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쓰다

주부 날다

닭털주 2024. 2. 21. 09:49

주부 날다

 

주상태

 

 

노랫소리 높이지 않고도

빨래를 널고

음악 틀지 않아도

설거지에 빠져드는 것을 보면

얼추 주부가 되었나 보다

일상이 때로는 사람을 키우는 법

목욕을 하다 가도 욕조를 닦고

이빨을 닦다 가도 세면대를 닦는 것은

주부가 아닌 듯

일상이 사람을 죽이는 법

오지 않을 미래를 위하여

전자렌지의 속을

마음 청소하듯 칫솔로 문지르고

싱크대 오물을

내장 긁어내듯 정성스레 냄새를 감수한다

주부가 된다는 것은 가정을 알게 된다는 것

살림을 한다는 것은 삶을 가꾸는 일

고무장갑이 손 건강에 좋다는 것을

모르지 않지만

오늘 느낌 그대로 간직하고 싶은 것은

주부가 되어 하늘을 날기 위한 연습 같은 것

꿈을 꾸지 않아도

가슴 뭉클해지는 사랑 같은 것

 

나는 오늘도 손빨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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