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사는 기쁨을 찾아서
입력 : 2023.11.26 20:20 수정 : 2023.11.26. 20:21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헤엄출판사 대표
엄마랑 구제 옷 쇼핑을 같이 다닌 건 열 살 때부터다.
헌 옷을 산 뒤 세탁해서 입는 일상이 우리 모녀에겐 익숙했다. 헌 옷은 크고 작은 하자가 있었지만 저렴했고 선택지도 많았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구제 시장의 풍요 속에서 멋을 부리며 살았다. 엄마와 나의 키가 똑같아진 고등학생 때부터는 서로 옷을 돌려가며 입기도 했다.
나는 엄마와 옷을 고르면서 하는 대화들을 좋아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보여지고 싶은 방식,
체형,
콤플렉스,
자랑스러운 부위,
피해야 하는 스타일,
선호하는 색과 패턴,
편안하면서도 고유한 그 모든 옷차림들….
그러나 옷 자체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다 보면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 세계에 대한 이해에 다다르게 된다.
모든 옷에는 착취가 묻어 있다
전례 없이 많은 옷이 생산되고 버려지는 시대다.
전 세계적인 패션 산업의 흐름을 살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불평등이다.
옷을 소비하는 나라와 생산하는 나라 사이의 불평등.
파는 나라와 버리는 나라의 불평등.
우아한 쇼핑의 도시가 있다면 말도 안 되는 저임금을 받고 산재에 시달리면서 의류 공장에서 일하는 개발도상국이 있고, 어마어마한 섬유쓰레기를 감당하며 환경 재난을 겪는 국가도 따로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옷난리와, “한 해에 옷 9200만t이 버려지는 와중에 신제품 1000억벌을 아무렇지 않게 찍어내는 세상”에 회의를 느끼고는 옷 사기를 5년째 멈춘 사람이 있다.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를 쓴 ‘당근’ 콘텐츠 에디터이자 해양환경단체 활동가인 이소연 작가다. 그는 옷이라는 물질의 처음과 끝, 생산 과정에서의 노동 착취, 끝나도 끝나지 않는 섬유쓰레기 문제, 의생활의 패러다임 전환을 두루 탐구했다. 착취 없는 멋부림을 궁리하는 창의적인 책이다.
옷은 석유와 수많은 화학물질 등의 총합이므로 제작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폐수를 발생시킨다. 의류 염색 공장은 주로 동남아시아와 중국에 위치해 있다. 미국의 색채연구소 팬톤은 매년 ‘올해의 색’을 발표하는데 동남아와 중국 공장 인근의 강물이 그해 유행하는 색으로 물든다고 한다. 의류를 지나치게 빠르게 많이 생산하여 이윤을 독차지하면서 쓰레기와 생태계 파괴는 개발도상국에 전가하는 패스트패션 기업과 우리 자신의 소비 생활에 관해 책은 분석한다.
“유행이 지난 것에 금방 싫증을 느끼고 새로운 유행을 찾아 떠난다. 그사이 패스트패션 회사 CEO는 세계 5위까지 부호의 자리를 지키며 배를 불리고, 저임금 국가의 노동자들은 착취당하다 죽음에 이르며,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섬유폐기물은 지구를 덮치고 있다.”
그린워싱에 속지 말고 덜 사자
“내 수중에 있는 물건을 되도록 여러 번 오랫동안 쓰는 것이 가장 좋은 제로웨이스트”라고 이소연 작가는 말한다.
친환경이나 리사이클, 업사이클을 내세우는 제품 역시 완벽하지 않다.
한국환경공단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한 해에만 섬유폐기물이 37만664t이나 발생했는데 그중 재활용된 폐섬유류는 고작 6%라고 한다. 윤리적 소비로 알려져 있는 폐페트병 티셔츠도 공정을 따져보면 사실상 친환경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내가 애용해온 빈티지 의류는 패스트패션 산업의 최전선에 있지는 않아도 그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는 하다. 옷의 생애를 조금 늘릴 수는 있겠으나 패스트패션의 근본적 대안이 되기는 어렵다.
국내 섬유쓰레기 중 빈티지 의류로 가는 비율은 고작 5% 정도다. 내가 산 물건이 잘 재활용될 것이라는 기대는 대체로 현실이 되지 않는다. 아직은 옷이 또 다른 옷이 되는 이상적 순환경제가 가능하지 않은 시대다. 옷 생산량 자체를 줄이는 게 핵심이다.
매해 11월 마지막 주는 ‘아무것도 사지 않는 날(Buy Nothing Day)’이라고 한다.
이훤 작가의 중고거래에 관한 책 <아무튼, 당근마켓>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물욕이 생기면 스스로에게 말해줘요. 지금 있는 것만으로 충분해. 이거면 됐어. 하고 마음의 방향을 틀어요.”
무언가를 멈추는 일이 장마철에 빗방울을 피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느껴지는 세상이다.
빠르고 잦은 소비를 부추기는 방향으로 설계된 이 시대에서 착취에 덜 가담하려면 의지와 기쁨이 필요하다. 죄책감만으로 바뀌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 않던가. 마음을 틀어서 새로운 쾌락을 연습해야 할 때다.
나는 덜 사는 기쁨을 진정으로 알아가고 싶다.
그래야 덜 만들어질 테니까.
그래야 덜 버려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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