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예술은 죽지 않는다, 우리 추억 속에서 숨쉬니까

닭털주 2023. 11. 25. 11:05

예술은 죽지 않는다, 우리 추억 속에서 숨쉬니까

입력 : 2023.11.23 22:04 수정 : 2023.11.23. 22:06 박주용 교수

 

 

(46) 비틀스, 전설의 시작과 끝

 

 

 

특별할 것 없는 노래, 억지스러운 합성 영상

비틀스의 최근 뮤비는 예술은 어떻게 죽어가는가묻게 했다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통해 미소년 아이돌을 넘어 대중음악을 다차원예술로 꽃피운 멋진 4인조

그들의 서사를 되짚는 동안 동시대 사람들의 고백에서 답을 찾았다.

누군가에겐 삶의 마지막까지 함께하는 것이 예술이라고

 

우리에게 잉글랜드 북부에서 제일 잘 알려진 도시는 맨체스터일 텐데, 그 서쪽에 자리 잡은 리버풀도 빼놓을 수 없다. 영국 최대의 도시 런던으로부터 잉글랜드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반대에 있는 리버풀에 축구 말고 무엇이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대영제국 시절이던 19세기에는 영국 본토인 브리튼 섬에서 대서양으로 가는 관문항구로서 전 세계 교역물자의 40%가 리버풀을 통해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있고, ‘타이태닉호가 마지막 여행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교역 중심지로서 어느 도시보다도 외국인들이 많이 살아서 유럽의 뉴욕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2차대전 때는 런던 다음으로 나치 독일의 폭격을 많이 당했다고 하니, 전략적으로나 산업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도시였는지 알 수 있다.

 

2차대전 이후 대영제국의 쇠락에 이은 사회적 불안과 경제 침체, 그리고 해운 기술의 발달로 다른 항구도시들이 성장하면서 리버풀은 잊히는 듯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리버풀은 또 한번 세계에 무언가를 선사한다.

로큰롤, 리듬앤드블루스(R&B), 미국의 블루그래스와 재즈를 모태로 한 스키플에서 태어난 머지 비트(mersey beat)’라는 음악으로 1960년에 결성해 1970년에 해체될 때까지 세계 문화계를 뒤흔든 4인조 밴드였다.

 

이들이 바로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로 이루어진 비틀스(The Beatles). 사회의 원로가 된 세대에 속한 분들 가운데는 여전히 이들의 ‘Let it Be(렛잇비)’ ‘Yesterday(예스터데이)’를 인생 최고의 노래로 꼽는 이들이 많다.

 

멋진 4인조(The Fab Four) - 비틀스

 

그들이 최근 ‘Now And Then(때로는)’이라는 자칭 마지막 싱글을 발표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한때 그들 음악에 빠져있던 사람으로서 새 노래를 지체 없이 들어야 하는 것은 여전히 신성한 의무였다.

그리고 1995~96년에도 비틀스의 마지막 노래라면서 나왔던 ‘Free As A Bird(새처럼 자유롭게)’‘Real Love(진정한 사랑)’를 그들의 최고 걸작으로 꼽을 정도로 좋아했던 나는 그때 작업했다는 노래의 뮤직비디오가 시작될 때 벅차오르는 기대감을 억누르기 어려웠다.

 

하지만 기대감은 실망으로 바뀌었다.

노래 자체도 특별한 것이 없었고, 아직 생존해 있는 폴과 링고의 몸짓은 비틀스의 모습을 연상케 하지 않았으며, 기록영상에서 잘라와 합성해 넣은 조지와 존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는 억지스러운 모습일 따름이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첫 작업 당시 조지가 욕설을 섞어가며 작업을 중단시켰던 이유마저 짐작 가는 듯했다.

 

그토록 뛰어났던 예술가들의 실망스러운 마지막을 보면서 나는 예술은 어떻게 죽어가는가를 묻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떠올린 계기가 내가 그렇게 좋아했던 비틀스라는 안타까움에 머릿속에서 내가 아는 비틀스의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 들춰보기 시작했다.

 

그들은 독일 북부 도시 함부르크로 건너가 홍등가인 레퍼반(Reeperbahn)에서 연주를 하다가 멤버 조지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쫓겨나 돌아간(시작부터 비범하다) 고향 리버풀의 캐번 클럽(The Cavern Club)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런던의 한 음악사 중역에게 기타 치는 밴드는 미래가 없다는 핀잔을 들으며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팔러폰(Parlophone) 레이블과 계약을 하면서 그들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내가 비틀스의 음악을 제대로 듣기 시작했던 건 이로부터 40년이 지나 <One()> 앨범이 나온 2000년이었다. 영국·미국에서 1위를 한 모든 노래를 모은 앨범이었는데, ‘비틀스가 궁금하면 이것만 들으면 된다는 소리도 있었다. 당시에도 꽤나 예스럽게 들리는 노래들이긴 했지만, 어깨춤을 추게 하는 초기 머지비트의 청춘 사랑노래(‘From Me To You(나에게서 너에게)’ ‘I Want To Hold Your Hand(너의 손을 잡아보고 싶어)’)에서부터 해체 직전에 나온 블루지 아트록 ‘Come Together(컴투게더)’라든가,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는 삶을 노래한 ‘The Long And Winding Road(길고 굽은 길)’까지 음악의 폭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1위를 한 노래만이 그들의 정수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그들의 음악을 아는 길에 겨우 들어섰을 뿐이다.

 

미래의 문을 연 음악의 진화

 

비틀스 노래들은 특유의 박자를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로큰롤 사상 최고의 드러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링고가 있다.

링고 특유의 드럼 소리는 왼손잡이이면서도 오른손용 드럼을 사용한 데서 나왔다고 하는데, 링고는 자신의 기량이 최고로 발휘된 노래로 1966년 발표된 ‘Rain()’을 꼽는다. 멤버들의 개성이 강한 비틀스에서 나서거나 일부러 관심을 끌지 않는 성격으로 알려진 그조차 인터뷰에서 내가 봐도 정말 잘 쳤는데, 그렇지 않아요?”라고 물을 정도로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사실 이 노래는 비틀스 후기의 특징인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음악의 효시라고 평가받는다. 마지막 24초를 장식하는 코다 부분에서는 보컬 존이 이상한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들리는데, 바로 선샤인이라는 가사가 거꾸로 불린 것이고, 세계 최초로 녹음을 거꾸로 재생해 만든 노래로 알려져 있다.

 

이런 스튜디오 기법의 발명에 재미를 붙인 비틀스는 테이프 일부분을 잘라낸 뒤 여기저기 붙이고 실험해 전위(前衛)를 뜻하는 아방가르드음반인 <Revolver(리볼버)>를 발매하면서 대전환을 맞게 된다. 어린 사랑타령을 떠나 ‘Tomorrow Never Knows(내일은 결코 알지 못한다)’와 같은 오묘한 제목의 애시드 록(acid rock·무겁고 왜곡된 기타 소리가 특징인 몽환적 분위기의 1960년대 록)에다 R&B와 실내악 등이 섞여 있는 예술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이때부터 ‘The Day in the Life(일상 속의 하루)’ ‘Strawberry Fields Forever(스트로베리 필즈는 영원히)’ ‘Across The Universe(우주를 가로질러)’처럼 새로운 기법과 환상에 젖는 듯한 감성이 섞여 있는 예술적인 팝이 연달아 발표된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들은 소녀들을 홀리던 미소년 아이돌에서, 대중음악을 다차원의 예술로 꽃피운 예술가로 변모한 것이다.

 

캐릭터들의 서사와 여정의 끝

 

그들은 음악뿐만 아니라 각각의 멤버가 독특한 성격을 거침없이 내뿜으면서 재미있는 친구들이라는 인상으로도 인기를 끌었다.

허례허식과 고정관념을 끝없이 비웃는 모험적인 비틀스의 정신을 주도하던 존,

귀에 꽂히는 탁월한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능력으로 상업적인 성공의 길을 구가할 수 있게 해준 폴,

곱상한 외모의 막냇동생이었다가 뒤늦게 시적 감성이 만개하여 비틀스 사운드의 명맥을 이어간 조지,

그리고 이 모든 개성들을 절제된 익살로 묶어주면서 밴드를 받쳐준 링고는

팬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멤버들을 따르는 현대 아이돌 팬덤의 시조가 되었다.

 

이들에게 위기는 일찍 닥쳐왔다.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이 그들을 도망치게 만든 것이다.

끝없는 투어로 지치고, 정신이 착란된 일부 광적인 팬들 때문에 안전에 위협을 느낀 이들은 196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캔들스틱파크 공연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대중 앞에 서지 않고 <Magical Mystery Tour(매지컬 미스터리 투어)> <Abbey Road(애비 로드)> <Let It Be(렛잇비)> 등의 앨범을 내는 데만 몰두하게 되고, 관객을 만날 필요 없이 얼굴을 보여줄 수 있는 뮤직비디오라는 개념을 창시해낸다.

(이쯤되니, 도대체 비틀스 해체 이후에 음악산업에서 새롭게 발명된 게 과연 있기나 한 건지 궁금해진다)

 

스튜디오에서 실험과 혁신을 하면서 음반의 완성도는 높아졌지만 멤버들이 가고 싶은 길은 갈라지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쓰디쓴 분쟁을 겪으며 해체에 이르고 만다.

끝을 직감한 그들은 마지막으로 함께 공연을 하는데, 이게 바로 런던에 있는 소속사 애플(Apple Corp)의 건물에 올라가 진행했던 옥상 콘서트’(Rooftop Concert)로서 로큰롤 사상 두번째 게릴라콘서트였다.

수년간 숨어있던 이들이 다시 한번 공연을 하는 소식이 실시간으로 번지며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소음에 대한 주민들의 불평이 커지자 경찰이 옥상에 강제진입하여 악기를 꺼버리고 멤버들을 체포하겠다고 경고하면서 마지막 공연은 끝난다.

 

비틀스의 내분에 지쳐있던 링고는 오히려 경찰에게 체포되기를 바랐다고도 한다. 자신의 고통을 끝내는 데 아주 좋은 방법이었을 것 같다면서. 옥상에서 절규와 자조를 오가며 ‘Don’t Let Me Down(나를 실망시키지 마)’이라는 노래를 부른 존이 다음해 비틀스를 탈퇴함으로써 세계를 춤추게 한 멋진 4인조’, ‘Fab Four’는 영영 과거의 추억이 되고 만다.

 

예술은 어떻게 살아남는가?

 

비틀스의 음악과 서사를 다시 되짚자, 그동안 잊고 있었던 좋은 기분이 다시 온몸을 휘감는다. 그들의 마지막 인사인 ‘Now And Then’을 다시 본다. 이제서야 이 노래는 평론가의 눈으로만 평가하는 게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며, 처음 가졌던 실망감이 한층 누그러진다.

젊은 시절 네 사람이 무대에서 사라져버리는 마지막 장면이 아쉬워진다. 그리고 나의 눈엔 비틀스를 동시대에 경험했다는, 그들과 나이가 비슷한 사람들의 고백이 들어온다.

비틀스가 고하는 작별은 자신들도 곧 때가 되었다는 뜻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날 수도 있을 터인데, 아쉬움보다는 고마움의 고백들이었다.

내가 앞서 던졌던 예술은 어떻게 죽어가는가에 대한 답이 떠오른르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할 수 있는 예술은 죽어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남겨준 추억들을 통해 계속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