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자마도 자고 살도 빼자

닭털주 2024. 8. 8. 08:59

잠도 자고 살도 빼자

입력 : 2024.08.07 20:40 수정 : 2024.08.07. 20:43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요즘처럼 밤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에는 자주 잠에서 깬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멍하니 어둠을 응시할 때도 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자고 일어나면 키가 더 커진다는 사실이다.

해부학 논문을 보면 침대에 들기 전보다 아침에 15정도 더 크다.

우리 몸 중심인 척추가 중력을 덜 받아서 그럴 것이라 짐작하지만

사실 밤에 무방비로 누워서 자는 동물은 인간 말고는 없다.

 

자는 곳이 안전하지 않거나 가늘게 코를 고는 식구들이 옆에 없다면 저렇게 터무니없이 방심한 채로 잠들지는 못할 것이다. 선교사로 가족과 함께 아마존에 들어간 대니얼 에버렛이 쓴 <잠들면 안 돼, 거기 뱀이 있어>를 보면 잠을 편히 자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시카고대학 크리스틴 크누트손은 1960년 당시 8시간에서 8.9시간을 자던 미국인들이 1995년에는 7시간, 2004년에는 6시간보다 적게 잔다고 국립수면재단의 통계자료를 소개했다.

아마 한국인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안전하게 잠을 잔다고 해도 자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다. 불과 200~300년 사이에 인류의 수면 양상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생리학자들은 수면 단축이 비만이나 당뇨병 이환율과 관계가 있다고 가정하고 그 인과성을 증명하고자 노력한다. 사람을 대상으로 직접 실험하기 어려운 탓에 데이터 대부분이 우리에 갇힌 동물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래도 몇 가지는 눈여겨볼 만하다.

잘 때는 먹지 않지만 그래도 혈중 포도당의 양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한다.

인간은 활동하는 낮에는 포도당을 많이 쓰고

반대로 깊이 잘 때는 적게 쓰지만 꿈을 꾸고 눈알이 움직이는 렘수면 시간에는 그 중간 정도를 쓴다. 또한 수면 전반부에는 대뇌는 물론이려니와 말초 조직에서 쓰는 포도당의 양이 줄어드는 반면 후반부에는 상황이 달라져 에너지 사용량이 조금 늘어난다.

놀라운 점은 자는 동안 신체 활동을 하지 않더라도 대사율이 15%밖에 줄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신진대사가 활발한 낮 동안 다친 근육과 면역세포를 손봐야 하고 고장난 생체 고분자 물질을 다시 만들어 다음날에 대비할 준비를 무사히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대사율은 크게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는 침대에 누워 있을 때도 조직이 꼭 해야 하는 일, 이를테면 심장 펌프를 가동하고 콩팥에서 배설물을 제거하는 작업은 한시도 멈출 수 없다. 여기에 전체 에너지의 60%가 쓰인다. 두 번째는 밥을 먹고 소화기관을 움직이고 소화, 흡수, 저장하는 일로 10%의 에너지가 쓰인다. 마지막은 일어나 앉고 활동하는 일에 쓰이는 30%이다.

이런 사정을 고려하면 잘 때도 에너지가 제법 쓰인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잠을 적게 자거나 교대 작업으로 수면의 일주기 리듬이 변할 때다.

정상적인 호르몬 분비 체계가 달라지는 것이다.

동굴 밖에서 늑대가 어슬렁거리거나 혹한이 찾아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우리 조상들도 잠을 설쳤을 것이다. 그럴 때면 코르티솔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와 혈중 포도당의 양을 늘린다. 그러다 상황이 무사히 해결되면 대사 체계가 금방 원래 상태로 돌아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비상 상황이 지속되면 손상된 세포와 면역계를 회복하는 정상적 작업에 쓸 에너지를 다른 쪽으로 돌려야 한다. 바람직하지 않은 상태가 이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몸은 장기간의 수면 부족을 기근으로 이해하는 듯 보인다.

잠이 줄면 지방을 저장하라는 신호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렙틴이 발견되면서 지방 조직은 내분비 기관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지방 조직이 커질수록 렙틴이 많이 분비된다.

이제 그만 먹고 부지런히 몸을 쓰라는 신호다.

그러나 잠을 적게 자면 상황이 거꾸로 진행된다.

렙틴 분비량이 줄면서 자꾸 더 먹으라고 뇌를 재촉하는 일이 벌어진다.

게다가 위에서 분비되는 그렐린 섭식 호르몬도 덩달아 나서서

달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덜컥 받아들인다.

 

잠을 적게 자면 다이어트 효과도 가뭇없이 사라진다.

2주간 칼로리를 제한한 피험자를 둘로 나누어 한쪽은 8.5시간, 다른 쪽은 5시간을 자게 한 실험에서 나온 결과다.

잠을 덜 자면 신진대사율이 떨어진다.

에너지를 적게 쓰지만 역설적으로 배고픈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더 나쁜 소식은 덜 잔 피험자들의 근육 손실이 더 컸다는 점이다.

근육을 덜어 지방을 만드는 데 쓴 꼴이다.

 

그러니 잠을 더 많이 자자.

등목이라도 하면서 더 자자.

특히 어린 학생들, 방학 때라도 더 재우자.

'칼럼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일매일 탐구 생활  (0) 2024.08.10
이런 여름날의 산보  (0) 2024.08.09
태도로서의 마음  (0) 2024.08.06
디지털 교과서 정책이 말하지 않는 사실  (1) 2024.08.05
부산 서면  (0) 2024.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