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그립지 못한 것들이 그리운 시대 [유레카]

닭털주 2025. 6. 17. 19:41

그립지 못한 것들이 그리운 시대 [유레카]

구둘래기자

수정 2025-06-17 18:36 등록 2025-06-17 15:02

 

 

 

티브이엔(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은 매회 두 명이 마주 보면서 끝난다.

거의 모든 회에 미지(박보영)와 호수(박진영)로 끝이 났지만,

한 회(6)에서는 미래와 딸기하우스 사장님(류경수)이 마주 보기도 했다.

마지막 둘의 장면은 필름(혹은 테이프)에 상처가 난 듯한 순간을 신호로,

색조가 바랜 옛날 티브이 화면처럼 바뀐다.

화면은 정직한 표준 단초점 렌즈의 원근감으로 흔들린다.

영화 필름(테이프)인 듯 시작하지만 브라운관처럼 화소가 적은 화면으로 이어지기에,

다른 두 매체에 대한 구분도 없는 셈이다.

단지 존재하는 것은 과거라는 느낌이다.

흑백 시절로까지 나가지 않는 것으로 보아 그것은 1980~90년대 정도로 보인다.

1995년생인 등장인물의 청소년 시절은 2010년 언저리이니,

과도한 레트로.

거기다 마지막 장면은 현재인데, 왜 레트로풍으로 그려질까.

 

노스탤지어라는 말은 1699년 처음 고향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생기는 고통이라는 병명으로 붙여졌다. 이후 여기에 과거를 그리워하는 마음이라는 뜻이 합쳐졌다.

이때는 자신이 경험한 것에 대한 향수라는 기준이 있었다.

데자뷔는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나 장소를 마치 경험한 적이 있는 것처럼 익숙하게 느끼는 심리 현상인데, 프로이트는 데자뷔를 억압된 기억으로 해석했다.

억압되었을 뿐 실재했던 기억이라는 것이다.

 

존 케닉의 슬픔에 이름 붙이기’(윌북)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이름을 붙여본 책으로 여러 가지 근사한 단어를 발명했다.

아네모이아는 고대 그리스어 바람(ánemos)와 정신(nóos)을 합성한 단어로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시절에 대한 향수를 말한다.

현관 베란다가 있고, 저녁을 밝히기 위해 불을 피우고, 울타리 너머로 대화를 주고받는 세상

케닉은 그리움의 대상으로 제시한다.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이 그리운 시대.

최근 아이폰 옛날 버전이나 캠코더,

유선 이어폰 등의 구매 열기를 일으키는 1020

그것이 상용되던 시대를 겪어보지 않은 이들이다.

브라운관은 2010년 완전히, 영화용 필름은 2012년 생산이 중단됐다.

어른의 입장에서는 레트로지만 1020 입장에서는 새로움이고 여러 옵션 중 하나다.

케닉은 모르는 시대의 구경꾼이 된 우리에게 단지 필요한 것은 스냅사진일 뿐이라고 말한다.

 

구둘래 텍스트팀 기자 any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