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아파트 블루스

닭털주 2022. 2. 7. 13:26

아파트 블루스

 

서한나 | 보슈(BOSHU) 공동대표·<사랑의 은어> 저자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엘리베이터에는 거울 깬 사람들 시시티브이(CCTV)로 확인했으니 관리사무소로 연락하라는 종이가 있고 지하주차장에는 대소변 금지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다.

퇴근길에 주차장 기둥에서 소변을 보는 중년 남성을 마주치고 자주 큰소리로 시비를 거는 젊은 남성을 만난다. 이웃은 소음과 호흡을 나누는 사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곳에는 나누지 않은 소음을 듣는 이웃이 있다.

어느 밤에는 옆집 사람이 현관을 두드렸다. 참을 수 없는 소리가 난다는 것이었다.

누워 있던 내 몸에서 날숨이 크게 나와 그를 괴롭힌 것일까 내 호흡기를 의심했지만, 그가 모든 집에 돌아가며 항의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그의 방문은 내게 더욱 두려운 것이 되었다. 인터폰으로 그를 본 뒤, 나는 현관을 열기 전 급소 공격을 시뮬레이션하며 전시 상태를 체험하곤 했다.

나는 집 안에서도 옆옆집이 언제 담뱃불을 붙이고 끄는지 알 수 있다.

그는 노상 담배를 피운다. 열린 문 사이로 아이가 기어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중얼거리고 냄비가 들썩이게 다리를 떨어댄다. 복도 끝의 집을 향해 가면서 이들의 문고리에 걸린 생필품 꾸러미를 발견한다. 다음날에는 어린이집 등하원 차량에 대고 다음달에 낼 돈이 없다고 우는 이웃을 본다.

알토란 같은 땅이나 실속 있는 집 한 채 가지지 않은 우리가 아침에도 피로한 모습으로 거울 없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느낀다.

아이파크 엘리베이터에서 사람들이 서로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낯설었던 것만큼이나, 사람과 눈을 피하는 이곳의 분위기가 익숙하다. 이웃을 수상하게 여기다 보면 스스로가 수상한 기분이 드는데, 그것은 우리가 동네의 인상을 만드는 방식으로 우리의 인상을 만들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는 엘리베이터에서 두 중년 여성이 헤어지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엘리베이터 바깥에 선 사람이 엘리베이터 타는 사람을 배웅했다. 바깥의 그는 안에 한 사람이 타 있다고 안내한 뒤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했다. 내 앞에 선 그가 숫자를 손으로 만지면 음성안내가 들렸다.

붉게 지는 해를 받으며 집에 오는 길에는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을 놀이터에서 보내는 이들을 만났다. 우리가 모여 살게 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밤마다 현관을 두드리며 날뛰는 아저씨의 멱살을 잡아도, 애가 우는 집에 대고 담배 나가서 실컷 피우라고 외쳐도, 커뮤니티 센터에서 제공하는 웃음치료 프로그램이나 에어로빅 수업에 참여해도 그 이유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전에 생각하던 낭만적인 고백이란 남에게든 나에게든 도망가자고 말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지나가다 좋은 곳을 만나면 여기에 집 구해서 살까 생각한다. 한바퀴 돌고 의자에 앉아보며 놀다가 날이 저물면 이웃을 거쳐 우리 집에 도착한다. 뒷산과 채광이 좋은 이 집이 마음에 들지만, 못도 박고 소파도 들일 내 집을 기다리고 있다.

땅과 집을 나누는 것은 공공의 일이다.

누구든 빛 잘 들고 산과 물을 낀 집에 뿌리내리고 싶을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시끄러운 와중에 집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하고 여성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주택을 만들겠다고 말하는 일관된 목소리가 들린다. 신문과 방송이 좀처럼 그의 얼굴을 비추지 않지만 어떤 이들은 한번 만난 그를 기억한다.

사람이 모여드는 분리수거장 안에서 이랑의 노래를 듣는다.

늑대가 나타났다라는 제목의 노래는 귓속을 울린다.

내 친구들은 모두 가난합니다. 이 가난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플라스틱을 플라스틱에 버리고 유리를 유리에 버리는 동안 노래는 내 안에서 이렇게 끝난다.

이 땅에는 충격이 필요합니다이웃과 노래를 나누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