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튼소리
입력 : 2024.11.10 20:42 수정 : 2024.11.10. 20:44 서정홍 산골 농부
농사철이 끝나고 나면 농부들은 골병든 몸을 돌보느라 정형외과로 한의원으로 다니느라 바쁘다. 모두 지구 가열화로 농사짓기가 갈수록 어려워 몸과 마음이 몇배로 고달파서 일어난 일이라 한다.
이런 현상을 ‘기후 재난’이라 한다.
기후 재난은 농부들에게 가장 빠르고 험악하게 다가온다.
오늘 낮에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후배가 명예퇴직을 준비하면서 찾아왔다.
“선배님, 앞으로 농촌에서 먹고살려면 지켜야 할 10계명 같은 거 없습니까? 생각나는 대로 몇가지만 들려주면 고맙겠습니다. 아무튼 저는 남은 삶을 아내와 함께 자연 속에서 몸을 움직이며 살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제 몸에서 ‘사람 냄새’가 날 것 같습니다.”
후배 말을 듣고 갑자기 거창고등학교 ‘직업 선택 10계명’ 중 몇가지가 떠올랐다.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승진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앞다투어 모여드는 곳에는 절대로 가지 말고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사회적 존경을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이 모든 게 앞으로 후배가 선택할 ‘농부’에 딱 어울리는 말이구나 싶었다.
농촌은 후배를 꼭 필요로 한다. 농부는 (승진할 필요도 없지만) 승진 기회가 없다.
농사는 해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대부분 농부의 길은 가지 않으려고 한다.
장래성이 거의 없다.
빚지지 않고 살면 다행이고 기적이다.
한국 땅에서 농부를 존경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런 현실을 잘 알면서도 농사지으며 살고 싶다는 후배를 바라보니 희망만은 버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생각나는 대로 후배한테 몇가지 들려주었다.
첫째, 사람 관계를 잘 풀어야 한다. 이웃을 함부로 험담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섬겨야 한다.
비위 거슬리는 말을 듣거나 이웃과 다투고 나면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얼른 잊고 용서하며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 잘못을 용서해야만 내 잘못도 용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농사일에 치이지 말아야 한다. 자기 몸에 맞추어 시간을 정해놓고 일하는 게 좋다.
그래야 골병이 들지 않는다.
그리고 작물을 기르려면 어떠한 처지에서도 기쁨이 넘쳐야 한다.
바라는 모든 걸 이루었다 해도 기쁨이 없으면 무슨 가치가 있으랴.
셋째, 돈을 많이 벌려고 하지 마라.
돈을 많이 벌려고 마음먹으면 빚을 내거나 투자를 해야만 한다.
더구나 싼 이자라 해서 함부로 빌렸다가는 그 빚에 질질 끌려다니고 만다.
그렇게 살면 팍팍한 도시에서 사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아무튼 공부하는 마음으로 살면 좋겠다.
농촌에 살면 배우고 깨달을 게 많다.
몸과 마음을 살리는 법,
토종 작물과 약초 기르는 법,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유기농업,
모두를 살리는 가족 소농과 치유농업,
삶을 가꾸는 글쓰기, 사진 찍기, 그림 그리기,
심리 상담과 같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다 보면 남은 삶이 빛날 것이다.
아직도 이런 허튼소리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니! 참 다행이다.
'칼럼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닭과 함께 늙어갈 수 있을까 (4) | 2024.11.12 |
---|---|
그 선생님의 막다른 골목 [똑똑! 한국사회] (4) | 2024.11.12 |
헛똑똑이 (2) | 2024.11.11 |
톡 쏘는 맛 없이 밍밍한 소주 닮아가는 신문들 (7) | 2024.11.10 |
빨래에 관하여 (3) | 2024.1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