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말 [말글살이]
수정 2025-02-13 19:02 등록 2025-02-13 14:30
클립아트코리아
멀리서 시인이 왔다. ‘반대말이 없는 말’을 찾고 있다고 한다.
아예 반대말이 없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반대말이 없는 말이 훨씬 많다.
하지만 반대말로 묶인 낱말들이 서로 끈적하게 붙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반대말은 욕조에 머리와 발만 내밀고 있는 것처럼 가운데보다는 양극단에 이끌리는 인간 본성을 반영한다.
남자와 여자, 살다와 죽다, 아들과 딸, 오른쪽과 왼쪽, 크다와 작다, 춥다와 덥다. 두 낱말만 합하면 마치 전체를 아우르는 것처럼 보인다. 남자와 여자를 합하면 사람 전체를, 살다와 죽다를 합하면 인생 전체를, 아들과 딸을 합하면 자식 전체를 말한다는 느낌!
둘로 쪼개니 기억하기도 쉽다. 다음 질문에 답해 보시라.
‘아버지’의 반대말은?
‘홀수’의 반대말은?
‘주다’의 반대말은?
잘했다. 이런 질문은 어떤가?
‘하늘’의 반대말은? 금방 답이 떠올랐는가.
혹시 ‘땅’? 둘은 어떤 이유로 서로 정반대의 뜻을 갖는 것으로 우리 머릿속에 박혀 있는 걸까.
‘물’의 반대말은? 혹시 ‘불’? 물과 불의 어떤 점 때문에 한쪽의 반대편이 자동으로 떠오르는 걸까.
시인의 깊은 속을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각각의 말이 가리키는 대상이 다른 것과 비교되지 않고 오롯이 홀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이겠거니. 아니면 ‘반대’라는 말에서 풍기는 적대와 대립의 감정을 없애고 반대말 사이에 있는 무수한 것들을 생각하고 싶은 마음이겠거니 넘겨짚는다.
반대말은 우리를 미혹한다.
반대말에 길들여져서 벌어지지도 않은 일까지 당겨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주면’ 언젠가 ‘받을’ 것을 기대하고,
‘만나면’ ‘헤어질까’ 두렵고,
‘오면’ ‘가는’ 걸 걱정한다.
주면 주는 걸로 끝! 만나면 만나는 걸로 끝! 가면 가는 걸로 끝!
김진해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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