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가계부채 대란으로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넓혀라

닭털주 2023. 8. 19. 23:13

가계부채 대란으로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을 넓혀라

 

제윤경 칼럼

 

 

배달업에 종사하는 30대 김아무개 씨는 소득이 불규칙한 이유로 부족한 생활비를 고금리 대출에 의존해 왔다. 전체 대출 규모는 3천여 만 원으로 크지 않으나 저축은행의 대출 이자율이 20%에 가깝기 때문에 매월 85만 원가량이 빠져나간다. 배달 수요가 많을 때는 소득이 높지만 최근에는 소득이 크게 감소해 월 200만 원을 겨우 넘기는 수준이다. 부모님까지 부양하고 있는 입장에서 고금리 대출로 인해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이자로만 지출해야 한다. 답답한 마음에 김 씨는 사금융이라도 이용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더불어민주당에서 진행하고 있는 민생채무 상담센터를 찾았다.

 

연체를 더 하고 오라구요?

 

김 씨에게 현재 시점에서 가장 적합한 채무조정안은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이다. 부모님을 부양하고 있는 가장으로서 소득이 낮고 자산도 거의 없는 상태이다. 이런 경우 개인워크아웃을 신청하게 되면 최대 30%까지 원금 감면을 받고 남은 채무원금에 대해 10년간 분할 상환할 수 있다. 매월 변제금 부담이 85만 원에서 27만 원가량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이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연체를 3개월 이상 하고 있는 채무자에 한해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김 씨는 현재 연체를 하지 않고 어렵게 상환하고 있다. 그러나 점점 이자비용으로 인해 적자가 심화되면서 신용카드 돌려막기가 이어지고 있다. 채무조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연체는 불가피하다. 김 씨는 최대한 연체를 하지 않고 채무 변제를 원활히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연체를 하지 않고 채무조정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신복위의 신속채무조정절차가 있다. 그러나 이 절차는 원금감면은커녕 이자율도 15%까지만 낮출 수 있다. 사실상 채무조정의 효과가 거의 없다. 매월 상환액을 70여만 원까지 낮출 수는 있지만 김 씨의 상환여력에 비해 여전히 높다.

 

이렇게 채무조정을 진행하게 될 경우 채무조정을 완료할 가능성은 크게 낮을 수 밖에 없고, 중도에 탈락할 우려가 있다. 신용회복 절차를 중도에 탈락하게 되면 절차 개시 이전보다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 기간동안의 연체이자가 전부 살아나기 때문에 상환해야 할 변제금은 이전보다 더욱 높아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채무조정의 가장 큰 원칙은 채무자의 현재 상환 능력에 맞는 변제계획을 수립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면 누가 빚을 제대로 갚느냐구요?

 

우리나라의 채무조정 제도는 여전히 채무자의 상환능력에 맞는 조정보다는 채권자의 상환 압박을 우선시한다. 하루에 두 번까지 독촉전화를 하고, 압류 예고통지를 보내며, 재산이 없다는 것을 법원에 출석해서 입증하게 하고, 부동산은 물론이거니와 유체동산 압류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추심한다. 물론 돈을 빌려준 채권자로서 법이 보장하고 있는 당연한 권리이다. 그러나 채권자들은 빚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가 이 모든 법적 조치들에도 갚을 여력이 거의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이미 상환여력이 되는 가용소득과 가용자산은 채무자가 압류를 통해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회수를 했거나 혹은 회수할 가용소득도 없고 자산도 없음에도 기꺼이 법률 비용을 부담해 추심하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압박을 견디지 못하는 채무자들이 가족이나 지인들, 혹은 사금융을 이용해서라도 갚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가혹한 추심으로 인한 고통의 시간을 3개월 견뎌야만 채무자 형편에 맞는 채무조정을 해주는 것이 현재 우리나라 신용회복의 민낯이다. 신용회복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채무조정 신청자가 올 1분기 기준, 지난해에 비해 44%나 증가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채무조정을 해주면 누가 빚을 갚겠냐며 신복위 신청자의 급증을 우려한다. 그러나 이는 채무조정 절차를 허술하게 이해하는 데에서 비롯된 오해이다. 신복위의 워크아웃 프로그램, 법원을 통한 개인회생과 개인파산 제도는 채권자들이 최대한의 회수 절차를 진행하고 남은 빚을 조정해 주고 있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에서 누가 빚을 갚느냐라는 질문은 채권자들에게 주어진 채권 회수를 위한 법률적 위력을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경제적 재기 의지를 살리는 채무조정 제도가 절실하다

 

압류, 임의경매 등으로 채무자들의 소득과 자산에 대해 채무상환을 강제적으로 집행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 추심은 그야말로 채무자를 심리적으로 무너뜨리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전화로 추심하지 않고도 금융자산에 대한 압류가 가능하다. 집으로 추심 방문을 하지 않아도 살림살이 압류 및 강제 처분이 가능하다. 굳이 상환능력이 있음에도 의도적으로 채무상환을 회피하는 것에 대해 채권자들이 대처할 수 있는 법적 조치들이 충분하다. 법적 조치 외에 전화, 방문 등의 추심을 지속하는 것은 그야말로 괴롭히기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러한 괴롭히기로 인해 채무자들이 경우에 따라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극도의 우울감에 내몰리고

더 나아가 경제적 재기를 위한 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된다는 점이다.

과연 이것이 경제 전체에 이로울 것인가,

혹은 채권 회수에 도움이 되고,

금융시장 건전성에 도움이 되는지 되물어 봐야 할 때이다.

 

채무조정 절차를 1개월 혹은 3개월의 연체자에 한해 적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괴롭힘의 시간을 견뎌내라는 것을 의미한다. 몇 개월간 괴롭힘을 당하며 채무 상환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한 채무자에게만 채무조정 절차를 허용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신복위의 워크아웃 프로그램들은 문재인 정부 시절 이전에는 더욱 가혹했다.

원금 감면은 불가능했고, 매월 변제액이 지나치게 높은 수준으로 조정되는 바람에 중도 탈락률이 상당히 높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인색한 조정 내용이기는 하지만 연체 전 신속채무조정 제도가 신설되었고, 개인워크아웃 또한 취약계층의 경우 최대 90%까지 원금 감면도 가능하다. 사적 채무조정제도로서 채무자들의 재기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조금씩 개선해 왔다. 그러나 도덕적 해이를 우려하는 목소리 때문에 여전히 불합리한 제도가 많이 남아있다. 현재 윤석열 정부에서는 채무 취약계층의 현실을 감안한 제도 개선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가계부채 부실이 점점 심화되면서 채무 취약계층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벼랑 끝에서야 겨우 붙잡을 수 있는 채무조정 제도가 아니라 경제적 재기를 위한 발판이 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고 대출 규제를 완화해 가계부채 급증을 만들어내는 정부. 한국 경제의 뇌관이 곧 터지는게 아닌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