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빈곤한 문제의식이 문제다

닭털주 2022. 4. 26. 10:12

빈곤한 문제의식이 문제다

홍경한 미술평론가·전시기획자

 

 

유인촌은 빼어난 재능을 지닌 연기자였다. 1974년 배우생활을 시작한 이래 장수프로그램이었던 <전원일기>를 비롯한 다양한 드라마와 연극을 통해 이름을 알렸고, 역사 다큐멘터리 MC로 활약하며 쌓은 지적인 이미지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는 정치인이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이후 10여년간 이명박의 측근으로 있으면서 여러 자리를 꿰찼다. 이명박이 서울시장에 당선되자 인수위원을 지냈으며, 한나라당 후보로 대통령선거에 나선 2007년엔 문화예술정책위원장 직무를 대행했다. 이명박 당선 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그사이 문화예술 관련기관 수장자리도 두루 거쳤다.

2004년 국내 최대의 광역 문화예술지원 기관인 서울문화재단 대표를 맡았고,

2008년 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역임했다.

2011년 장관 퇴임 이후에도 대통령실 문화특별보좌관으로,

예술의전당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모두 이명박 재임 기간과 겹쳐 그야말로 ‘MB이라고 할 만했다.

정치인 유인촌은 배우 유인촌과 달랐다.

합리와 공정의 기존 이미지 대신 ‘MB 정부의 행동대장이라는 새로운 이미지가 부여됐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임명되자 문화예술계를 좌파가 장악하고 있다는 색깔론을 앞세워 무시무시한 권력의 검을 휘둘렀다.

대놓고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기관장은 스스로 물러나라며 이른바 좌파 적출에 나섰다. 대상은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된 문체부 산하 공공기관장들이었다. 그와 이명박 정부가 보기에 당시의 그들은 도려내야 할 이념의 잔재였고, 한국 문화예술계는 좌와 우로 양분된 채 주도권 투쟁이나 일삼는 패권적 세계였다.

그 결과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비롯해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 등 문화예술계 대표 기관장들이 줄줄이 옷을 벗었다. 적어도 열댓 명 이상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알아서 그만두거나 해임되었고 퇴임을 강요당했다. 역사는 이를 진보지식인 탄압 혹은 축출로 기록하고 있다.

최근 서울문화재단은 창립 18주년을 맞아 유인촌에게 특별공로상을 수여했다.

과거 재단대표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촬영한 광고 출연료 27000만원을 기부금으로 기탁하며 문화예술계를 지원해온 선행이 근거가 됐다.

이창기 재단대표 또한 홍보자료를 통해 선행을 알리기 위해 특별공로상을 드린다고 했다.

사재를 기부해 문화예술인들을 지원한 건 칭찬받을 일이다.

그러나 유인촌과 당시 정부의 칼춤에 희생된 것은 개인이 아니라 이 나라 예술현장임을 기억한다면 그의 선행은 한참 가벼워진다.

예술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크게 위축시킨 사건의 장본인임을 상기한다면

특별공로상 수여는 부끄러운 일이다.

 

물론 서울문화재단이 특별하게 대우하며 공로를 치하한들 숙청활극의 주인공 역할을 자처하며 코드라는 새로운 형태의 블랙리스트를 만들어낸 그의 지난 시간까지 덮이는 건 아니다.

그게 역사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는 무엇이 진짜 특별한지 구분조차 못하는 서울문화재단의 빈곤한 문제의식도 포함된다.

 

 

서울문화재단유인촌이명박 정부초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창립 18주년특별공로상이창기 재단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