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쓰다

책에 갇히다

닭털주 2024. 2. 25. 09:02

책에 갇히다

 

주상태

 

목이 메이면 쉬어가면 되고

길이 막히면 돌아가면 되는데

책이 길을 막으면 온전히 삶이 막힌 것 같다

책을 성처럼 쌓아 가두고

한 권

한 권

책을 삼키고

책을 어르고

책으로 길을 만들며 나아간다

무너질 것 같은 벽은 다시 쌓으면 되는 것

어제 보고 싶었던 책은

오늘 만났던 책에 밀리고

내일은 다른 책 속에서 허덕인다

제목이 보이도록 할 것

친구끼리 짝을 지어둘 것

이름은 기억할 것

한 권이 아니라 두 권이라도

나에게는 모두 책인걸

책에 막히면

내 삶은 정체되고

잘못 찾은 커피 자국에도 가슴 아려하고

버려진 책갈피를 책 속에서 다시 펼치려 하면서

책은 영혼의 가장 낮은 곳에서 울림을 시작하고

나를 흔들고

나를 가두고

나를 버리기도 하고

나를 막지만

책을 버리지 못하는 삶

가끔 절망이 되는 시대에

책은 길을 막지만

길 위에서 책은 외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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