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우리 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수집의 묘미

닭털주 2025. 1. 15. 17:23

우리 곁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수집의 묘미

 

_김해리(문화기획자)

 

 

 

앤티크 수집 미학, 박영택 저, 마음산책, 2019

 

 

나에게는 오래된 물건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

최근에는 우리의 옛 물건에 푹 빠져 있다. 주변에서 너는 왜 그렇게 오래된 것을 좋아해?’라고 물으면 명쾌하게 답하기 어려웠는데 앤티크 수집 미학에서 인간의 손길이나 시간의 자취, 사라져 버린 흔적이 머문 자리는 살아남은 이들에게 무한한 영감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이 된다라는 문장을 보고 맞아, 이거야!’ 하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오래된 물건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야기를 품고 있다라는 점이다. 내가 몰랐던 역사에 관한 이야기든, 비밀스러운 이야기든 물건 하나를 놓고 끊임없이 상상하고 대화할 수 있다. 나는 옛 물건을 다루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들이 본질적으로 수집가이자 이야기 애호가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어쩌면 물건을 파는 일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게 아닐까?’ 생각할 때도 있다. 눈을 빛내며 이 물건이 왜 이렇게 생겼는지 알아요?’, ‘이 물건에 예전엔 뭐였는지 알아요?’하는 질문으로부터 시작해 자리를 깔고 앉으면 끝없이 이야기를 펼치기 때문이다.

 

앤티크 수집 미학속에도 내가 몰랐던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나는 오래전부터 나주반을 하나 가지고 싶었다. 간결하고 견고한 모양새가 멋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주반이 유명한 이유는 몰랐는데, 나주는 인근 산악지대에서 목재를 쉽게 구할 수 있었고, 황칠과 주칠 등 좋은 칠이 생산됐으며 곡창지대 주민답게 생활 수준과 안목이 높아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우수한 목공품이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알고 있는 이야기를 파헤치는 것도 좋지만, 모르는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다. 일례로 어느 고미술점에서 다식을 만드는 데 사용했던 옛 나무 다식판을 발견했을 때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얼마나 자주 사용했는지 모서리가 반들반들해진 나무의 느낌이 좋아 냉큼 샀는데 뒤판에는 한자로 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여기에 왜 이런 글자를 새겼을까?’ 고미술점 주인장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지만,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른다. 그 시절의 사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을 뿐, 현대의 우리는 그저 유추할 뿐이다. 이런 알쏭달쏭함이 옛 물건의 매력이다. 어느 순간 퍼즐이 맞춰지듯 답을 알게 될 때도 있다. 그때도 즐겁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쓰임을 잃은 옛 물건에 새로운 쓸모를 부여하는 일이다. 무늬가 예쁜 떡살은 종이나 휴지를 눌러 두는 문진으로, 말을 탈 때 사용하던 등자(발걸이)는 작은 소품을 보관하는 스탠드로 새로운 역할을 준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이번에는 이걸 이렇게 써봐야지하며 용도를 바꿔주고 혼자서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모른다. 독특한 질감과 모양의 물건을 발견하면 이건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 상상하며 한참을 바라본다. (물론 사용하지 않고 그저 바라보기 위한 목적으로 가져올 때도 많다.)

 

앤티크 수집 미학에는 나만 아는 것 같아 아쉬웠던 이런 호들갑과 즐거움이 곳곳에 등장한다. 어느 작가의 작업실 선반에 놓인 신라와 가야 토기를 본 뒤로 홀려 작은 손잡이 잔만 찾아 헤맸다든지, 아내에게 아주 저렴하게 산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든지무언가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사람 특유의 바보짓에 웃음이 새어 나온다.

 

한편, 오랫동안 우리 옛 물건을 수집해 온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묘사할 때는

 

마음이 벅차게 경탄스럽다. 나는 특히 한국의 전통 직물인 무명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좋았다. ‘무명은 질박하고 기교가 없으며 소박하다. 또 물레로 실을 짜므로 불규칙한 굵기로 인해 표면에 무수한 변화를 동반한다. 그것은 토기의 피부 질감이기도 하고 도자기의 색감과 물성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내가 우리 옛 물건에서 느낀 아름다움이 잘 표현된 문장이었다.

 

사실 우리 옛 물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너무나 익숙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우리 곁의 아름다움을 나의 언어로 표현해 보고 싶다는 열망에서였다. 우리 옛 물건을 사랑하고 탐닉하다 보면 결국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기에, 책 속에서도 우리 미감에 대한 다양한 사람의 표현이 등장한다. ‘조용하게 스친 흰색’(최순우), ‘무계획적이고 형식이 부족하며 불완전한 채로 있지만 어딘가 자연스러운 것’(그레고리 헨더슨) 등의 문장을 읽으며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하고 다른 관점의 논의가 등장하기를 기대하게 되기도 한다.

 

무언가를 수집하는 일은 결국 안목을 기르는 일이다.

저자는 안목을 좋은 것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알아보는 눈과 미처 보지 못하는 부분까지 볼 수 있는 그런 눈, 그리고 그것을 온전히 문장과 말로 풀어내는 능력이라 말한다.

좋은 것이 왜 좋은지 말할 수 있는 것.

자신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순수하게 잘 해보고 싶은 일이다.

나도 언젠가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이토록 순수하고 열정적인, 지적인 탐구로 가득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하는 책. 우리 문화와 옛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바란다.

 

<독서IN 독서칼럼>에서, 2024. 12.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