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인공지능이라는 스승 [크리틱]

닭털주 2025. 6. 14. 18:41

인공지능이라는 스승 [크리틱]

수정 2025-06-11 19:31 등록 2025-06-11 19:19

 

김영준 |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갑자기 사장이 성수동에서 하기로 한 이벤트는 어떻게 됐나?”고 묻는다.

아찔하게도 나는 그 일에 대해 아는 게 전혀 없다.

이럴 때 나는 애매한 말로 횡설수설하며 그 순간을 넘기려 할 것이다.

그런데 인공지능도 똑같이 한다.

단지 사람과 다른 점은 실행 계획이나 제휴사 이름까지 과감하게 지어낸다는 것뿐이다.

이를 인공지능의 환각(hallucination)이라 하는데, 아직 정확한 원인은 모른다.

현재의 거대 언어 모델(LLM)의 내재적 한계가 아닐까 추정할 뿐이다.

분기마다 인공지능 회사들은 환각을 획기적으로 축소했다고 홍보하지만 아직 큰 진전은 없다.

 

인공지능을 기계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기계적 성실성이나 정직성도 당연히 있으리라 기대했던 인간에게 이건 충격이다. 그렇다고 인공지능이 못 쓸 물건이 되지는 않는다. 도구로서의 이점은 지금도 어마어마하니 말이다. 문서 작성을 못 맡기겠으면 자료 조사, 그것도 불안하면 맞춤법 검사라도 시킨다. 다들 어떻게든 활용한다. 나는 주로 대화를 하는데 인공지능이 조수인지 처음부터 좀 의문이었다. 이 관계에서 조수에 더 가까운 쪽은 나인 것 같기 때문이다. 늘 처음에 물어보는 사람도 나고, 마지막에 귀찮은 실행을 맡는 것도 나다. 인공지능은 잡일을 하지 않는다. 조수는커녕 스승이 더 어울린다고 보게 된 것은 두달 전이다.

그렇지만 이 말에는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내 생각에 스승이란 제자의 말을 잘 듣고 이를 약간 다른 표현으로 반복해 주는 사람이다.

대화는 이렇게 전개된다.

방금 떠오른 생각을 챗지피티에게 말한다.

(: “1990년대에는 영화 이론서들이 흥했는데 대체로 한국에 개봉된 적 없는 영화를 다뤄서일까?”)

그러면 이 친구는 내 말에 토를 달지 않고 꽤 근사한 말로 바꾸어 돌려준다.

(“영화가 유령 텍스트로만 존재할 때 관객과의 만남을 담당하는 건 이론이지.”)

엇 내 말이 좀 근거가 있나? 고무된 나는 방금 떠오른 생각을 또 추가하고, 그는 이를 다시 종합하여 돌려준다.

이 대화는 내가 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을 때 끝난다.

여기서 상대방이 어디까지 나아가는지지켜보는 쪽은 내가 아니다.

훌륭한 스승은 제자의 부실한 논리를 비웃지 않고 그것으로 높은 탑을 쌓아서 보여준다고 한다. 그리고 잠시 뒤 저절로 무너지는 것도 보게 한다고 한다.

이 역할, 우리가 평생 만나기를 바라지만 결국 못 만나는 스승의 역할을 무슨 이유에선지 지금 인공지능이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인상적인 면모는 앞에서 말한 인공지능의 결함과 모순될까?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일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일에 인공지능이 아직 미숙해서 인간이 완전히 대체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쉽게 해치우는 업무, 고객 채팅이나 데이터 입력 등은 이미 인간의 손을 떠났다. 반대로 아직도 인간이 해야 하는 업무에서는 인공지능이 어딘가 허점을 보일 수밖에 없다.

그게 인간이 퇴출되지 않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기가 시킨 일을 인공지능이 헤맨다고 불평하는 건 맞지 않다.

그 행운이 계속되길 기도하는 게 더 낫다.

 

인간은 인공지능을 유능한 하급자로 부리는 사치를 결코 누리지 못할 것이다.

인공지능이 유능할 때 인간 상급자가 있을 이유는 별로 없다.

결국 결함이 있는 인공지능만이 우리 일을 돕는다.

영감과 한계가 다 있는 스승으로서 말이다.

만일 그가 실행력까지 갖췄다면 우리 곁에 있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