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장애 45배…노동자가 아픈데 승객은 안전할까 [왜냐면]
항공승무원 노동실태 연속기고 ①
수정 2025-06-09 18:49등록 2025-06-09 17:09
김형렬 |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전문의
항공기의 객실승무 노동자는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고 기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일반적으로 이들을 떠올리면 친절한 미소, 해외여행, 세련된 이미지를 쉽게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높은 감정노동 강도, 항공기 사고에 대한 불안, 최근 이슈가 된 방사선 노출 등 건강을 위협하는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실제로 일하는 환경은 어떠할까? 객실승무 노동자들은 과연 건강하게 일하고 있을까?
필자를 포함한 전문 연구자들과 공공운수노조는 지난 3월부터 한달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객실승무원을 대상으로 인터뷰와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12명의 심층 인터뷰를 토대로 만든 설문에는 538명이 응답했다. 두 항공사의 객실승무 노동자가 약 9천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신뢰할 만한 조사라 할 수 있다. 이는 항공승무원의 노동조건에 대한 국내 최초의 대규모 심층조사로서 큰 의의를 갖는다.
조사 결과, 객실승무 노동자가 가장 심각하게 인식하는 노동환경의 위험 요인은 기체 흔들림과 진동, 불편한 자세, 좁은 공간에서 근무, 중량물 취급 등 육체적 부담이었다.
이 외에도 시차 변화, 불규칙한 노동시간, 고객 응대에 따른 스트레스, 불편한 근무복과 신발 등도 주요 위험 요인으로 지적되었다. 이러한 환경은 실제 건강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최근 1년 동안 4일 이상 치료가 필요했던 부상(산업재해 신청 기준)을 경험한 비율은 52.6%에 달했으며, 이 중 86.9%는 두차례 이상 겪었다. 대부분은 기체 흔들림 속에서 무거운 물건을 다루거나 좁은 공간에서 급히 움직이다가 발생한 사고였다. 요통(43.1%), 팔·어깨 통증(63.5%), 다리 통증(51.3%)을 호소하는 비율은 일반 노동자보다 1.5~2.5배 높았다. 시차와 불규칙한 노동시간으로 인한 수면장애를 겪는 비율도 35.9%로, 이는 일반 인구집단보다 무려 45배에 이른다.
업무 중 경험하는 폭력 문제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최근 1년간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비율은 10.2%, 성희롱은 24.9%, 괴롭힘은 15.2%였다. 최근 3개월 내 언어폭력을 경험한 응답자는 무려 47.2%에 달했다. 이는 일반 노동자 집단과 비교해 수십배 높은 수치다. 이러한 상황은 정신건강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우울감을 호소한 비율은 23.4%, 불안감을 호소한 비율은 21%로, 전체 노동자 평균보다 5~7배 높은 수준이다.
일을 하면 건강이 나빠지는 것이 당연한 일일까?
야간 노동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병원, 소방, 경찰, 발전소, 교통 등 공공서비스 유지를 위해 누군가는 야간에도 일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이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일이다. 항공 객실승무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환경은 바꿔야 하며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노동환경을 드러내는 것은 단순한 하소연이 아니다. 이는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다. “안 힘든 일이 어디 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위험을 줄이고,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사업주의 책임이자 사회의 책임이다.
조사 결과가 단지 보고서에만 머무르지 않으려면, 새 정부는 항공안전 강화를 위해 장시간 비행으로 인한 피로를 관리하는 시스템 등 관련 법·제도를 개정해야 한다.
항공사는 중량물 취급을 최소화하고,
충분한 휴식과 병가 사용을 보장하며,
업무 중 부상 시 정당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확실히 보장해야 한다.
또한 이번 연구 결과와 개선안 마련을 주관한 국회의원들은 정부 부처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만 객실승무 노동자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이 지켜질 수 있다.
항공을 이용하는 시민 또한 안전할 수 있다.
우리 사회와 법은 바로 그런 사회를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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