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방만한 예산 집행’ 만화진흥원 왜 이러나

닭털주 2022. 3. 14. 19:10

방만한 예산 집행만화진흥원 왜 이러나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ㆍ기초지자체 출연기관 불구 감시·견제 없이 연간 200억원 사용

 

경기도 부천시는 한국의 대표 만화도시.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만화상을 시상하는 부천국제만화축제가 열리고, 만화로만 한정하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중앙도서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한국만화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 사업을 주관하며 부천에 만화도시라는 브랜드를 입힌 기관이 바로 한국만화영상진흥원(만진원)이다. 올해로 설립 24년차를 맞는 만진원은 지난해 집행한 연간 예산이 2022000만원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러나 성장과 함께 드러난 부작용과 한계를 알리듯 기관 안팎 여기저기서 잡음이 커지고 있다.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경 / 경기건축포털

 

사실 이제 만진원이 100억원 단위의 국비 예산을 쓰는데, 너무 큰 예산을 쓰다 보니 함부로 쓴다는 생각이 든다. 사업 실적만 들여다봐도 연구사업을 벌이려고 용역업체를 선정했다더니 연구 결과물은 공유하지 않아 공개된 자료를 찾기가 힘들고, 이런 일이 한둘이 아니다.한상정 인천대 교수(불어불문학)는 만진원의 창립 초기부터 인연을 맺어온 만화 연구자다. 1998년 만진원이 창립 초기 부천만화정보센터라는 이름으로 첫발을 디딜 무렵부터 당시 유학 중이던 프랑스의 만화 문화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바 있다. 만화 분야 연구자와 평론가들이 모여 만진원과 함께 꾸린 민관협치 연구모임 만화포럼에도 참여했다. 만진원과 부천시의 만화정책 수립에 조언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2013년 발족해 민관협치 모델로 운영되던 만화포럼은 지난해 11월 해산됐다. 해산 이유를 놓고 포럼 참여 위원들과 만진원 측의 주장이 엇갈린다. 포럼 위원 측은 세칙에 따라 위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만 해산할 수 있음에도 만진원이 일방적으로 해산시켰다고 주장했다. 반면 만진원은 사업 개선을 위한 다양한 대안을 제시했으나 만화포럼 참여 위원들이 진흥원의 협의·논의를 거절했다고 밝혔다.

 

나비효과 일으킨 만화포럼 해산

 

만화포럼의 해산은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무엇보다 국내 만화·웹툰산업의 성장과 궤를 같이하며 24년에 걸쳐 영향력을 키워온 만진원을 바라보는 시각에 균열이 생겼다. 한 교수의 지적대로 만진원의 연간 예산 총액이 200억원대로 늘어나면서 여기에 투입되는 국비 역시 100억원을 훌쩍 넘기고 있다. 집행하는 예산 규모에 걸맞은 감시와 견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만진원의 운영을 두고 만화계 내부 곳곳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이어지는 배경이다. 특히 만화포럼 참여 위원들이 오랜 기간 만진원의 내부 사정을 파악하고 있던 인사들이다 보니 이들이 지적하는 만진원의 문제점 역시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

 

만진원의 사업 중 가장 의혹의 눈길이 집중되는 대표적인 사업으로 웹툰 아카이브 사업을 들 수 있다. 만진원은 아카이브 사업 및 박물관·도서관 운영 사업을 통해 발간된 지 오래된 출판만화에 대한 자료 수집 및 데이터베이스 구축 등의 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웹툰 아카이브 사업은 인터넷에서 쉽게 감상할 수 있는 웹툰 작품도 플랫폼이 갑자기 서비스를 중단하면 일반 독자들이 접근할 수 없게 된다는 문제점을 인지하고 시작했다. 하지만 연간 10억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는 해당 사업이 제대로 된 성과를 내고 있는지 만화계 안팎의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웹툰 아카이브 사업 중 가장 비판을 받는 대목은 만진원의 신종철 원장이 지난해까지 시스템 구축을 거의 완료했다고 직접 밝혔음에도 대외적으로는 아카이빙된 자료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신 원장은 지난해 1126일 열린 부천시의회 재정문화위원회 제4차 회의에 출석해 “3년 계획으로 추진 중인 국비사업 중 올해가 3년차라며 올해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홈페이지까지 만들었고, 그다음에는 DB를 쭉 구축하는 사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사업을 분석한 만화칼럼니스트 서찬휘씨는 그러나 이전까지 구축한 고전만화와 도서관, 유물관리 아카이브의 기반 체제와 전혀 다른 체제로 웹툰 아카이브 작업을 벌여 상호 호환이 되지 않을 뿐더러 들인 비용과 시간에 비해 작업 속도도 지나치게 늦다고 지적했다.

 

아카이브 사업 연구결과 공유 안 해

 

만진원은 웹툰 아카이브 사업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오자 34일부터 해당 사업의 온라인 서비스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해산된 만화포럼 참여자들이 새롭게 결성한 만화연구와 비평을 비롯해 부천시의회 의원연구 단체 지방분권 연구포럼’, 한국만화가협회, 한국웹툰작가협회, 한국여성만화가협회 등이 지난 217부천과 만화: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진단과 해부토론회를 열어 아카이브 사업 문제를 지적한 뒤에 나온 반응이다. 만진원이 수행하는 주요 4대 국비 사업 부문 중 하나인 이 아카이브 사업이 지나치게 늦어졌다는 점 외에 자료 수집이 부실했다는 지적도 있다. 서찬휘씨는 해당 사업 용역을 맡은 업체를 운영사로 명기한 공지가 한 만화 관련 학회 내부에 올라왔는데 그 내용이 대학생 졸업 작품 및 재학생 작품도 수집한다는 것이었다사실상 데이터 수집 실적이 부족해 대학생 작품까지 대상에 넣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

 

개별 사업당 연간 10억원 이상을 투입하는데다 여기에 창작기반 조성과 인재양성 등의 주요 정책목표 사업까지 포함하면 만진원 사업에 들어가는 국비 예산만 연간 100억원이 넘는다. 만진원의 올해 업무계획에는 국비 보조금만 1026000만원에 달한다. 경기도와 부천시가 각각 지원하는 보조금은 43000만원과 42000만원에 불과하다. 부천시의 출연금이 62억원에 달하지만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기관 운영을 위한 인건비 등에 묶여 있음을 감안하면 국비 의존 비율이 크게 높음을 알 수 있다. 만화 분야를 포함해 대중문화와 게임, 관광 등 전 영역의 콘텐츠 산업을 총괄하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난해 만화산업 육성 예산이 676800만원이었다는 점과 비교하면 더욱 대비된다.

 

국내 웹툰산업의 규모만 1조원을 돌파한 시점이다. 만진원의 영향력은 현실적으로 어마어마하다. 그에 상응하는 견제가 없다는 비판은 그래서 더욱 커지고 있다. 만진원은 성격상 공공기관에도 들어가지 않는 기초지자체의 출연기관이다. 부천시의 출연금으로 조직과 사업을 꾸리고 있어 1차적으로는 부천시와 부천시의회의 감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실질적인 사업 집행범위는 부천을 넘어 전국을 대상으로 한다. 한상정 교수는 그나마 수도권에서는 공공과 민간 차원에서 만진원의 입지가 독점까지는 아니지만 다른 지역으로 갈수록 사실상 슈퍼갑이 된다막대한 예산을 지역에 뿌리는 방식으로 사업을 벌이다 보니 만진원의 태도 자체가 만화계를 우습게 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부천시의회 의원연구단체가 주관한 만진원 문제 진단 토론회를 앞두고 피감기관인 만진원은 시의회에 유감을 표하는 공문을 발송하기도 했다. 홍진아 부천시의회 의원은 토론회와 관련해 진흥원에서 의회로 사전에 자료를 공유하라는 공문을 보냈다언론을 통제하던 시절 사전 검열도 아니고 미리 토론회 내용을 받아보고 판단하겠다는 만진원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고 비판했다.

 

그래놓고 만진원은 정작 자신들이 수행한 사업 관련 자료를 투명하게 공유하지 않고 있다. 사업 진행 후 결과보고서는 물론이고 아카이브 사업을 추진한다고 하면서 정작 만진원이 초빙해 원고를 받은 만화 비평이나 칼럼조차 아카이브 검색을 통해 찾을 수 없는 형편이다. 박기수 한양대 교수(문화콘텐츠학)국내에 있는 문화 관련 공적 기관 중에서 연구 용역이나 리서치 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유일한 기관이 만진원이라며 숱한 예산이 매해 들어가지만 성과는 어디서도 확인할 수 없고, 또 사업 성격도 국비인지 시비인지조차 구분되지 않는 문제를 가진 기관이라고 말했다.

 

민관협치 원칙 보다 강화해야

 

상대적으로 제3자의 입장에서 자유롭게 비판에 나서는 연구자나 평론가들과 달리 만진원의 지원사업에 민감해 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작가단체들도 그동안 쌓인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만진원이 수행하는 일부 사업을 다른 기관에 위임하거나 보다 근본적인 감독을 거쳐 새 판을 짜야 한다는 지적이다. 권혁주 한국웹툰작가협회 회장은 만진원에 대한 작가들의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에 아카이브 사업은 더 이상 만진원이 손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아카이브 사업이 단순히 자료를 기록으로 남기는 차원이 아니라 저작권 문제와 직접 연관돼 있기 때문에 고유한 식별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만진원을 국가기관으로 승격해 보다 적극적인 통제를 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만화계는 회의적이다. 202012월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승원 의원(더불어민주당) 등 의원 13명이 만진원을 한국콘텐츠진흥원 산하기관으로 편입하는 내용의 문화산업진흥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만화계의 반발에 부딪혔다. 해당 개정안은 만화·웹툰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고 있음에도 국가기관 중 이를 총괄하는 기관이 없다는 점을 들어 방만한 운영을 지적받아 온 만진원을 한국콘텐츠진흥원 산하로 두는 법적 근거 마련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우리만화연대와 웹툰협회 등 만화계 단체들은 그동안 민관협치 모델로 성장해온 만진원의 독립성이 침해받는다며 우려를 표했다. 부천시 역시 지방자치 원칙을 침해하는 법안 개정이라고 반발했다. 국회 문광위 임재주 수석전문위원도 해당 개정안 검토보고서에서 만화에 대해서만 별도의 부설기관을 설립할 경우, 타 장르와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음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결국 만진원이 막대한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투명성을 강화하고 그간 성장의 한 동력이 됐던 민관협치 원칙을 보다 강화하는 쪽으로 만화계의 의견이 모이고 있다. 현재보다 예산은 100분의 1도 안 되던 시기의 초심을 찾으라는 주문이다. 만진원 이사장을 지낸 한 원로 만화가는 이사장 재직 당시에도 부천시의 입김과 만진원 내부의 내홍 때문에 표류할 뻔한 적이 많았지만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인식보다는 개선이 가능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힘이 커진 만큼 책임도 커졌음을 인정해야 앞으로도 만화계의 중심 역할을 하는 기관으로 남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도태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