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수시로 좌절해도 일단 ‘용기’

닭털주 2022. 6. 26. 12:33

수시로 좌절해도 일단 용기

 

김소민 | 자유기고가

 

 

이주은(32)씨 가방엔 접시, 텀블러 따위가 들어 있다.

길거리에서 호떡이라도 사먹을 땐 접시를 꺼낸다.

그는 용기를 들고 처음 장본 날을 기억한다.

비닐이 아니라 용기에 담으면 훔쳐간다 오해할까 걱정됐다.

2019년 여름, 대형마트에서 생선을 용기에 담아달라고 했다 거절당했다. 신선도가 떨어질 위험이 있다고 했다. 못 샀다.

시장에서 당근을 장바구니에 담으려 하니 흙 떨어져서 안 된다고들 말렸다.

민망했어요. 비닐봉지 안 쓰려고 하는데 왜 눈치를 봐야 해요.”

그해 그는 각성했다.

영양사였는데 눈을 다쳐 직장을 그만뒀다.

미니멀라이프를 실현해보려 짐을 정리하다 쓰레기 문제에 눈떴다. 바로 행동했다.

서울 망원시장에서 비닐 없이 장보기 캠페인에 참여했다.

장바구니를 든 캠페인 참가자들이 몰려다니며 참여 상점에 돈쭐을 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더 당당해졌다. 동네 시장에서 흙 묻은 당근을 비닐 없이 산 날 그는 뿌듯했다”. 밀어붙였더니 상인들이 그를 알아봤다. 덤으로 주는 이들도 생겼다. 포장 없이 살 수 있는 다음 목표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은씨만의 플라스틱프리 장보기 지도가 생겼다.

2019년 여름, 그는 서울 홍대 근처에서 일회용컵을 주웠다.

일회용컵 보증금제 부활을 위한 플라스틱컵 어택활동으로 45명과 함께 1시간30분 만에 컵 1253개를 주웠다. 모아 씻어둔 컵을 받아가겠다는 재활용업체는 없었다. 서명도 받고 기자회견도 했다. 2003년에 환경부와 일부 커피프랜차이즈 업체의 업무협약 형태로 도입됐던 보증금제는 2008년 사라졌다.

2018년 국내 프랜차이즈카페와 제과점에서 쓰는 일회용컵은 28억개, 그중 5%만 회수됐다. 나머지는 땅에 묻거나 태웠다. 20205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통과됐다. 30여명이 모여 파티했다. 드디어 시행되는구나, 다들 들떴다.

2년이 흘러 시행을 2주 앞둔 지난달 20일 환경부가 보증금제를 6개월 유예했다.

그 뒤엔 또 유예할지 모른다. 컵당 300원씩 보증금을 물리자는데 자영업자들이 반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환경부는 컵을 모을 무인회수기 설치도 다 하지 못했다. 업주들이 컵당 10여원 부담을 지게 생겼다.

참담했어요.”

그러면서 그는 요즘 다시 컵을 줍는다. 환경단체와 시민들이 모여 일회용컵 보증금제 시행을 촉구하는 컵가디언즈를 꾸렸다.

나는 그가 어떻게 컵을 다시 주울 수 있는지 궁금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플라스틱 전망 보고서를 내놨다.

2019년 전세계에서 나온 플라스틱 쓰레기로 에펠탑 35천개를 세울 수 있는데 2060년엔 그 양이 3배가 될 거란다.

다른 보도를 보면,

한국인 1인당 플라스틱 배출량은 세계 3위다.

숫자가 어마어마할수록 무감각해진다.

나는 자포자기한다. 묘한 위안도 된다.

대형마트에선 토마토도 소분해 랩에 싸 판다. 개 간식도 낱개 포장이다.

내가 일회용컵 쓴들 더럽혀진 태평양에 침 한방울 더하는 것뿐이니 죄책감을 덜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어떻게 절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결혼 4년차인 그는 아기를 낳을 자신이 없다.

제 이기심은 아닐까 고민이 돼요. 기후위기, 해결 못할 거 같아요. 이미 한계치에 닿았는데도 관련 정책은 뒤로 밀리잖아요. 수시로 좌절해요. 편의점 갈 때마다, 마트 갈 때마다, 테이크아웃 컵이 쌓여 있는 걸 볼 때마다. 그런데,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어쩌겠냐고요. 그래야 사는 게 덜 후회스럽지 않겠어요.”

그의 절망해도 행동은 전염성이 강해서 그를 만난 날, 뼛속까지 게으른 나는 찬장을 뒤져 처박아둔 텀블러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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