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쓰다

사생대회를 가다

닭털주 2024. 3. 5. 09:17

사생대회를 가다

 

주상태

 

 

그림을 그리러 가는 건지

나를 그리러 가는 건지

 

붓으로 그린 나무 시들어버리고

펜으로 그린 동물 사라져버린다

모두들 박제된 풍경 속으로

블랙홀에 빠진 것처럼

 

물통 속에 던져진 빨간 물감은 번지고

번지고

화판 위에서는 붉은 피로 번지고

번지고

진한 나무는 덧칠을 어렵게 만드는 먼 미래

나를 길러낸 것은

그늘 아래 앉아 주먹밥 먹고 수다 떠는 입들

대충 칠한 나무들만 살아남는

우리는 숲속의 나무

 

그림 속으로 들어 간 나무는

사라지기 전에

시들기 전에 덧칠해져야 한다

 

조잘거리는 웃음 속에

오후 햇살은

따갑게 시간을 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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