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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사람이 지닌 힘

닭털주 2024. 5. 19. 09:33

착한 사람이 지닌 힘

입력 : 2024.05.14 20:21 수정 : 2024.05.14. 20:22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착하면 손해 본다는 게 통념이다.

착하다는 말이 자기주장 없이 남의 마음에 드는 행동만 한다는 뜻으로 흔히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착한 아이 콤플렉스도 비슷한 맥락이다. 내면의 욕구를 무시한 채 부모의 기대에만 부합하려고 애쓰다 보면 성인이 되어 병리적인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가 더해져서, ‘착함은 더 이상 추구할 덕목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어휘사 연구에 의하면, ‘질서정연한 모양이나 동작을 가리키는 이라는 만주어가 17세기 후반 우리말에 유입되어 분명하고 바람직한 사람의 모습을 나타내는 형태소로 쓰이기 시작했다. ‘착하다18세기 중엽 <주해 천자문> 등에서 ()’의 풀이로 사용되기 시작했는데, 이라는 한자가 말다툼의 옳고 그름을 판정해 주는 양의 모양에서 비롯된 것처럼 착하다의 본디 의미 역시 옳다, 훌륭하다등이었다. 현대의 국어사전에 착하다의 뜻에 바르다가 들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얼마 전 방영된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다른 내용들에 비해 사소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김민기씨가 연천 지역에 농사지으러 갔을 때 함께했던 동네분들의 회고담이 나에게는 유독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참 착하고 좋았지. 여기 사람들이 다 좋아했어, 김민기씨를.”

알량한 지식으로 판단하고 가르치려 들었다면 듣지 못했을 표현이다.

그저 말없이 같이 일하고 같이 먹으면서 따뜻하게 함께했기에, 농사라곤 지어보지 못한 서생이 그들과 그렇게 어울릴 수 있었을 것이다.

 

다들 능력을 내세우고 높은 봉우리에 오르려 애쓰는 세상에서,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를 향해 묵묵히 걸어온 뒷것의 삶.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았기에 견지할 수 있었던 착함, 그것이 지닌 무한한 힘을 떠올린다.

새하얀 눈 내려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 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 울리면,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정말 착한 건 바른 거라는 사실, 그리고 바로 그게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그의 삶에서 본다. 한없이 착해서 진정으로 강한 분, 김민기님의 건강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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