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쓰다

장대비가 쏟아지면

닭털주 2024. 2. 23. 08:59

장대비가 쏟아지면

 

주상태

 

 

비가 오는 날이면

빗소리를 음악삼아 막걸리를 마신다

호우특보 강풍경보도 안타깝지만

나를 울리는 것은

지붕을 때리는 따가움

가슴을 파고드는 외로움

공휴일이면 으레 보는 특선영화 같은 것

경기북부 파주에서 전해오는 침수피해는

기어이 뉴스거리로 다가오고 만다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뉴스거리로 남는 것

한동안 살았다가 사라지는 하루살이같은 것

의미있는 일이란

비가 내리고

거칠게 다가와 음악이 된다는 것

도시에서 마비되어버린 감성이

길 잘못 찾은 내비게이션처럼

가는 길은 그곳인 줄 알고

뇌비게이션보다 낫다고 여기는 슬픔

몸마저 술을 이기지 못하면

가지런히 놓인 진열장 상품처럼

팔리지 않는 몸을 누이고 기다릴 뿐

이미 팔린 줄도 모르고

아직 팔리지 않은 줄 알면서도

반복하고 반복하다 생을 마감하며

시골의 하루살이보다

도시의 더부살이를 원망한다

장대비가 쏟아지면 물에 잠긴 이웃소식이

장송곡으로 들리지 않는 것은

도시생활에 적응했다는 것

도시에서 죽으라는 것

질펀한 삶이 물 한길 빠질 여유도 없이

역류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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