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표절 기준? 예전에도 분명했어요

닭털주 2022. 4. 26. 10:14

표절 기준? 예전에도 분명했어요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표절 논란에 휘말렸던 한 유력 정치인의 석사학위 논문이 해당 대학으로부터 표절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늘 그렇듯이 연구윤리지침이 제정되기 이전에는 표절에 대한 기준이 모호했고 통상적인 관행이었다는 투의 설명도 따라붙었다.

해당 정치인은 몇년 전부터 이미 논란이 된 학위를 반납했으니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나는 이 특정 정치인만을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가짜 논문과, 그렇게 얻은 가짜 학위와, 표절 시비와, 학위 반납이 이어져 왔다. 정치인도, 고위 관료도, 교수도, 연예인도, 스타 강사도 골고루 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두고 봐야겠지만 곧 있을 인사청문회에서도 단골 메뉴인 표절 논란이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표절 논란이 하도 많다 보니 이제는 공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짜 해명도 생겨났고,

논란의 당사자들은 너나없이 이 가짜 해명 뒤에 편안하게 숨어 있다.

 

여러 거짓말이 섞여 있지만, 대표적인 것 두 가지만 꼽아보자.

첫째는 문제가 되고 나니 학위를 반납한다는 거짓말이다. 진실은 이것이다.

대한민국에는 학위 반납이라는 제도도 없고 반납을 받아주는 대학도 없다.

생각해보면 당연하지 않은가.

남의 논문 베껴서 학위 받았다가 안 걸리면 다행이고 걸리면 반납한다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남의 물건 훔쳤다가 안 걸리면 다행이고 걸리면 반납한다는 심보와 무엇이 다른가.

학위 반납이라는 용어는 표절한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다가 들통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반납하는 것처럼 만들어낸 거짓말일 뿐이다.

이미 받은 학위가 없어지는 유일한 길은 부정한 방법으로 학위를 받은 게 들통나서 대학 총장이나 교육부의 권고로 취소당하는것뿐이다.

 

둘째는 과거에는 표절에 대한 기준이 모호했고 통상적인 관행이었다는 거짓말이다.

여기에는 표절의 당사자뿐 아니라 표절을 막아야 할 대학 당국마저 가담하고 있어서 더욱 심각하다. 나는 학계에 수십년간 몸담아온 사람으로서 분명하게 증언할 수 있다. 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은 시절은 일단 제외하자.

하지만 내가 국내 대학의 학부와 석사과정을 다녔던 1980년대에도 이미 표절의 기준은 분명했고, 무엇이 표절인지 학부생도 알고 있었으며,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실수로라도 표절하지 않으려고 성실하게 노력했다.

기준이 모호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표절에 있어서 기준이 모호할 게 뭐가 있나.

다른 사람이 이미 발표한 그만의 생각을 인용 없이 가져다가 내 생각인 양 써놓으면 그게 표절이다. 여기에 무슨 복잡한 기준이 필요한가. 표절하면 안 된다는 걸 꼭 배워야 아나. 도둑질하면 안 된다는 건 따로 배우지 않아도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표절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의 학부생들조차 기말보고서에서 표절하지 않으려고 성실하게 인용했다.

내가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 그 시절 나와 동료들의 기말보고서와 석사학위 논문들이 생생하게 증언한다.

대학 당국이 이 거짓말에 암암리에 가담하는 이유는 논란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개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의 표절 논란은 선거나 인사청문회에서 터져 나온다.

그러면 해당 대학은 표절인지 아닌지 판정하라는 요구를 받게 되는데, 결론이 무엇이든 정치적 후폭풍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러니 최대한 시간을 끌다 어쩔 수 없게 되면 과거에는 기준이 모호했다는 그야말로 모호한 대답을 내놓는다.

기준이 모호했다는 나름의 근거는 연구윤리지침이다. 황우석 사태가 있었던 2005년 이후 많은 기관들이 연구윤리지침을 제정했는데, 이것은 누구나 알던 연구윤리를 제도로 만들었다는 의미가 있을 뿐이다. 그러니 과거에는 모호했다는 거짓말을 할 것이 아니라 표절은 맞지만 제도 이전이어서 징계할 수 없다고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

 

표절해놓고도 문제가 되니 학위를 반납한다며 아무렇지 않게 활동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학위 취소나 법적인 제재에 앞서 표절은 그 사람의 삶의 진실성에 대한 문제이다.

삶의 진실성을 의심받는 사람은 어떠한 공적인 일도 할 수 없다.

설사 공식적인 제재를 피해간다 하더라도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는 일이다.

우리 시대의 부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어려운 여건에서도 성실하게 연구했던 과거의 연구자들에게 덮어씌우지 말자. 예전에는 어땠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겠다.

표절 기준? 예전에도 분명했어요.” 어떻게 아냐고? 내가 봤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