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우리는 어쩌다 전쟁을 할까

닭털주 2022. 3. 8. 17:56

우린 어쩌다 매일 전쟁을 할까

장은교 소통·젠더데스크

 

 

우리는 전쟁이 없는 세상을 알지 못했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벨라루스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서 이렇게 썼다. 그리고 또 이렇게 썼다.

나는 전쟁이 아니라 전쟁터의 사람들을 이야기한다.”

 

전쟁이 시작됐다.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다들 묻는다.

러시아는 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는가.

질문을 바꾸고 싶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왜 우크라이나 침공을 결정했는가.

정치인과 군인이 나라의 이름을 독점하게 두고 싶지 않다.

정치인과 군인의 전쟁엔 승패가 있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전쟁엔 승자가 없다.

덜 죽었다, 덜 빼앗겼다로 승패를 가를 수 없다.

전쟁의 역사는 패배의 역사다. 상흔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전쟁을 목격하며 새삼 느끼는 것이 있다.

참혹한 전쟁의 언어를 너무나 쉽게 써왔다는 사실이다.

전쟁이다라는 말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부터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한 가벼운 놀이에도 전쟁이란 단어는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말로 자주 쓰인다. K팝 스타들이 외국 공연에 갔을 때 상륙작전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스포츠 경기에서 용병’ ‘전사’ ‘무적군단’ ‘승전보같은 단어는 너무 흔해 다른 단어를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다.

한국과 일본의 경기는 늘 ·일전이라 불린다.

전쟁용어가 많이 쓰이는 곳 가운데 하나가 정치권이다.

국회가 열리면 상임위원회별로 입법전쟁이 벌어진다. 선거를 앞두고서는 늘 전운이 감돌고’, ‘격전지를 향해 출정식을 한다. 상대 후보를 향해 포문을 열거나’ ‘직격탄을 날리고’, 상대적으로 인기 있는 곳을 수성하기 위해 화력을 집중한다.

나 역시 전쟁용어를 별 생각 없이 써왔다.

일할 땐 늘 삽질을 하는기분이고, ‘총대를 메주는사람이 있으면 고마웠다. 그렇게 비장했을까. 아니다. 그저 습관이었을 뿐이다. 전쟁을 경험해본 적도 없는 내 무의식 속에 전쟁의 용어들이 습관처럼 달라붙어 있다니 놀랍고 끔찍한 일이다. 진짜 전쟁을 겪으며 자식세대가 조금이라도 안전하고 평화롭기만을 바랐을 선조들이 본다면 슬퍼할 일이다.

일상 속에서도 어떤 일들은 전쟁같다.

세계여성의날(8)을 맞아 지난 5일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열린 한국여성대회에서는 젠더공약은 사라지고 혐오만 이용하는 대선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나쁜 정치 때문에 어떤 이들은 정말로 죽는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과 세월호 희생자들, 산업재해 사망자들과 변희수 하사, 김기홍씨의 죽음은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왜 일상을 전쟁처럼 살게 됐을까.

왜 전쟁용어를 아무렇지 않게 쓰게 됐을까.

 

<전쟁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위대한 사상에 필요한 건 작은 사람이지, 결코 큰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전쟁의 역사를 승리의 역사로 몰래 바꿔치기해버렸다.”

하루 뒤 끝날 선거가 특정 정당이나 후보의 승리로 기록되지 않았으면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한 걸음이 되기를,

그래서 부디 길고 긴 전쟁의 흔적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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