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최재봉의 탐문 _08 편집자 --퍼킨스라는 환상, 리시라는 악몽

닭털주 2022. 2. 11. 12:20

퍼킨스라는 환상, 리시라는 악몽

 

최재봉의 탐문 _08 편집자

 

 

작가가 탈고한 원고가 책으로 완성되어 나오기까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가 바로 편집자라 할 수 있다. 아니, 편집자의 역량은 때로 작가가 원고를 쓰기 전부터 발휘되기도 한다. 편집자는 작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가능성을 먼저 알아보고 작가를 부추겨 원고를 쓰게 만들기도 한다.

 

미국 작가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은 소설을 둘러싼 문학·출판계의 인물들과 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소설에 관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메타소설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소설의 본질에 관한 논의보다는 소설을 둘러싼 제도와 환경에 초점을 맞추는 문학사회학적 접근법을 취한다. 이 작품은 모두 4개 장으로 이루어졌다. 1장은 소설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2장은 편집자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3장과 4장은 각각 비평가와 독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다. 소설이라는 생태계를 구성하는 네 개의 중심축이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라는 뜻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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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네 축에 포함된다는 데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작가와 비평가가 소설 생태계의 주역임은 자명하다. 독자가 작가와 작품에 행사하는 영향력에 관해서라면 이 칼럼의 지난 회 독자편에서 어느 정도 확인했으리라 믿는다. 이 세 주체에 비해 편집자는 겉보기에 존재감이 미약한 편이다. 그 때문에 편집자는 흔히 보이지 않는존재라 표현되기도 한다. ‘편집자 ㅊ씨라는 제목을 단 <한겨레> 칼럼(20211210일치)에서 번역가 정영목도 사람들이 책 만드는 일의 중심에 있는 편집자에게 눈길을 주는 일은 드물 것이라고 쓴 바 있다.

그러나 편집자가 결코 무시해도 좋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누구보다 작가들이 잘 알고 있다. 작가가 탈고한 원고가 책으로 완성되어 나오기까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가 바로 편집자라 할 수 있다. 아니, 편집자의 역량은 때로 작가가 원고를 쓰기 전부터 발휘된다. 편집자는 작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한 가능성을 먼저 알아보고 작가를 부추겨 원고를 쓰게 만들기도 한다.

좀처럼 남들의 눈길을 끌기 힘든 편집자라는 존재에 주목한 것이 영화 <지니어스>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미국의 전설적인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 1920~30년대 미국 출판사 스크리브너스에서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 토머스 울프 같은 당대 최고 작가들의 소설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편집자로서 퍼킨스가 개성과 재능이 충만한 작가들을 능숙하게 조율하고 그들과 협업해서 유수의 작품을 써내도록 한 과정에 영화는 초점을 맞춘다. <지니어스>를 인상 깊게 본 이들이라면 <무명작가의 첫 책>을 반갑게 읽지 않을까 싶다. 울프가 1935년과 1938년에 한 두 번의 강연 원고를 묶은 이 책에는 특히 그와 편집자 퍼킨스의 관계가 잘 그려져 있다.

퍼킨스는 울프의 첫 소설 <천사여, 고향을 보라>와 두 번째 소설 <시간과 강에 대하여>를 편집했는데, 이 작품들은 편집자의 능력을 최대한도로 발휘하기에 적합한 것들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울프의 원고는 편집자의 적절한 손길을 거쳐야 비로소 제 꼴을 갖출 수 있는 상태였다는 뜻이다. 울프의 첫 책 초고는 200자 원고지로 환산하자면 5000장이 훌쩍 넘는 방대한 분량이어서 축소가 불가피했다. 작가란 특히 자신의 글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큰 이들인데, 그런 작가의 피 같은원고를 줄이고 고치는 일이 결코 녹록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런 일을 하자면 편집자는 일단 강심장을 지녀야 할 테고, 삭제될 원고를 부둥켜안고 절규하는 작가를 어르고 눙치는 외교력 역시 갖추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작가와 편집자의 협업은 많은 경우 싸움의 형태를 취한다.

내 책만큼 편집자의 존재가 꼭 필요하고 그의 도움이 실질적인 가치를 발휘한 경우는 없었다. 무엇보다도, 내 원고는 탈고 이전부터 과감한 덜어내기가 필요한 상태였는데, 탈고 후 지치기도 했거니와 애초에 문제적 집필 방식이 몸에 밴 나는 우리 앞에 놓인 다음 작업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글쓰기에서 내게 언제나 가장 어렵고 하기 싫은 일은 덜어내기였다. 나는 언제나 덜어내기보다는 쓰기가 더 기질에 맞았다.”

울프의 회고처럼 그와 퍼킨스의 협업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소설가 김초엽 역시 <채널예스>(202012월호)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첫 소설집 편집자가 처음 원고에서 내용을 많이 쳐내준 덕분에 독자에게 좀 더 잘 다가갈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한 바 있다.

그러나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가 항상 우호적인 것은 아니다. 미국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와 편집자 고든 리시의 사례는 편집자의 역할과 권한의 한계와 관련해 생각해 볼 문제를 남겼다. 카버는 흔히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된다. 서사의 진행에 생략이 많고 문장이 단순하며 감정을 절제하는 것이 카버 소설의 트레이드마크다. 그의 첫 두 소설집 <제발 조용히 좀 해요><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서 특히 그런 특징이 두드러지는데, 이 두 책을 편집한 이가 바로 리시였다.

그런데 카버 사후인 2009년에 소설집 <풋내기들>이 나오면서 적잖은 소동이 벌어졌다. 이 책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원본, 그러니까 편집자 리시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카버의 오리지널 원고를 그대로 수록한 것이었다. 여기에는 <사랑을 말할 때>에 실린 단편 17편이 순서도 동일하게 실렸는데, 분량에서는 크게 차이가 난다. 한국어판의 경우 <사랑을 말할 때>의 본문이 230쪽인 데 비해 <풋내기들>400쪽 가까이에 이른다. 두 책은 크기도 거의 같고 페이지당 원고 분량도 얼추 비슷할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니까, 리시가 카버의 원래 원고를 절반 가까이 덜어냈다는 뜻이겠다. 분량이 줄었을 뿐만 아니라 서사 구조가 변형되고 제목이 바뀌었으며 대사도 수정됐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바뀐 경우도 있었다. 그런 형식상의 변화는 당연히 소설의 색채와 주제의 변화로도 이어진다. 전반적으로 따뜻하고 인간적이었던 소설 세계가 냉정하고 모호한 분위기를 띠게 되었다.

이런 리시의 편집 작업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미니멀리스트 카버를 만드는 데에 큰 구실을 했음은 물론인데, 문제는 카버 자신이 그런 리시의 작업에 반드시 만족한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에 있다. 카버는 리시의 편집을 두고 절단과 이식 수술이라 표현한 적이 있고, <사랑을 말할 때>가 출간되기 9개월 전에 리시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책 출간을 중단해야겠다지금 편집된 형태로 책이 출판된다면 앞으로 다시는 소설을 쓰지 못할 것 같다고까지 호소했다.

물론 그로부터 불과 일주일도 되기 전에 역시 카버가 리시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전반적으로 흥분되고 만족한다벌써부터 다음 책에 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는 사실 역시 기록해 두어야 하리라. 리시의 편집 작업에 대해 카버가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을 지니고 있었다는 뜻이다. 작가인 스티븐 킹은 리시가 카버 소설의 성격을 바꿔 놓은 것을 가리켜 악랄하다고 비판한 바 있다. 독자는 <사랑을 말할 때><풋내기들>을 함께 읽으며 리시의 편집 작업이 편집자의 정당한 책무였는지 지나친 월권이었는지를 나름대로 판단해 보아도 좋겠다.

얼핏 작가가 윗사람으로 보이지만, 작가가 무서워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이 편집자다. 가장 먼저 원고를 읽고 잘 썼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사람이라서다.”

<작가의 마감>이라는 책에 실린 일본 작가 무로 사이세이의 글 한 대목이다. 그런가 하면 소설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편집자에 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편집자라면, 교정자를 말씀하시는 거겠죠?”라고 특유의 독설을 퍼부은 바 있다. 나보코프 역시 책을 내는 과정에서 편집자와 적잖은 실랑이를 벌인 것이 아닐까 짐작되는 반응이다.

원고나 그 원고를 쓴 작가와 사랑에 빠지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항상 팔 하나의 거리를 유지해야 해요. 그들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결국 당신의 성공은 당신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얼마만큼 올바르게 그들을 판단하느냐 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소설>2장 주인공인 편집자 이본 마멜의 초창기 시절 출판사 선배가 그에게 건넨 조언이다. 그런가 하면 작가 정여울은 편집자 이연실을 인터뷰한 글(<한겨레> 2021925일치) 말미에서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를 영혼의 쌍둥이에 견준 바 있다. 두 견해는 얼핏 상반되어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 ‘영혼의 쌍둥이처럼 긴밀하게 협업하되 그러면서도 어디까지나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는 것. 편집자가 성공하고 그 성공이 곧 작가의 성공이 되는 비결이 거기에 있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