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칼럼

[부부 건축가의 공공탐색] 점 선 면이 만나는 다차원의 세계

닭털주 2022. 2. 21. 11:36

[부부 건축가의 공공탐색] 점 선 면이 만나는 다차원의 세계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스퀘어. 임형남 그림

 

노은주·임형남 | 가온건축 공동대표

 

 

우리는 여행을 할 때 이런저런 정보나 볼거리, 살거리를 미리 알아보는

통상적인 여행 준비를 거의 하지 않는다.

다만 머물 장소를 한 군데 정하고 그 근처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 뱅뱅 돌다 온다.

그곳이 중요한 장소이건 그냥 동네의 한 귀퉁이이건 상관없다.

그리고 돌아와서 가봤던 장소나 의미를 조사한다.

단순한 습관이지만 일반적인 시각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갈 때도 그랬다. 맨해튼이야 무언가를 알아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널리 알려진 대단한 곳이지만, 그곳에 도착했을 때의 첫 느낌은 웃자란 잡초 밭에 들어선 것 같았다. 농사를 멈춘 논에는 개망초 같은 잡초들이 순식간에 빽빽하게 들어서는데 사람 키를 덮을 정도로 높게 자라지만 튼튼하지 않아서 쉽게 꺾이며 무척 허술하다. 그 안으로 찬찬히 헤집으며 들어가다 보면 뜻밖의 풍경을 만나기도 하고 나름대로 아늑하고 편안하다.

맨해튼의 느낌이 딱 그랬다.

생각했던 것만큼 화려하지도 않았고, 높고 과밀하고 정신없이 바쁘지만 어딘가 허술한 느낌이었다.

맨해튼은 미국의 상징과도 같은 땅이며 미국의 서쪽 옆구리에 삐쭉 튀어나온 섬이다.

미국의 영토가 모두 그렇듯 이곳은 원래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땅이었다.

그래서 맨해튼이라는 이름도 언덕이 많은 땅이라는 원주민의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1600년대 초반 찾아온 네덜란드인이 당시 24달러 정도의 대가로 이 섬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유명한데, 이후 영국과 다시 바꾸면서 뉴욕이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월스트리트나 브로드웨이, 센트럴파크 등 유명한 장소가 워낙 많지만, 그중에서도 타임스스퀘어는 중심이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이고 인증 샷을 꼭 찍어야 하는 곳이다.

맨해튼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브로드웨이는 원래 아메리카 원주민이 다니던 길, 즉 오래된 땅의 기억이다. 동서로 뻗은 길(Street)과 남북으로 뻗은 길(Avenue)이 직교하는 그리드는 도시계획으로 새로 정비하며 생긴 길이다.

즉 미래에 대한 희망이며 의지라고 볼 수 있다.

그렇게 과거와 현재의 길들로 직교하는 그리드가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선을 만나며 생긴 지점이 타임스스퀘어로, 삼각형 두 개가 모래시계처럼 맞닿은 형상이다.

사선과 직교하는 선이 어슷하게 교차할 때 생기는 공간감은 무척 역동적이다.

이렇게 운동감이 있는 사선과 규범적인 직선이 교차할 때의 공간감은 우리나라 영주 부석사에서도 느껴본 적이 있다.

일주문에서 범종각까지 직선으로 올라가다가 사선으로 꺾이는 범종각 하부를 지나면, 갑자기 안양루가 보이는 장면에서 충격과도 같은 감동을 받게 된다.

원래 광장은 서양 민주주의의 상징 같은 곳이며 모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도시의 일부가 커다랗게 비워지고, 대부분 원형이나 네모난 평면의 공간으로 구성된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타임스스퀘어는 아주 특이한 광장이다.

머무르는 장소라기보다는 지나가는 장소이고 길들이 교차하는 지점일 뿐인데, 늘 사람들로 그득하고 연말이면 새해를 이곳에서 맞이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리고 밝고 현란한 전세계의 돈을 거머쥐고 있는 기업들의 광고판이 사람들의 분리된 영혼처럼 그 위로 떠다닌다. 그것은 20세기 말에 사람들 입에 꽤 오르내리던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떠올리게 한다. 미래를 디스토피아적 상상으로 그린 영화의 어둡고 칙칙한 풍경 속, 산성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도시의 한복판에 유일하게 미래의 빛을 내는 것은 건물 크기의 전광판이다. 일본 여인이 특유의 화장을 하고 얇게 웃으며 무언가를 사람들에게 권유하는 장면은 조명이나 광고판 같은 물질문명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하는 미래도시의 모습을 예견하고 있었다.

도시의 직선과 사선이 만나고 그 위로 수직의 건물들이 빽빽하고 면으로 구성된 거대한 광고판들 그리고 점점이 뿌려놓은 것 같은 사람들, 그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차원의 점과 선, 면이 모두 모인 다차원의 세계다.

타임스스퀘어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그렇다.

어떤 이슈가 있을 때 길이 광장이 되는 경험을 우리도 몇번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상징적인 광장을 만든다며 주기적으로 떠들썩해진다.

그에 비해 타임스스퀘어는 수많은 사람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길과 도시의 발전 의지를 담은 직교하는 그리드가 만나는 충돌의 지점에 형성된 자연스러운 광장이다.

인위적으로 모이는 장소가 아니라 움직이는 장소이고, 가장 미국적인 광장이다.

그런 역동성이 이곳을 미국의 중심이자 세계의 중심으로 이끈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