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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어머니는 기저귀가 싫다고 하셨어

닭털주 2022. 2. 16. 19:34

[김은형의 너도 늙는다] 어머니는 기저귀가 싫다고 하셨어

 

너도 늙는다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성인 기저귀 시장도 점차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김은형

 

 

지난해 초 고관절 골절로 수술을 받고 한달여 만에 집에 돌아온 엄마의 방 주변 풍경은 조금 달라졌다. 목욕의자 같은 생활보조용품들이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방에 들어갈 때마다 자꾸 눈길이 가는 건, 장롱과 벽 사이 좁은 틈에 쌓여 있는 기저귀였다. 아기의 똥기저귀를 치우면서 산 게 불과 십여년 전인데 왜 이렇게 낯선 건지, 뭐라 말할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엄마, 기저귀 차요?”라고 묻지는 못했다.

대신 엄마와 함께 사는 언니의 하소연으로 대략의 상황을 파악할 수는 있었다.

병원에서 소변줄을 오래 꽂고 계셔서 그러는 건지,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대여섯 걸음을 못 참으셔. 방바닥에만 흘리면 차라리 나은데 하루걸러 이불 빨래야.”

그럼, 저쪽에 쌓여 있는 기저귀들은?

일자형, 팬티형, 종류별로 다 사다놨는데 절대 안 쓰셔. 입원해 있을 때는 자식들 고생한다고 병원에도 오지 말라고 성화했던 엄마가 매일 이불 빠느라 내 허리 나가는 건 안 보이나 봐.”

어린 시절에는 유행가(‘어머님께’) 노랫말처럼 짜장면이 싫다고 하시면서 자식들만 챙겼던 어머니가 나이 들어서는 기저귀가 싫다고 하시면서 돌보는 자식 등골을 빼니 참 인생의 아이러니다.

하지만 엄마의 거부감도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기저귀가 뭐라고, 그저 생활보조용품일 뿐이잖아, 라고 다그치기에는 기저귀는 사용 당사자에게 지팡이나 보청기, 목욕의자와는 다른 차원의 어떤 인생의 새로운 국면처럼 느껴질 것 같다.

고령화사회가 진행되면서 거동할 수 없는 환자들을 위한 의료용품처럼 소비되던 성인 기저귀가 시장의 전면에 나온 지도 한참 됐다.

일본에선 성인 기저귀 시장이 유아 기저귀 시장보다 커졌다는 뉴스가 이미 2012년에 나왔다.

고령화 진전이 일본의 15년 뒤를 따라간다는 한국도 비슷한 형국이다.

유명한 중장년 배우가 성인 기저귀 광고에 나오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한 주부 커뮤니티 게시판에서 기저귀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니 3, 4년 전부터는 어르신 기저귀에 대한 정보를 묻는 글이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관련 글들을 읽어보니 기저귀 착용을 하게 된 부모를 향한 안쓰러운 마음이나, 하릴없이 늙어가는 육체를 목도하는 착잡한 소회 등도 꽤 많았다.

하지만 성인 기저귀와 유아 기저귀의 공통점 중 하나는

사용 당사자의 후기를 듣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인데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의 속편인 <다시, 올리브>를 보면 약간의 유추를 할 수 있기는 하다. 올리브는 나이 들어 두 남편과 차례로 사별하고 심장마비로 죽을 고비를 넘긴 뒤 마지못해 노인복지주택에 입주한다.

다른 사람들이 밴(아파트 셔틀버스)에 타는 모습을 지켜보며, 올리브는 몇몇 여자들이 디펜드인가 뭔가를 차고 있는 것에 시선이 갔다. 늙은이가 하는 끔찍한 기저귀. () 어떤 여자는 버스 바닥에 떨어뜨린 뭔가를 주우려고 굽히다가 그 사실을 모두에게 드러냈다. 올리브는 몸서리를 쳤다.” 그 여자는 지인의 장례식 등 모임에 나가려면 기저귀를 써야 하는 올리브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수많은 노인용품이 육체의 노화를 인증하지만 기저귀는 좀 더 상징적이다.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면서도 쉼없이 집필 활동을 해온 정신과 의사 김혜남은 어른으로 산다는 것은 다양한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늙어간다는 건 꿈과 건강, 사랑하는 이까지 상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과정이지만 좀처럼 적응 안 되고 받아들이기 힘든 게 자기 통제력의 상실이 아닐까 싶다. 그중에서도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우는 자기 통제력인 배변의 통제가 힘들게 되었을 때 이제 아무것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는 자괴감이나 수치심이 일어나는 건 당연해 보인다.

젊은 시절 술 먹다가 화장실 들락날락하는 것도 귀찮다고 기저귀 차고 먹을까 봐라고 농담하던 친구에게 늙어서 진짜 기저귀를 차게 되면 어떨 거 같냐고 물었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노안이 일찍 왔잖아. 돋보기 살 때 인생이 확 주저앉는 느낌이 들었거든. 근데 적응하니까 세상 편해. 자궁 들어낸 다음에도 이제 여자로서는 끝났구나 싶었는데 생리통 없어지니 좋아. 요전에는 음식 씹을 때마다 턱에서 딱딱거리는 소리가 나서 치과에 갔더니 턱을 오래 써서 그렇대. 다시 심란해졌지. 요즘 아이들이 비하하는 틀딱이 나구나 싶고. 하지만 뭐 어쩌겠어. 적응하겠지.

기저귀도 처음 찰 때야 인생이 패대기쳐진 것 같겠지만

나이 오십에 대학원 공부도 시작한 마당에 기저귀 차고 박사과정 밟게 될지 누가 알아?”

역시나 자괴감은 짧고 인생은 길다.

 

문화기획에디터 dmsgu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