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103세 철학자' 김형석이 한국사회를 보는 눈

닭털주 2023. 11. 4. 19:36

'103세 철학자' 김형석이 한국사회를 보는 눈

 

이명재 에디터 promes65@daum.net

미디어비평 입력 2023.11.01. 10:41 수정 2023.11.03 10:09

 

 

언론들, '100년 경륜' 권위로 '친윤' 발언 지면화

 

그 자신도 '힐링 인생관' 넘어 정치현실 과잉언급

 

편벽된 인식을 '원로'의 가르침으로 포장해선 곤란

 

 

'103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유력한 언론들에 최근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를 원로로 받드는 언론은 '100년을 살아본 어른'으로서 한국사회를 일깨워주는 스승을 모시듯 공경과 환대가 지극한데, 1일자 조선일보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난 18개월간의 국정에 대한 그의 평가를 싣고 있다.

 

한국 언론의 공경과 환대를 받는 이의 윤 정부 평가

 

그는 윤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는 이로서, 검찰총장 윤석열이 20213월 초 사퇴해 보름여 칩거한 뒤에 첫 외부 일정으로 잡은 게 바로 김 교수 집을 찾아간 것이었다.

그에게는 윤 대통령의 부친과 연세대에서 같이 재직했던 인연도 있다.

 

조선일보의 기사대로 김 교수는 정치 입문을 고민하던 그에게 여러 조언을 건넸고, 그는 이듬해 3월 제20대 대선에서 당선돼 대통령이 됐으니 그는 지금의 대통령 윤석열이 있게 한 것에 대해 일정한 공로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일보뿐만 아니라 김 교수의 말은 최근 부쩍 주요 언론에 빈번하게 실리고 있다.

인터뷰뿐만 아니라 그 자신도 활발히 기고를 하면서 100세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1일자 조선일보 실린 김형석 교수의 인터뷰 기사. 조선일보 홈페이지 갈무리

 

100세를 살아본 이의 인생관, 그것도 철학자라의 말이라면 더욱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러나 그의 말을 듣다 보면

사람의 연륜이나 경륜은 반드시 나이에 비례하지만은 않는다는 것, 살아온 세월의 길이가 그만큼의 세상을 보는 눈의 축적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무엇보다 그 자신의 말처럼 늘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을 확인시켜 준다.

특히 그 공부는 무엇보다 세상을 넓게 보는 것으로써 이뤄진다는 것,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

자신이 오랫동안 굳혀 온 생각을 더하는 식으로만은 안 된다는 것을 새삼 확인시켜 준다.

중앙일보의 1027일자 인터뷰에서 김 교수는 17세 때 만난 안창호 선생에 대해 얘기하면서 문학이나 철학, 역사를 공부하면 기독교 신앙을 인간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서 그래야 '더 높은 수준의 대화'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안창호 선생으로부터 역사 공부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하는데 그에게 한국 현대의 '역사'는 어떤 것인지를 스스로 자신의 서가에서 좀 더 살펴보고 공부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공부하는 마음이 있을 때 '100세를 살아보니'라고 얘기하는 것에는

그와 함께 ‘100세를 살아봤지만이라는 '학생'의 마음가짐을 갖게 되고,

그럴 때라야 비로소 어른이 되고 스승이 되는 법이라는 것을 새겼으면 한다.

 

"망가진 나라 되살리려는 대통령, 얼마나 힘들겠는가"

 

윤 정부에 대한 평가를 하면서 김 교수는 그에 대한 안쓰러움부터 내비쳤다.

윤 대통령이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 취임했다면서 전임 문재인 정부가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나라를 바로잡으려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라고 동정한다. 다른 신문의 칼럼들에서도 그가 한탄했듯이 우리 경제를 세계 10위권 밖으로 후퇴시킨 문재인 정권” “국민들이 용납할 수 없는 전 정권의 행태” “대한민국과 국민의 불행이었던 정권의 뒤를 이어받았으니 윤석열 정부가 얼마나 힘든 상황에서 출범했느냐고 묻는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 때) 공무원들이 통계 조작했던 사실이 최근 드러났는데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마약 문제도 심각한데 지난 정부 5년간 손도 안 댄 거 같다면서 나라가 병든 상태’ ‘국가가 분열된 상태에서 대통령직에 올랐으니 많이 힘들 거라면서 전 정부가 남긴 사회의 질병들을 잘 고치라고 당부했다.

 

그는 전() 정부가 통계 조작했다는 여당과 일부 언론의 주장을 기정사실로 여긴다.

현 정부와 일부 언론에서 요란스레 얘기하는 마약 문제가 과연 그만큼 심각해졌는지부터가 의문이지만, 그것을 한 정권의 성패를 판단할 만큼의 중대한 문제로 규정한다. 서해안 공무원 피살도 자진 월북으로 조작하려 했다면이라고 단정하듯 말한다.

 

실패한 전 정부로 인해 무너질 뻔한 나라를 다시 세울 역사적 과제가 주어진 현 정부라는 그의 이분법은 확고하다. 다른 매체의 칼럼에서도 윤석열 정부와 국민은 더 소망스러운 대한민국의 장래를 위하여, 문재인 정권을 평가 심판해야 한다면서 이를 진실이 거짓을 심판하고, 정의가 불의를 심판하는것으로 정의했다.

 

그가 보기엔 다행히도 윤석열 정부는 몇 가지 주요한 업적을 세웠는데, 무엇보다 '한일 관계 회복'을 먼저 꼽는다. '제일 잘한 일 중에 하나'가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며 자유주의 진영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말한다.

“‘세계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한국도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여기에서 자신의 사표인 도산 안창호의 말을 빌려 악으로는 악을 되갚을 수 없다고 하며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 요구나 최근 일본의 호전적 행보에 대해 견제하는 것을 ''으로 지적한다. 일본에 대한 종속 굴욕 외교를 규탄하고 대등한 관계를 요구하는 것을 악행으로, 그런 주장을 펴는 국민들을 악인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첫 인상에 대해 첫 만남 때 그릇이 크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가 말한 그릇이 음식과 술을 담는 그릇을 얘기한 게 아니라면 그의 정치적 그릇을 말한 것일 텐데, 그러나 김 교수는 오히려 그의 그릇을 자꾸 작게 만들려는 듯했다.

대통령이 야당에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아직은 이른 것 같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로 대는 것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 정권을 무너뜨리고 나는 법적 처벌을 피해 살아남겠다는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의 '큰 그릇'에 야당은 절대 들여 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진보와 보수가 공존해야 하는데 윤 대통령이 잘 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데, 그러나 끝내 그러나 좌파엔 진실이 없다. 언론까지 통제해 진실을 조작해서라도 이기려는 게 좌파다라고 못 박는다.

 

우리 사회의 '좌파''좌파'를 무분별하게 따르는 국민들에 대해 그는 엄하게 꾸짖는다.

728일 동아일보 칼럼에서는 후쿠시마 핵오염수 투기에 대해 과학적 판단을 믿고 따르는 세계 속에서 더불어민주당만이 부정하고 거부할 뿐만 아니라, 지도층 인사들의 발언과 그 뒤를 따르는 세력은 어떤 일을 감행하고 있는가라고 호통을 친다.

광우병 시위와 함께 국격과 국민을 후진국으로 추락시키는짓으로, “세계 과학자들의 판단을 거부하는 괴담을 의도적으로 조작하고 있는 것이라고 나무란다.

 

민주화 운동에 대한 깊은 반감인가

 

양평 고속도로 의혹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서울양평 고속도로 건설은 어떤가. 사심 없는 초등학교 반장들에게 맡겨도 해결할 수 있는 과제를 야당 정치인과 행정 책임자가 창피스러운 갈등과 주민 분열의 고통과 불안을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반장들도 알 수 있는' 명백한 의혹을 제기한 것을 야당 정치인들이 '창피스럽게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국민들의 후쿠시마 오염수 불안에 대해, 양평 게이트 의혹에 대해 단 한마디 말이 없는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흔들림이 없다.

'지금 대통령이 다시 찾아온다면 무슨 말을 해주겠는가'라는 질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된 대통령으로 남아라고 했다.

그에게는 윤석열은 처음부터 '진실된 이'였으며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진실된 태도로 일하면' 자연스레 사회 통합이 되고 나중에 제대로 평가받을 거라고 말한다.

 

김 교수의 말에선 특히 야당을 '운동권'으로 등치하는 것과 함께 운동권에 대한 반감이 숨김 없이 나타난다. 운동권에 대한 적개심이라고 할 정도이다.

 

민주화 이후 법조계와 운동권 인사들이 정계를 양분했습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운동권들은 싸워 쟁취하는 데만 도사일 뿐 전혀 공부를 안 했습니다. 법조계 인사들은 공부도 많이 한 편이니 운동권보다야 낫지요.”

 

그는 조선일보 1일자 인터뷰에서 인사(人事)에 대해 말하면서

전두환과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를 했지만 각계 전문가들을 찾아가 도와달라고 호소하며 사람을 모았다면서 윤 대통령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가 인사난같은데, 등용의 폭을 넓히고 젊은 사람들도 많이 썼으면 좋겠다고 조언한다. 사람을 널리 구하라는 조언을 하면서도 끝내 운동권 출신만은 안 된다고 거듭 쐐기를 박는다.

 

최근 인요한씨가 생각은 달라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고 했던데, 동의합니다.

그런데 생각이 다른 것은 괜찮지만, 목적이 다른 사람과는 함께 일 못 해요. 지금 우리 사회는 그 문제에 봉착해 있어요. 나라를 흔들려는 극단의 좌파와는 함께 가기 어렵습니다.”

 

지난 1970, 80년대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시절,

김형석 교수는 이른바 권력에 대해, 사회에 대해 발언하는 지식인은 아니었다.

그는 강의실 밖으로 나서지 않으며, 책에서 인생론을 펴 보였다.

그 시절 그의 책과 글에서 적잖은 사람들은 위로를 받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때의 철학자 김형석으로 돌아가는 것인 듯하다.

그 당의정 같은 책, 마음을 편하게 해 주는 이른바 힐링 철학서를 쓸 때처럼 현실 문제에 대해서는 좀 더 삼가고 조심하는 게 좋을 듯하다.

한국사회, 한국사회의 현실에 대해 얘기할 때는

좀 더 공부를 하고 말과 글을 펴는 게 좋을 듯하다.

 

당시 거리에서 감옥에서 피를 흘렸던 이들,

거리에 나서지 않더라도 폭압과 야만의 시대에 신음했던 이들의 고통과 눈물과 수난에 대해서는 잠시라도 생각을 해 보는 게 좋겠다. 그것이 100년을 살아본 이로서의 어른다운 모습 아니겠는가.

 

친구 윤동주 시인의 '쉽게 씌어진 시'가 말하는 것

 

김 교수는 시인 윤동주와 평양 숭실중 같은 반 친구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한다.

윤동주 시인의 시들 중에 그의 길지 않은 생애 최후의 작품으로 알려진 건 '쉽게 씌어진 시'라는 제목의 시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25세의 청년에게는 너무도 어려웠던 일,

뭔가를 말하고 쓴다는 것이 너무도 어려웠던 그 일이 누군가에게는,

그가 그 시인의 친구라고 하더라도, 매우 쉬운 일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