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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 소설가서 ‘뜨거운 피’ 영화감독으로 데뷔

닭털주 2022. 4. 26. 10:13

천명관, 소설가서 뜨거운 피영화감독으로 데뷔

고희진 기자

 

 

천명관(58)이 영화 <뜨거운 피>의 감독으로 돌아왔다.

그는 얼마 전까지 소설가로 불렸다. 2004<고래>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당시 문학계에선 그를 천재혹은 이단아로 불렀다. 최근작은 2016년 발표한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15년 소설가 생활 뒤, 환갑이 가까워진 나이에 뒤늦게 영화감독에 데뷔한 속내는 무엇일까. 지난 17일 화상 인터뷰로 그를 만나봤다.

 

 

영화 <뜨거운 피>로 데뷔한 천명관 감독. ()키다리스튜디오

 

사실 천 감독의 꿈은 오래전부터 영화감독이었다.

그는 보험 외판원 등을 하다가 서른 즈음에 충무로에 발을 내디뎠다.

연출부 하려고 하니까 당시 조감독들이 나보다 어려서 잘 안 써줬다.

결국 영화사에서 집기나 주차 관리하는 소위 따가리를 했다.

시나리오도 10편 정도를 써서 돌아다녔지만 데뷔를 못했고, 결국 소설가가 됐다고 말했다.

2003년 단편 프랭크와 나로 문학동네 신인상을 받았다.

이듬해 장편 <고래>로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았다.

기존 서사 구조의 틀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방대한 이야기를 흡입력 있게 구성한 전개에 독자와 평단이 열광했다.

당시 소설가 은희경은 천명관에 대해 전통적 학습이나 동시대의 소설 작품에 빚진 게 없는 작가라고 평했다.

유명 작가로서 영화감독 데뷔에 부담은 없을까.

천 감독은 소설을 처음 썼을 때, ‘이게 소설이냐는 비난부터 천재가 나타났다는 말도 안 되는 찬사와 다양한 반응이 있었다후속작에 대한 두고 보자는 식의 기대가 많았는데, 사실 그 이후 작품을 발표하며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걸 계속 증명하고 살았다.

그래서 더욱 부담이라는 건 없다. 영화를 만드는 재주가 없다면 누구보다 관객이나 업계에서 알아볼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화 <뜨거운 피>는 부산 변두리 작은 포구 구암을 둘러싼 조직폭력 세력 간의 이야기다. 배우 정우가 주인공 희수를 연기했다. 전형적인 조폭 영화와는 결이 좀 다르다. 각 세력들이 구암을 손에 넣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이는 모습이 그려지지만, 누아르 영화 특유의 비장미는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순간순간 드러나는 밑바닥 인생들의 힘겨움이 눈에 띈다.

영화 전체적으로 천명관만의 스타일이 있다고 말하긴 어려우나, 그간의 한국 영화에서는 연출되지 않았던 듯한 매력적 장면들이 눈에 띈다. 조폭 영화하면 떠오르는 황정민, 최민식, 유오성 등 배우들과는 결을 달리하는 정우의 연기가 신선하다. 일견 갑작스러운 감정 변화에도 정우의 연기가 이를 개연성 있게 만든다. ‘용강역의 최무성을 비롯해, ‘철진역의 지승현, ‘아미역의 이홍내 등 조연들의 연기도 특색 있다.

 

원작은 소설 <캐비닛>으로 유명한 김언수 작가의 동명 소설 <뜨거운 피>.

김 작가가 소설을 집필할 때부터 천 감독과 많은 얘기를 나눴다. 영화화가 결정되고 김 작가와 제작사 측이 천 감독에게 먼저 연출을 제안했다. 소설가의 작품을 다른 소설가가 영화로 연출한 것이 됐다. 천 감독은 과거 수십 편 시나리오를 써서 돌아다녔지만 결론적으로 다 까였다.

이번 제안이 왔을 때,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남의 것을 가지고 해보면 데뷔가 되려나 싶었다매일 가위내다가 지니까 바위한 번 내보자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천 감독의 소설 중 <고령화 가족>2013년 송해성 감독의 연출로 영화화됐다.

<고래> 등 자신의 작품을 직접 영상화할 생각은 없었냐는 물음에는 늪에 빠지기 싫었다고 했다.

그는 “‘고래도 그렇고 나의 삼촌 브루스 리도 어디에선가 지금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당시 대본과 연출 제안이 모두 있었지만 거절했다소설은 썼지만 연출은 엄두가 안 났다. 특히 고래는 정말 자신이 없었다. 늪에 빠지면 못 나올 것 같아서 도망쳤다고 했다.

다만 소설 집필 당시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뒀던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연출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한동안 소설을 쓰다 영화계에 들어서니 낯설기도 했다.

천 감독은 소설은 단어 하나하나까지 혼자 쓰는 것이고, 여기에 누구도 관여하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는 수많은 사람이 함께한다. 수많은 검열, 그중 가장 무서운 자본의 검열이 있다소설에는 분량이 상관없지만, 영화는 2시간이라는 제한 시간도 어려웠다영화 하다 처음 소설 쓸 때는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할 수 있어서 자유로움을 느꼈는데, 다시 돌아오니 역시 그런 제한들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뜨거운 피>는 당초 2020년 여름 개봉 예정이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며 충무로 영화 상당수가 개봉 시기를 미루던 때였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였고, 2년여가 지난 올해 323일에야 관객을 만나게 됐다. 천 감독은 충무로에 첫 발을 들이고, 30년 만에 영화를 만들었는데 2년이나 미뤄지니 정말 영화라고 하는 것의 성격과 내가 가진 기질이 맞지 않는 건가별 생각을 다 했다원래 퇴고를 잘 하지 않는데, 이번엔 기다리는 동안 후반작업을 계속했다.

결국 이게 영화의 완성도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문단에서도 영화계에서도 이단아에 가까운 채 활동했다.

대학을 나오지도, 소설이나 영화를 위한 정규 교육도 안 받았다.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환갑 즈음에 목표를 이뤘다.

천 감독은 꿈을, 꾸기엔 내가 너무 나이가 많다. 꿈은 젊은 사람들이 꾸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마음 속에 그런 생각이 있었다. ‘내가 정말 젊었을 때, 뜨거웠을 때 감독이 됐다면 지금과는 좀 다른 인생을 살지 않았을까라는.

결국 소설을 썼고 한 인생을 살았다.

그래도 죽기 전까지 영화 한 편 만들어서 감독 하면 꽤 괜찮은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해보고 나니) 이젠 다음에 영화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한 번으론 끝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