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노예가 자유인을 기를 수 없다

닭털주 2022. 6. 6. 07:11

노예가 자유인을 기를 수 없다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외국 학자들과 대화할 때마다 늘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은

이들이 대한민국을 우리 자신보다도 훨씬 더 높이 평가한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특히 감탄하는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다.

많은 외국 지식인들이

우리의 찬란한 민주혁명의 역사와 역동적 민주주의에 감동하고 경탄한다.

유럽에서는 근자에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촛불혁명이 한창이던 2016년 겨울 독일의 유력 주간지 <디 차이트>이제 유럽과 미국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배워야 한다는 파격적인 칼럼을 실었고, 2019년 세계적 권위를 가진 스웨덴의 민주주의다양성 연구소는 한국 민주주의의 국제적 위상을 이른바 ‘3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인구 5천만명 이상) 7개국(미국, 일본, 프랑스, 영국, 독일, 이탈리아, 한국) 중에서 가장 높게 평가했다.

아시아에서도 한국 민주주의는 아시아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희망으로 여겨진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나라에서는 예외 없이 한국 민주주의를 공부한다.

홍콩에서, 타이에서, 최근에는 미얀마에서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들이 모여 한국 민주주의 역사를 함께 읽고, <택시운전사> <1987> 등 영화를 함께 보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합창한다. 한국은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아시아인들에게 희망의 등불이 된 지 오래다. 참으로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일상에서 우리의 민주주의가 세계 최고 수준의 민주주의, 아시아 민주주의의 등불이라고 느낄 수 있는가.

한국 민주주의의 현실은 참으로 모순적이다.

광장에서는 세계를 감동시킨 민주주의를 이뤄냈지만,

일상에서는 아직도 군사독재 시대의 잔재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에서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을 완전히 박탈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한국의 교사는 지적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세계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다.

근대 국가의 시민으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정치적 기본권을 유린당하고 있다.

정당 가입도, 정치 활동도 할 수 없고,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도 될 수 없다.

한국의 교사는 민주주의 사회의 예외적 존재, 그야말로 정치적 천민인 것이다.

한국 교사들의 참담한 처지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더욱 도드라진다.

독일 연방의회 의원 가운데 보통 80~100(13~15%)이 교사 출신이다.

의회를 구성하는 직업군 가운데 교사는 법조인 다음으로 많다.

핀란드의 경우 국회의원 20% 정도가 교사 출신으로,

직업군 가운데 1위를 차지하는 경우가 흔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을 봐도 교사의 국회 점유율은 대개 10% 전후다.

그러나 한국을 보라.

여의도 국회의원 300명 중에 교사가 몇명이 앉아 있는가. 단 한명도 없다.

과거 교사였던 이가 2명 있을 뿐이다. 교사는 법적으로 국회의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왜 선진국에서는 국회에 그렇게 많은 교사들이 진출해 있는가.

그 이유는 자명하다.

교사는 한 사회의 가장 거대한 지식인 집단이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교사는 지식인으로서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예지력을 가진 집단이고,

높은 윤리성을 요구받는 직업이다.

그러기에 시민들은 교사에게 고도의 사회적, 정치적 책임을 떠맡긴다.

선진국일수록, 복지국가일수록 교사의 의회 점유율이 높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교사의 정치참여율이 높은 사회일수록 성숙한 사회다.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라는 찬사를 받는 대한민국이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에 관한 한 세계 최악의 후진국이라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 우리의 민주주의 수준에 걸맞게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을 정상화해야 한다.

이것은 시대의 요구이기도 하다.

16살 학생이 정당에 가입하고,

18살 학생이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시대에

교사들만 여전히 정치적 천민으로 남아 있는 그로테스크한 현실은

더 이상 용인돼서는 안 된다.

이제 한국의 교사는 정치적 권리를 제한하는 정치적 금치산 상태,

정치적 자유를 박탈하는 정치적 노예 상태에서 자신을 해방해야 한다.

박정희가 만들어놓은 교육적 파놉티콘을 무너뜨리고,

마음속에 세워진 자기검열의 감옥을 깨부수어야 한다.

교사를 감시하고 억압하는 반지성의 야만시대를 끝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이 성숙한 민주주의자가 되려면,

먼저 우리 교사들이 성숙한 민주주의자가 돼야 한다.

정치적 금치산자가 성숙한 민주주의자를 키울 수 없다.

노예가 자유인을 기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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