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친애하는 나의 도시, 부산

닭털주 2023. 12. 25. 16:06

친애하는 나의 도시, 부산

 

 

지난 11월 눈 내린 부산 송상현광장. 사진 이고운

 

[서울 말고] 이고운부산 엠비시 피디

 

 

부산에 돌아와 맞는 여섯 번째 겨울.

12월 초만 해도 은행나무에 노란 잎이 남아있을 만큼 겨울이 더디게 오는 것 같더니, 부쩍 추워졌다. 어젠 점심 때 짧게 눈도 내렸다. 집중해 보지 않으면 모를 만큼 희미한 눈발이었다. 그마저도 십분 안에 그친 눈을 보며, 동료들과 함께

이 정도면 부산에선 폭설인데요”,

교통마비 때문에 집에 못 가겠네요같은 썰렁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었다.

오늘은 오랜만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는 소식에 내복이며, 털모자며,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외투를 챙겼다. 어느새 부산의 겨울에 익숙해졌다. 희뿌연 게 흩날리기만 해도 마음이 들뜨고,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는 소식만 들어도 혹한이라는 생각에 유난을 떨게 된다.

영락없는 남쪽 사람의 겨울 일상이다.

서울에서 살았던 십년, 어떻게 그 추위를 견뎠는지 모를 일이다.

고향 방송국에 취직해 부산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고향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이 도시가 낯설게 느껴졌다.

고향으로 돌아온 게 아니라 고향을 떠난 것만 같았다.

두고 온 것들을 그리워하니 곁에 있는 것들이 마음에 찰 리 없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내가 코트를 입고 견딜 수 있는 따뜻한 겨울이 있고, 언제든 걸어서 만날 수 있는 바다가 가까이 있다는 건 큰 위로가 되지 않았다.

 

이십 대를 꼬박 보낸 서울에선 지치고 외로울 때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았다. 그런 날엔 시든 배추처럼 만원 지하철에 실려 있더라도 합정역 부근에서 고개를 들어 한강을 보고, 무작정 광화문으로 가서 차가운 공기를 맡으며 걷고, 낡고 익숙한 왕십리 골목의 술집에서 친구를 만났다.

하지만 십년 만에 돌아온 고향에서 힘들 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럴 때면 여기엔 없고 거기에만 있는 풍경과 사람들을 헤아리게 됐다.

고향에서 한동안 그렇게 향수병을 앓았다.

요즘은 마음이 힘들 때면 사람들이 많은 시간대를 피해 전포동 골목에 간다.

저마다 독특한 분위기를 뽐내는 가게들을 구경한 뒤, 좋아하는 카페에서 따뜻하고 진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나면 울렁거리던 마음이 제법 가라앉는다.

서면의 대형서점에 가서 책 구경을 하기도 하고, 남편과 함께 부산시민공원에 가기도 한다.

잔디가 푸릇푸릇한 공원 한가운데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김밥을 먹는다.

뛰어노는 강아지들과 아이들을 구경하며 아주 소소하고 시시한 이야기들을 주고받다 보면 부쩍 마음이 가볍고 산뜻해진다. 부산에서 지치고 힘든 마음을 채울 수 있게 하는 것들의 목록이 길어질수록, 고향으로 돌아와 살아가는 일상이 익숙해졌다.

올해가 지나면 삼십 대의 절반 가까이 부산에서 보낸 셈이 된다.

고향으로 돌아와 이곳에서 자랄 땐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보고, 알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났다. 모든 것이 좋지만은 않았다.

이십 대의 내가 아무리 해도 서울의 북적이는 인파까지 좋아할 수는 없었듯이,

삼십 대의 나는 고향에서 아무리 부대껴도 좋아지지 않는 것들을 발견한다.

습기를 머금은 여름 바닷가의 공기나 가끔 멀미가 날 만큼 거친 운전 같은 것들.

다만 도시를 사랑하는 일은 사람을 사랑하는 일과도 닮아서,

도저히 익숙해질 것 같지 않은 모서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다가도 어처구니없게 사소한 무언가에 마음이 녹아내린다.

좋아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무언가 말이다.

공항 가는 경전철에서 보는 낙동강의 윤슬,

전포동 골목에 묻어나는 커피 향기,

정확한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어린이의 말투와 모두의 마음을 크리스마스로 만드는 남쪽 도시의 작고 귀한 눈발 같은 것들.

내가 사는 이 도시의 사소한 사랑스러움을 마음에 쌓아가며,

이곳으로 돌아와 맞는 여섯 번째 겨울을 보내고 있다.

 

제목은 광주엠비시(MBC), 여수엠비시, 엠비시경남이 공동제작한 프로그램에서 따왔습니다.

 

<추가> 낱말- 윤슬 -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인터넷에서 찾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