 (3) | 2024.1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