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소셜 살롱에서 글쓰기

닭털주 2022. 2. 14. 17:41

소셜 살롱에서 글쓰기

 

정대건 | 소설가·영화감독

 

 

지난 연말부터 소셜 살롱모임에 나가고 있다. 살롱이라 하면 17~18세기 프랑스의 예술가와 지성인들이 지적인 대화를 나누던 사교 모임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소셜 살롱이라니, 요즘 이런 게 핫하다고 말로만 들었지 이전에는 체험해보지 못한 형태의 모임이었다. 소셜 살롱에는 독서·영화 모임부터 쿠킹, 베이킹, 요가, 도자기, 자수 등의 원데이 클래스가 결합된 형태까지 다양한 테마의 모임이 있다. 이러한 모임은 일방적인 강습이 아니라 참여자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데 방점이 있다.

내가 참여하는 모임은 글쓰기 워크숍이 결합된 형태인데, 선정한 영화를 보고 그와 관련된 소재를 글감으로 짧은 픽션을 쓰고 모인다. 3주 정도 간격을 두고 모이면 근황 토크도 하고, 함께 보고 오기로 한 영화에 대해 감상을 나누고, 쓴 글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헤어진다. 나이나 직업을 밝히지 않고 닉네임이나 본명 중 어느 것을 드러내도 무관하다. 모임이 끝나면 함께 식사를 할 사람은 하고 일정이 있거나 집에 갈 사람은 간다. 거절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전혀 아니다.

맨 처음에 모임을 이끄는 모임장 제안을 받았을 때, 낯선 포맷이 어렵게 느껴지기에 고민이 됐다. 수업은 오랜 시간 해봐서 익숙했고, 독서 모임도 진행해보았으나 내게 기대되는 역할은 그 두 가지의 중간쯤인 것 같았다. 게다가 내가 그다지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기에 두 배로 힘들게 느껴졌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나는 이 느슨한 모임이 마음에 들었다. 애초에 관심사가 비슷한 구성원들이 신청했기에 비슷한 면이 있기 때문인 걸까. 처음에는 조심스럽고 낯설고 어색했지만 점차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 나눌 수 있었다. 비대면 시대에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소리 내어 대화를 나누는 것은 인터넷 게시판에서 댓글로 소통하는 것과는 확실히 달랐다. 왜 요즘 이런 형태의 모임이 주목받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모임의 참여자들은 픽션 쓰기가 익숙하지 않아 처음에는 에세이에 가까운 글을 제출했다. 몇차례 모임이 진행되면서 누군가 이제야 조금은 픽션을 쓰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을 때, 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픽션이라는 약속 아래 더 진실한 내면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게 이 모임에서 내가 지향하는 바였다. 자기 반영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도 있고 자신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글을 쓰는 작가도 있지만, 후자로 여겨지는 작가조차 자신의 진솔한 감정을 재료로 한다. 짧은 분량과 부족한 시간 관계상 아주 깊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지라도, 픽션의 힘을 빌려서 내밀한 이야기를 하고 자신을 드러낸 글들이 있었다. 나 스스로 경험해본 바로 그런 종류의 글쓰기는 그 자체로 치유의 힘을 갖는다.

이 모임을 진행하고 나서 나는 더욱 공교육 차원에서 스토리텔링 글쓰기 수업이 이루어진다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 어느 때보다 콘텐츠를 많이 향유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감상자들은 이미 안목이 높다. 그런데 그 높아진 안목만큼 작품을 감상하고 대화 나누는 법이나 작품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는다. 공교육에서는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작품의 주제 찾기같은 문제풀이식 암기 수업이 이루어질 뿐이다.

누구나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작가가 될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걸 공교육에서 가르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학생들이 어떤 전공을 하고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든지 앞으로도 평생 동안 다양한 콘텐츠를 감상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야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게 되면 더 깊이 감상하고 즐길 수 있게 된다. 직접 써보고 창작의 비밀을 알게 되면 좋아하던 작품은 더 위대하게 느껴지고 더욱 사랑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