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야기

웹소설이란 무엇인가

닭털주 2022. 3. 16. 12:58

웹소설이란 무엇인가

 

박미향 | 문화부장

 

 

그가 울음을 참았다. 어머니를 뵌 지 얼마나 되었냐고 묻자 꾹 눌렀던 슬픔을 터트렸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외국에 사는 부모님을 2년간 뵙지 못했다고 했다. 덩치가 산만한 후배는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흐느꼈다.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클지 상상이 안 됐다. 동시에 9년 전 폐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아버지는 병원에서 그렁그렁 가래가 차오를 때면 두루마리 휴지 한 칸을 반으로 잘랐다. 쓰고 남은 반은 천천히 접어 머리맡에 고이 두셨다. 그러지 마시라고 몇번을 말씀드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뭐든 아낄 수 있을 때 아껴야 한다.”

아버지의 청승이 싫었다.

미간을 찌푸리며 타박도 했다. 못났던 내가 지금도 밉다.

자식의 죄책감은 유통기한이 없다. 상을 치르고 일상에 복귀했지만, 멍하게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슬픈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닥치는 대로 소설책을 집어 들었다. 차츰 멍하게 지내는 시간이 줄었다.

통속소설의 가치를 그때 깨달았다.

평론가들이 논할 가치도 없는 낭비라는 질타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웹소설을 접하면서다.

통속소설보다 더 재미있지만, 돌아오는 건 불편한 허무감이었다.

판타지나 로맨스, 미스터리 등

천편일률적인 플롯이 대부분이고, 회귀, 초능력 등이 주요 장치였다.

거기서 소설의 사회적 역할, 예컨대 인간사의 빛과 그림자를 드러내 해결점을 고민하게 한다든가, 사유의 세계로 이끌어 삶을 돌아보게 한다든가 하는 성찰은 부족해 보인다.

언어의 힘을 빌려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로 소설만한 게 없다.

소설을 통해 우리는 타자에 대한 감수성을 키운다.

하지만 이런 효용을 웹소설에 기대하기는 어렵다.

초능력을 발휘하는 주인공에게 나를 대입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과거의 나와 같은 이들이 많나 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웹소설 시장 규모 자료를 보면 2014200억원대 규모였던 웹소설 시장은 꾸준히 성장해 2018년엔 4000억원대에 이르렀다.

올해는 단행본 시장을 훌쩍 넘는 성장을 예상하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20일 김영사가 출간한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전독시)은 단연 화제다.

전독시는 웹소설계의 레전드다.

2018년 싱숑 작가가 웹소설 플랫폼 문피아를 통해 발표한 작품은 이후 네이버 시리즈 다운로드 수만도 1억뷰가 넘는다. 이 작품 역시 소설 속으로 빨려들어간 주인공의 활약이 큰 줄기다. 웹소설 전문 출판사도 아닌, 기존 대형 출판사가 펴낸 점도 특이하지만, 출간 5일 만에 8700세트가 다 팔렸다고 하니 이 또한 불황인 출판 시장에선 이례적이다. 8권짜리 한 세트의 가격은 128000. 파트23이 올해 출간 예정이라고 하니, 이 추세대로라면 수십억 수익을 내는 건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웹소설은 부끄러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자료 ‘2020 웹소설 이용자 실태조사를 보면

웹소설 독자들은 자신의 이용 사실을 드러내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웹소설은 수준이 낮다는 인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B)급 문학이란 꼬리표가 단단히 박혀 있다.

이 점은 작가, 플랫폼, 출판사 등이 눈여겨볼 지점이다.

규모 확장엔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그 이상을 담보하기 위해선 필요한 게 많다.

이제야말로 제대로 된 웹소설 평가가 필요하다.

다운로드 수나 단행본 판매 금액이 평가의 잣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기존 문학은 긴 세월 독자와 평론가들의 매서운 평가를 받으면서 성장하고 그 수준을 높였다. 내 주머니를 터는 시간 도둑놈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선 말이다.

조정래·나병철 선생이 쓴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빗대 묻고 싶다.

웹소설이란 무엇인가?’

후배가 회사로 복귀하면, 그에게 건넬 책을 골랐다.

페이지터너(너무 재밌어서 한번 잡으면 놓지 못하는 책)류 대표 저자의 작품이다.

프랑스 대중소설가 기욤 뮈소의 <센강의 이름 모를 여인><구해줘>에 아린 마음을 추스르라고 위로를 적으련다.

 

m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