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처럼
박권일 | 독립연구자·‘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얼마 전 유럽의회는 스마트폰에 탈부착 가능한 배터리를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몇년 안에 유럽에서는 소비자가 배터리를 교체할 수 있는 스마트폰만 판매될 예정이다.
‘수리할 권리’를 법제화한 것이다.
그동안 소비자들은 배터리 수명이 다하면
기능상 아무 문제 없던 스마트폰을 새것으로 교체해야 했다.
누구나 느꼈을 것이다.
멀쩡하게 잘 쓰던 제품이 보증기간이 지나자마자 이런저런 고장을 일으키는 기이한 현상 말이다. 오늘날 많은 기업은 부러 내구성이나 기능을 제한해 출시한다. 그래야 새 제품을 사니 의도적으로 제품 수명을 줄인다. 바로 ‘계획적 진부화’다.
기업들은 물건을 팔아먹을 때는 완전무결한 물건이라고 과시하다
의도적으로 수명을 다하게 함으로써 또 다른 완전무결한 물건으로 갈아타게 강제해왔다.
소비자로서는 불필요한 지출이고 생태환경을 더 파괴한다는 점에서,
기업만 빼고 모두가 피해를 보는 상황이다.
일본의 농업사학자 후지하라 다쓰시는 ‘분해의 철학’에서 나폴리 사람들의 흥미로운 면모를 소개한다. 그는 “자동으로 기능하는 손상 없는 신품은 나폴리 사람에게는 근본적으로 왠지 꺼림칙하다”는 알프레트 존레텔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손상, 무왜곡, 무결함, 완전함에 대한 나폴리 사람의 혐오감이며, 또한 두려움이다. (…) 망가진 것의 수리를 통해 그 메커니즘을 몸으로 이해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물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이 나폴리 사람의 철학이다.”
다시 강조하건대 “무손상, 무왜곡, 무결함, 완전함”을 ‘아름다움’은커녕 ‘꺼림칙함’으로 느끼는 감각이 나폴리 사람들의 특징이다.
그런데 보통은 반대 아닌가?
대개는 손상 없고 매끈한 것이야말로 선호와 경탄의 대상이다.
끄트머리가 깨졌거나 이음새가 어긋나 있는 사물은 실망스럽고 그래서 평가절하된다.
잠수 장비나 의료 장비처럼 기능적 완벽성이 요구되는 사물이 있긴 하지만,
세상 대부분 물건은 그렇게 완벽하지 않아도 대충 잘 작동한다.
오히려 문제는 완전무결에 대한 강박일 수 있다.
완벽한 사물은 자족적이라서 인간의 개입을 용납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길” 수 없고,
그래서 바라보며 찬탄할 수는 있어도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
관계 맺지 못하는 대상은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검은 상자처럼 불길하다.
게다가 “무손상, 무왜곡, 무결함, 완전함”의 미덕이 인간을 향할 경우,
사태는 불길한 정도를 넘어 공포일 수 있다.
완전무결한 인간에 대한 갈망은 우생학, 나치즘의 이념과 직결된다.
완전무결한 인간, 결함 없는 유전자의 반대편에는 기묘하고 손상되고 냄새나고 아픈 사람들이 있다. 완전무결을 추구하는 위대한 도정에서 이런 존재들은 끔찍한 장애물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불구의 인간, 잉여의 인간, 한마디로 열등한 인간을 세계에서 지우는 행위는 잔혹하긴 하나 필요불가결하다.
이른바 나치의 ‘최종 해결책’이다.
완전무결한 사물과 완전무결한 인간은 전혀 다른 차원일까?
물론 정확히 동일한 문제는 아니다.
아마도 완전무결한 사물을 욕망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우생학에 심취하거나 나치가 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질적으로 다른 문제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인간도 사물이다.
나치즘이 적어도 공식 무대에서 사라진 21세기 들어오히려
‘인간 증강’(human enhancement/augmentation)은 각광받고 있다.
그것은 인간을 철저히 사물로 대하지 않으면 애당초 불가능한 프로젝트다.
인간과 자연을 날카롭게 나누고,
자연을 마음대로 변형하는 것을 문명이라 부르며 찬양하고,
인간이 한낱 짐승이나 사물처럼 취급되는 것에 반대하기.
서구가 꽃피운 근대적 사고의 특징이다.
하지만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치켜세운 근대사회는
놀랍게도 ‘인간으로 대할 인간’과 ‘사물로 대할 인간’을 구별 지었다.
그 결과 서구 근대의 ‘끝’은 나치즘이 됐다.
인간 이외의 모든 것을 함부로 대하는 인간은 끝내 인간에게도 그럴 공산이 크다.
또한 완전무결한 상품, 신품만을 욕망하는 사회는
인간에게도 같은 것을 욕망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인간을 사물로 대하지 말라’고 하기보다는 ‘사물을 인간처럼 대하라’.
마치 나폴리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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