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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벗, 신경림

민중의 벗, 신경림입력 : 2024.05.23. 18:19 이명희 논설위원  시집 ‘농무’, ‘가난한 사랑노래’ 등을 쓴 문단의 원로 신경림 시인. 연합뉴스  시인 신경림은 알아주는 주당이었다. 서울 길음동 집으로 곧장 가지 못하고 단골 선술집에 들르는 날이 많았다. 시인은 그 술집 주인의 딸을 위해 두 편의 시를 지었는데, 사연이 있다. 당시 연인이 지명수배를 당해 희망이 없다는 술집 딸의 얘기를 듣고, “결혼하라”고 부추겼다고 한다. 결혼식 주례까지 선 그는 주례사는 1분 만에 끝내고, ‘너희 사랑’이란 축시를 읽었다. 그 흥에 나중에 덤으로 쓴 시가 ‘가난한 사랑 노래’이다. 이 시는 중학교 교과서에도 실렸다.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라는 시구는 언제 읽어도 콧등을 찡하게 한다. 신 시..

책이야기 2024.07.13

예술에서의 ‘나’의 경험

예술에서의 ‘나’의 경험입력 : 2024.07.10 20:42 수정 : 2024.07.10. 20:47 홍경한 미술평론가  돈 매클레인의 ‘빈센트(Vincent)’는 누구나 알고 있는 네덜란드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주제로 한 곡이다. 고흐의 작품을 기리기 위한 노래로, 고통 속 고독한 삶을 살았던 그의 생애를 담고 있다. 내게 ‘빈센트’는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한 첫 계기였다. 감수성 예민하던 고등학생 시절 국어 선생님이 불러준, 그 감미로운 목소리에 실려 귀로 전해지던 연민 어린 가사가 아니었다면 미술비평가로 살아가는 지금의 나는 아마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간신히 구한 작업실에서 혼자 미대 입시를 준비하던 1980년대 말, 스스로의 선택에도 의문과 불안이 가시지 않던 당시..

칼럼읽다 2024.07.12

귀담아듣는 일은 장하다

귀담아듣는 일은 장하다입력 : 2024.07.10 20:46 수정 : 2024.07.10. 20:50 오은 시인  오랫동안 진행하던 도서 팟캐스트 책읽아웃>의 마지막 녹음을 마쳤다. ‘마지막’과 ‘마치다’는 둘 다 끝을 암시하는 단어인데, 이 둘이 함께 있으니 비로소 끝났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6년 하고도 3개월이었다. 실감난다고 썼으나 아마도 시간이 좀 흐른 뒤에야 마침표가 선명해질 것 같다. 27년간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면서 결국에는 눈물을 참지 못했던 최화정님이 얼핏 떠올랐다. 그는 절대 울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으나 “너무너무 수고했고 너무너무 장하다. 내가 늘 칭찬하잖아. 무슨 일을 오래 한다는 건 너무 장하고, 너는 장인이야. 훌륭하다”라는 윤여정님의 음성 편지를 듣고 오열을 참지 ..

칼럼읽다 2024.07.11

소심한 타전

소심한 타전입력 : 2024.07.09 20:37 수정 : 2024.07.09. 20:38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비디오방’에 처음 간 것은 대학에 입학한 해의 봄이었다. 공강 시간에 동기 남자아이가 “포켓볼을 가르쳐줄까?” 묻길래 그것 말고 후문에 있는 비디오방이란 데에 가보고 싶다 답했다. 보고 싶은 영화를 고르라길래 헐렁한 원피스에 중절모 쓴, 포스터 속 갈래머리 소녀가 인상적이던 연인>을 택했다. ‘무삭제판’이라고 빨간 글씨로 쓰여 있는 게 좀 걸렸으나 무슨 무슨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길래 호기심이 일었다. 친구의 표정이 안 좋아진 걸 무시한 채 “이거 볼래” 고집부렸다. 불편한 침묵 속에 두 시간을 보내고 나오던 중 친구가 조용히 일렀다. 앞으론 남자 동기와 단둘이 비디오방에 가지 말..

칼럼읽다 2024.07.10

기괴한 시대의 희한한 물고기 앞에서

기괴한 시대의 희한한 물고기 앞에서입력 : 2024.07.04 20:51 수정 : 2024.07.04. 20:52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펄펄 끓는 폭염, 걱정스러운 장마, 기이한 기후변화 등으로 점철되는 뉴스의 홍수 속에서 해외토픽 하나가 눈길을 끈다. 싱가포르 해변에서 모래에 몸을 묻은 채 머리를 내민 물고기. 먹잇감을 노리는 듯 앞을 쳐다보며 입을 뻐끔거리는 모습이 영상에 잡혔다. 이 희한한 물고기는 ‘긴코 스타게이저’(Longnosed stargazer)로 밤하늘의 별을 응시하는 것 같아서 저 멋진 이름을 얻었단다. 그것은 입술이 통통하게 발달한 사람의 얼굴과 너무 흡사하다. 눈알도 뒤룩뒤룩 굴린다. 조금 무서워도 인어공주의 특별한 동생이라 여기면 봐줄 만도 하다. 우리나라에는 큰무늬통구멍이라는 ..

칼럼읽다 2024.07.09

가볍게 살고 싶어서 [서울 말고]

가볍게 살고 싶어서 [서울 말고]수정 2024-07-07 18:43등록 2024-07-07 18:28  클립아트코리아  김희주 | 양양군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로컬을 바꾸는 시간’이라는 행사의 강연자로 경북 상주시에 다녀왔다. 양양에서의 삶을 책으로 쓴 덕에 지역의 행사에 종종 초대받는다. 특산품이 곶감인지 참외인지 헷갈리는 상주(곶감이다. 참외는 성주의 특산품)처럼 처음 가 보는 지역일 때도 있다. 지역살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러 가다 보니 그 지역에 대한 사전 조사를 하는데, 인구수와 면적을 살펴보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다. 상주는 인구가 약 9만 명인데, 면적은 1254.64㎢로 매우 넓다. 이 면적은 서울의 두 배 정도이다. 넓은 면적으로 인해 경상북도 시 중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낮다. 그..

칼럼읽다 2024.07.08

노인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노인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입력 : 2024.07.08 09:55조효진 한국상담심리학회 고령화사회와 심리상담 위원회 위원 (성신여자대학교 교수)  고령화 시대의 노인 연령의 적절성과 패러다임의 변화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1970년 62.3세에서 2022년 82.7세로, 지난 50년간 약 20년이 증가했다. 60세까지 살면 오래 살았다고 여겨 잔치를 벌이던 시절, 평균 수명이 40~50대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마치 인생을 한 번 더 살 수 있는 행운을 얻은 것 같다. 이제 곧 100세 시대가 도래하고 일부 사람들은 기대수명이 120세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하는 가운데 우리가 생각하는 노인의 기준은 과연 몇 살부터일까? 사실 노인을 중년과 구분하는 기준은 연금 수급, 복지 혜택의 대상 연령을 지정하는 것..

칼럼읽다 2024.07.08

‘열여덟 어른’ 안부묻기 챌린지 [똑똑! 한국사회]

‘열여덟 어른’ 안부묻기 챌린지 [똑똑! 한국사회]수정 2024-07-01 20:58 등록 2024-07-01 19:33  2022년 아름다운재단 ‘열여덟 어른’ 캠페인 활동의 하나로 진행했던 ‘안부 묻기 챌린지’. 아름다운재단 제공  허진이 | 자립준비청년  3년 전, 같은 보육원에서 지냈던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함께 뛰어놀며 자랐던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만으로도 참담했다. 그러나 이 소식이 더욱 참담했던 이유는 내가 친구 소식을 들었을 땐 이미 지방자치단체에서 무연고 장례를 치르고 납골당에 봉안한 이후였기 때문이다. 자립준비청년 중에서도 가족과 연락이 되지 않는 경우는 지자체에서 무연고 장례를 치르므로 지인들은 뒤늦게 사망 소식을 접하기도 한다. 친구 소식도 한동안 연락이..

칼럼읽다 2024.07.07

커피가 보내는 경고 신호

커피가 보내는 경고 신호입력 : 2024.07.03 20:46 수정 : 2024.07.03. 20:52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진한 커피, 아주 진한 커피가 나를 깨운다. 커피는 내게 따뜻함과 남다른 힘을 주고, 쾌락과 더불어 고통을 준다.” 커피 애호가였던 나폴레옹이 남긴 이 말은 진리다. 많은 이에게 커피는 삶의 원동력이다.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좋아진다. 커피 없인 하루도 버티기 어렵다고들 말한다. 전국에 커피전문점 수가 10만개를 넘었다니 대한민국은 ‘커피 공화국’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커피는 왜 우리를 사로잡을까? 염려 붙들어 매시라.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 봤을 이야기, 즉 카페인이 뇌에서 졸음을 유발하는 아데노신 분자를 차단해서 우리를 각성시킨다는 설..

칼럼읽다 2024.07.06

죽음을 업은 삶

죽음을 업은 삶입력 : 2024.07.03 20:51 수정 : 2024.07.03. 20:54 성현아 문학평론가  지난달에 발간된 시집 천국어 사전>(타이피스트, 2024)의 추천사를 썼다. 저자인 조성래 시인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채로, 시집 파일을 넘겨받았다. 어느 봄날, 나는 지하철을 기다리며 종이에 인쇄된 그의 시편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의 고향이기도 한 ‘창원’이 제목인 시가 눈에 띄었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창원으로 갔다// 이제 두 달도 더 못 산다는 어머니/ 연명 치료 거부 신청서에 서명하러 갔다.” 시에는 ‘어머니’가 누워 계신 병원의 구체적인 이름도 등장하는데, 그곳은 공교롭게도 내가 태어난 병원이었다. 엄마가 종종 내게 들려주었던 환한 이야기의 배경, 거기서 화자의 어..

책이야기 2024.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