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부부 건축가의 공공탐색] 다시, 광장이 찾아온다

닭털주 2022. 5. 5. 09:40

[부부 건축가의 공공탐색] 다시, 광장이 찾아온다

 

 

 

서울 세종로사거리 쪽에서 바라본 광화문광장의 풍경. 임형남 그림

 

노은주·임형남 | 가온건축 공동대표

 

 

지금 한창 공사 중인 광화문광장이 오는 7월에 다시 열린다.

광장을 중심으로 양쪽에 있던 차로를 동쪽으로 몰고,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넓히는 계획이 논란 끝에 몇년 전 확정되었다.

면적을 늘리고 녹지를 확장하며, 섬처럼 고립되었던 광장에 보행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번 계획의 핵심이다.

 

사람마다 각기 광화문 앞길에 대한 기억이 있겠지만,

나의 기억은 지금은 사라진 시민회관으로부터 시작된다.

차들이 씽씽 달리는 길가에 시민회관이 있었고 중앙에는 열을 지어 서 있던 은행나무가 도로의 중앙 분리대 구실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곳에 모인다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고 길을 건너기 위해서는 지하도를 거쳐야만 했다. 그때마다 언젠가 지상으로 저 길을 걸어서 건너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사람의 접근이 배제된 그 거리는 마치 국경을 가로지르는 넓고 물살이 빠른 강을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세종로사거리에서 바라보면 이순신 장군 동상에서부터 시작해서 광화문과 그 뒤로 육중하게 서 있던 중앙청 건물이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깊이를 가진 육중한 성채 같은 인상을 주었다.

마치 권위주의 시대를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과도 같은 풍경이었다.

 

문민정부임을 표방하는 정권이 들어서며 1995년 조선총독부 청사였던 중앙청이 허물어졌다. 권위주의를 해체하고 과거와 절연하겠다는 하나의 몸짓이었다. 당시 무척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과감하게 중앙청을 철거하자 그동안 가려졌던 백악산이 광화문 큰 거리로 성큼 들어섰다. 그 풍경은 통행을 통제하던 청와대 앞 도로를 개방하는 것보다도 더 감동적이었다. 세종로사거리에서 백악산이 시원하게 눈에 들어오고 그 깊은 강과도 같던 도로에 사람들이 들어차는 과정은, 고단했던 우리의 근현대사를 거치며 시대가 바뀌고 사람이 중심에 들어선다는 신호였다.

광화문 앞길, 세종로는 이제는 광장이다.

예전 해방정국에서도 신탁통치를 반대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고 하는데, 그 이후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일은 별로 없었다.

차만 다니던 큰길에서 광장으로 변화한 것은 아마 월드컵 경기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었던 2002년부터였을 것이다. 은행나무가 도열하고 있는 중앙을 제외하고 길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모여서 함성을 지르며 경기를 같이 관람했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나왔나 싶을 정도로 거리를 메우는 행렬은 끝없이 이어졌다. 그 많은 군중이 모였다가 경기가 끝나고 나면 누구랄 것도 없이 솔선수범하며 거리를 청소한 덕에 금세 원상복구 되었다.

광장의 경험이 우리에게 새로운 유전자를 끌어낸 것 같았다.

촛불과 깃발과 탄성과 함성이 공존하는 곳, 광장은 그런 곳이다.

어떤 물리적인 공간적인 장치라기보다는 사람들이 마음으로 만드는 공간인 것이다.

자연발생적으로 광화문 앞은 광장이 되었고, 사람들은 그렇게 모일 수 있다는 데 큰 재미를 느끼고 그것이 하나의 힘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모두 놀랐다.

서양의 민주주의가 발화하고 화려하게 만개한 것은 광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사실 서구와는 달리 동양의 도시계획에는 그런 광장의 역사가 없다.

그중에서도 우리의 도시는 무척 특이한데,

물론 지금의 서울이 아니라 예전 조선시대 한양의 도시계획으로 거슬러 가보아야 한다.

보통 왕이 사는 수도를 정하고 도시를 정비할 때는 왕궁을 중심으로, 혹은 시작점으로 가로세로 정연하게 길을 내고 도시계획을 세우고 그 안에 내용을 채워 넣는다.

일본의 교토가 그렇고 중국의 베이징이 그렇다.

그러나 한양의 도시계획은 그런 일반적인 왕도의 개념과 무척 다르다.

인위적인 선에 맞추지 않고 산과 물의 흐름을 살리며 자연발생적이면서 자유롭다.

혹자는 그런 도시의 구조에 대해 규칙이 없다며 폄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방식은 미신이거나 비과학적인 것이 아니라

세계관의 차이이고 자연관의 차이일 뿐이다.

광장도 꼭 이래야만 된다는 기준은 없다.

2009년에 한번 완성되었던 광화문광장을 이런저런 의미를 붙여 다시 조성하는 일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았지만 이제 마무리 단계에 와 있으니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한다.

사람들과 광장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하나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일 것이라는 건 예전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이제 다시 우리에게 오는 광장은 연습장의 그림처럼 맘에 차지 않는다고

혹은 생각이 바뀌었다고 지우고 다시 그리지 말고,

아끼며 자연스럽게 시간이 쌓이기를 기다리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