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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의 거래방식

닭털주 2022. 7. 1. 12:58

꼰대의 거래방식

입력 : 2022.06.21. 03:00 이융희 문화연구자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클리셰 장면 중 술자리가 있다.

꽤 거대한 집단의 수장들이 술집에 모여 양주를 잔에 따르고 주거니 받거니 술자리를 즐긴다. 그리고 그곳에서 수백억원이 넘는 주요 프로젝트의 가부를 결정한다. 이런 장면들이 대중 콘텐츠에서 수없이 재생되는 까닭은 이 모습이 현실에서 너무나도 익숙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대학 시절부터 내가 사회에 나와 배운 건

사회생활의 처음과 끝이 거의 술로 끝난다는 사실이었다.

회사에 입사하면 회식부터 시작해 친해지기 위해 워크숍을 가고,

연초엔 신년회, 연말엔 송년회, 그리고 중간중간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술 한잔 하자라는 상사와 후임의 이야기까지.

이 사회는 술이 너무나 많이 필요한 듯했다.

 

그러나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건

앞선 대중 콘텐츠의 장면처럼 사회의 수많은 일원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 술을 먹고, 결정을 내리며 술을 먹고, 결정을 내린 이후에 술을 먹는다는 사실이었다.

사안의 경중과 상관없이 마치 술을 마시는 것이 중요한 사업의 수단이 된 것처럼 굴었다.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음주 자체를 즐겁게 즐길 수는 있겠으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순간에 음주가 끼어들 이유가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하면 윗세대들이 술을 마시며 하는 결정과 논의는 그 나름대로의 흥취와 기능이 있다고 강변하곤 했다.

술이 들어갔을 때 어려운 이야기도 여러 핑계를 대며 꺼낼 수 있고,

상대의 진심을 제대로 알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런 설명을 들으며 나는 이러한 주취 중의 결정을 꼰대의 거래방식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러니까 이것은 공정한 방식의 올바른 의사결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주취 중에 일어나는 수많은 실수들에 기대는 요행의 방식인 셈이다.

 

날것은 날것이지, 진심이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살아가는 동안 배웠던 수많은 윤리와 질서가 사회를 유지시킨다.

그 어떤 판사도 주취 중에 저지른 범죄에 대해 진심이기 때문에 주취감형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취감형은

심신미약으로 인해 가해자가 진심이 아니었음을 감안하는 방식이 아닌가.

이처럼 알코올의 효과는 진심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실수를 유발하게끔 만들기 때문이다.

을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갑이 실수로 관대한 결정을 내리길 바라고,

갑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을이 실수로 불리한 결정에 수긍하기를 바란다.

이러한 결정이 갖는 기능이란

결국 이 사회의 공정함을 끊임없이 무너뜨리는 망치질일 뿐이리라.

 

그런데 이런 술자리 권하는 사회,

그리고 술자리 권하는 리더의 모습이 아직도 끊임없이 매스컴과 사회면을 통해 소개된다.

많은 기성세대들이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술자리를 찾으며, 술자리를 권한다.

그들의 계산 속에는 그렇게 이야기를 듣는 방식 자체가 꼰대의 것이라는 사고가 없다.

그것은 허심탄회한 진심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간의 실수가 누적되는 것이다.

그것이 개인과 개인의 관계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그것이 사회의 규모로 커지면 문제가 된다.

거대한 알코올 중독의 사회를 건전하고 올바른 사회라고 여기는 건 분명히 문제가 있다.

언제쯤 우리는 술냄새가 풍기지 않는 사회를 갖게 될까?

 

꼰대술자리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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