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강사법 시행 3년, 일상이 돼버린 고용 불안

닭털주 2022. 6. 21. 13:29

강사법 시행 3, 일상이 돼버린 고용 불안

 

한승훈 | 종교학자·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

 

 

대학가의 종강 철은 강의자에게도 즐거운 시기다.

채점, 성적 처리 등 만만찮은 과제가 남아 있긴 하지만, 그리고 밀린 저술 활동과 다음 학기 준비가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매주 2~3시간이나 떠들 거리를 준비해야 하는 압박이 한동안 사라지기 때문이다.

대학 강사들에게 이번 종강은 또 하나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

20192학기 이후 시행된 강사법에서 재임용 절차를 보장하고 있는 3년 기간이 만료된 것이다. 지난 3년 강의를 지속해온 강사들의 근로계약은 이제 일괄적으로 종료된다.

계속해서 강단에 서고 싶다면 원래의 강좌,

혹은 새로운 강의처를 찾아 공개채용에 응해야 한다.

필자는 연구교수와 강사 자격으로 두 개 대학에 속한 비정규 교원이다.

둘 다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자리이고, 이번에 비로소 그 가운데 하나의 직장을 잃게 됐다.

 

필자는 과거 시간강사들의 삶이 어땠는지에 관해 아는 바가 그다지 없다.

강사의 임용 기준과 절차 등을 규정한 고등교육법 시행령, 즉 강사법 발효와 함께 대학 강의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도가 바뀌기 이전과 이후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증언하기 어렵다.

선배 연구자들은 이 문제에 관해 힘들다는 것 이외에 그다지 많은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 애초에 법으로 규정된 절차 같은 게 없었으니 강사 임용 절차나 처우는 알음알음좋게 좋게의 법칙이 작동하는 관행의 세계였다. 그러니 대학이나 학과 내규에 따라 상황은 다양했을 터다. 대체로 일치하는 점은 교원으로서 법적 지위가 인정되지 않았고, 쉽게 채용되고 쉽게 해고됐으며, 방학에는 수입이 끊겼고, 각종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서 있었다는 것 정도다.

2019년 여름, 필자는 박사 학위 취득이 결정되자마자 이 새롭게 열린 강사 임용 시장에 뛰어들어야 했다. 전국 대학들이 동시에 공채를 실시하고 있었으니 일주일에 세 군데 원서를 제출하거나 두 군데 면접을 보러 가는 것 정도는 예사였다. 이전에는 공채 없이 강사를 채용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니 기회가 늘어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었다. 다만 서류를 준비하는 게 고역이었다.

한국의 연구자들은 한국연구재단에서 제공하는 데이터베이스에 인적 사항과 학력, 경력, 연구 실적 등을 기재하게 돼 있다. 그러나 각 대학에서 이용하는 채용 사이트들은 이 데이터베이스와도, 서로 간에도 연동되지 않았다. 결국 거의 똑같은 내용을 담은 서로 다른 형식의 이력서를 10여건이나 반복해서 만들어야 했다.

기껏 박사가 됐는데 곧장 고학력 실업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연줄도 경력도 없는 졸업예정자가 강의 자리를 얻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2학기 임용 시장이 닫히기 직전인 8월에 이르러서야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서사창작 전공 강좌 하나를 맡는 것이 결정됐다.

강의 환경은 대단히 훌륭했다. 수업 정원은 토론 수업이 가능할 정도로 적당했고, 학생들의 열의는 감동적이었다. 강의료는 평균 이상이었고 편안한 휴식 공간도 제공됐다.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이었음은 틀림없지만,

수업시수가 적고 지방 거주자라 자료 구입비와 교통비를 빼면 손에 남는 돈은 거의 없었다.

필자를 포함한 비정규 교원들의 불안은

이런 번거롭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취업 활동을 최장 3년마다 반복해야 한다는 점,

그나마 강의 자리는 줄어들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경쟁을 통과해서 강의를 지속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수입은 보장되기 힘들다는 데 있다.

분명 강사법은 강사 채용 절차를 투명하게 하고 처우를 표준화하는 데 상당히 기여했다.

그러나 연구자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개선됐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대학생 수 감소를 고려하더라도 정규직 교원 자리는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한국 사회에서 연구, 저술, 강의 등 학문 활동 상당 부분은 비정규직 연구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학문이 지식 생산을 통해 공동체 전체의 지적 지평을 확장하는 일이라면

연구자 개인의 희생이나 학생들의 등록금을 중심으로 하는 개별 대학의 재정에 의존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제도적 대안은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지만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일단 학문에 대한 사회적 투자가 양적, 질적으로 늘어야 한다.

교육과 학문의 목적은 산업 발전에 필요한 인재 공급이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