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닭털주 2022. 2. 21. 11:34

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

신예슬 음악평론가

 

 

음악을 듣고 글 쓰는 일을 하지만, 가끔 음악에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다는 마음이 든다.

최선을 다해 지식과 경험을 쌓아도 음악의 가장 중요한 본질에는 가닿지 못하는 것만 같다. 음악을 샅샅이 들여다보며 그 크기와 무게를 재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음악은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으며, 가질 수 없다.

시간 속에서 생겨났다 금세 사라진다.

음악을 듣고 나면 깜깜한 방에 혼자 남는 것 같았다.

음악은 무엇일까. 어딘가에 있긴 한 걸까. 막막함 속에서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곤 했다.

 

이런 물음이 흐려지는 순간은 음악이 만들어지는 시끌시끌한 현장에 갔을 때, 그리고 음악가를 대면해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였다. 음악가에게 음악이 무엇이냐고 새삼스럽게 질문하는 건 어쩐지 마땅치 않아 보였다.

음악은 그의 삶에서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그에겐 음악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것보다 음악과 어떻게 관계 맺으며 살 것인지가 더 중요한 듯했다. 음악가를 만날 때면 음악이 먼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 속에, 그리고 우리가 음악과 함께 보낸 시간 속에 배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발간된 이지영의 책 <음악, 당신에게 무엇입니까>는 음악에 몸담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두 클래식이라 불리는, 서양음악사의 전통을 따르는 연주가와 성악가, 창작자들과의 대화를 모은 것이었다.

그 대화엔 그들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중요한 음악이 무엇이고

그들이 거기서 무엇을 경험했는지,

음악으로부터 뭘 배웠는지,

어떻게 실패했는지,

무엇과 싸웠는지,

자신에게 음악이 지닌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여러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 중 내게 인상 깊게 다가온 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음악의 본질, 혹은 음악에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야기한 부분이었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이렇게 말한다.

시간이 흐르면 음악도 흘러가고 없어지지만 각자의 마음속에 뭔가 붙잡아둔 듯한 느낌이 들었다면 성공한 것 같아요.”

그리고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진실이 하나뿐이라면 그건 가짜일 거예요. 세상이 변하고, 우리도 변하고, 우리가 볼 수 있는 시각이 변하는데, 무언가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거죠. 진실은, 음악은 끝없이 변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시대마다 사람들이 찾고 싶은 진실의 의미를 찾아가게 해준다고 생각하고요.”

서로의 언어는 다르지만 이 대화에 동참한 이들은 모두 시간과 흐름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컨대 사진작가 윤광준은 음악은 시간에 질서를 부여하는 행위라 표현하고, 영화감독 박찬욱은 음악에 집중하는 것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일이고 그 연주가 행해진 몇 년 전, 몇십 년 전의 공기로 함께 숨 쉬는 일이라고 말한다.

책의 서문에 이지영은 공들인 시간에 대하여라는 제목을 붙였다.

긴 시간 다듬어져온 대화들을 읽으며 나는 만약 음악의 본질 같은 것이 있다면, 그건 긴 시간 음악을 마주해온 이들의 기억과 경험에 머무르고 있을 것만 같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그 음악의 본질이란 것은 단 하나로 고정될 수 없고, 음악 하는 이에 따라 모두 달라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게 종종 떠올랐던 음악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음악이 내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바뀌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질문의 초점을 바꾼다면 나도 여기에 언젠가는 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음악은 연주가의 음악처럼 정교하고 세공된 무언가라기보단, 여러 전통이 출몰했다 사라지며 동시대의 소란과 논쟁이 가득한 덩어리에 가깝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음악들로부터만 찾을 수 있는 어떤 진실이 있을 거라 믿고 싶다.

그런 고민을 하며 이 책에 놓인 몇 가지 질문들을 되짚어본다.

어떤 소리가 좋은 소리일까요?”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해왔나요?”

음악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