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손꾸락 콱 잘라뿌고’ 싶은 이에게

닭털주 2022. 2. 26. 17:11

손꾸락 콱 잘라뿌고싶은 이에게

채효정오늘의 교육편집위원장

 

 

손꾸락을 콱 잘라뿌고 싶소.” K는 말했다. 투표 다음날부터 배신당하고 후회하는 시민. 그는 몇 번이나 손가락을 잘랐을까. 이번에도 그는 암만 생각해도 찍을 사람이 없다고 한다. 열네 명의 대통령 후보 중에, 내가 살고 싶은 세상 같이 꿈꾸는 이가 정말로 한 명도 없는 건가. 양당체제가 고착된 이후로 당선 가능한 후보와 지지하는 후보 사이의 간극은 점점 멀어져 갔다. 안 찍으면 안 찍었지, 더 나쁜 놈 막으려고 덜 나쁜 놈 찍는 그런 투표 다시는 하지 않겠다 다짐했건만 투표일이 다가오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혹시라도 나 때문에 세상이 더 나빠질까봐. 하지만 세상이 나아지지 않는 건 손가락을 그렇게 꺾고도 당신이 또 예전과 똑같은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최악을 막겠다며 차악에 투표하고, 그 사람이 싫어서 더 나쁜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 미워도 다시 한 번 하며 표를 주는 것. 누가 우리의 정치적 선택을 공학과 확률의 선택으로 좁혀놨는가.

 

투표에서 한 표의 의미를 생각할 때 나는 아테네 민주정의 태동기를 떠올리곤 한다. 물론 아테네의 민주정치는 공직자를 투표로 뽑진 않았다. 추첨으로 뽑힌 각 지역의 데모스가 돌아가면서 공직을 수행했다. 하지만 민회에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투표를 통한 다수결정제에 따랐다. 부자든 빈자든 귀족이든 평민이든 똑같은 한 표를 행사했다. 원래 위계와 권위는 귀족사회의 전통이다. 민주정 이전에는 아테네도 그런 사회였다. 그런데 똑같은 한 표가 어떻게 발명되었을까. 역사는 전하기를 그리스 전역에서 민중반란이 일어나고 있던 시기 아테네에서 독특한 방식의 토지분할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아테네는 다른 곳과 달리 농민들이 지주들로부터 토지를 몰수하여 재분배하는 대신 자신의 몫을 다른 곳에 요구했다. 자신들의 몫, ‘클레로스를 민회의 한 자리에 할당했다는 것이다. ‘으로 번역하는 클레로스는 원래 토지를 분배한 할당지를 일컫는다. 프닉스 언덕에 고작 자기 엉덩이만 한 땅뙈기를 얻었다고 놀림을 받았지만 이 몫이 한 표의 권리가 되었다.

나중에 다른 이웃 폴리스에서는 쫓겨난 귀족들이 힘을 규합하여 다시 돌아와 반란농민들을 진압하고 땅을 빼앗았지만 아테네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부채를 탕감하고 채무를 빌미로 농민의 땅을 빼앗고 인신을 예속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제정해놓았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데모스는 중요한 결정마다 민회에서 투표로 관철시켜 나갔고, 부유한 귀족들의 힘을 약화시키고 민중의 힘을 강화할 여러 제도들을 고안하고 법으로 강제했다. 공공축제나 선박의 건조, 축성, 공공식사 등 큰 국가 행사에 들어가는 비용을 최고 부자가 대도록 한 레이투르기아라 불린 공공봉사도 그런 제도였다. 매년 레이투르기아를 통해 최고 부자의 재산이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에 아테네에서는 부에서 다른 시민을 압도하는 시민이 나올 수 없었다.

근대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고대로부터 민주주의 이념을 빌려와 구체제를 타파했지만 민중의 표가 정치적 힘이 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여러 장치를 만들었다. 대의제도 그중 하나다. 사표론도 정치적 상상력을 봉쇄하는 데 기여한 대표적 논리다. 사표론은 당신의 표를 훔쳐가기 위해 선거전문가들이 고안해낸 정치공학의 기술이다. 당신이 지지하는 이에게 표를 던지면 결과적으로 당신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당선된다는 말은 협박이다. 지지와 투표를 분리시키고, 소수정당을 압살하며, 민주주의를 왜곡시키는 고약한 논리다. 내가 안 찍어서 세상이 더 나빠질까봐 걱정하는 마음을 인질로 잡고서, 바둑판을 내려다보듯이 선거 판도를 보면서 표를 이동시키고 수집하는 선거장사치들의 관점이다.

 

어떤 식으로든 표를 긁어모으려는 이들에겐 숫자로 집계되는 수많은 투표 수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만, 나의 한 표는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전부인 한 표다. 그 한 표에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가 원하는 정치, 꿈꾸는 세상이 무엇인지가 오롯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인간은 그런 정치적 삶을 살아가는 존재다. 일생 동안 내가 한 투표는 나의 정치적 삶의 궤적으로 남는다. 아무도 당신을 탓하진 않지만 손가락을 자르고 싶었던 건, 자신의 정치적 선택에 스스로 책임을 느끼고, 자신에게 부끄러웠기 때문이 아닌가. 함께 모인 표는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을 드러낸다. 권력자들이 두려워하는 건 그렇게 드러나는 사람들의 뜻이요 마음이다. 당장 거둘 확실성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불확실한 희망에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다. 이번에는 낼모레 선거 말고 5년 후, 10년 후, 백년 후에 투표하자. 우리의 존엄에 표를 던지자. 그래야 세상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