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읽다

이것이 날개다

닭털주 2025. 4. 21. 09:18

이것이 날개다

 

수정 2025.04.20 20:20

 

이설야 시인

 

 

뇌성마비 중증 지체·언어장애인 마흔두살 라정식씨가 죽었다.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병원 영안실로 달려갔다.

조문객이라곤 휠체어를 타고 온 망자의 남녀 친구들 여남은명뿐이다.

이들의 평균수명은 그 무슨 배려라도 해주는 것인 양 턱없이 짧다.

마침, 같은 처지들끼리 감사의 기도를 끝내고

점심식사 중이다.

떠먹여주는 사람 없으니 밥알이며 반찬, 국물이며 건더기가 온데 흩어지고 쏟아져 아수라장, 난장판이다.

그녀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정은씨가 그녀를 보고 한껏 반기며 물었다.

#%, 0%·$&*%#@!$#*?(선생님, 저 죽을 때도 와주실 거죠?)

그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왈칵, 울음보를 터트렸다.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

입관돼 누운 정식씨는 뭐랄까, 오랜 세월 그리 심하게 몸을 비틀고 구기고 흔들어 이제 비로소 빠져나왔다, 다 왔다, 싶은 모양이다. 이 고요한 얼굴,

일그러뜨리며 발버둥치며 가까스로 지금 막 펼친 안심, 창공이다.

 

문인수(1945~2021)

 

오래전 이 시를 읽고 난 후, 마음에 작은 얼룩이 하나 생겼다.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자꾸만 번지던 구절은 정식이 오빤 좋겠다, 죽어서……였다. 장례식장에서 죽어서 좋겠다니!

 

이 시는 뇌성마비 중증 지체·언어장애인 마흔두살 라정식씨가 죽었다로 시작한다. “자원봉사자 비장애인 그녀가 먼저 영안실로 달려갔, 휠체어를 탄 조문객 몇명이 장례식장으로 모여들었다. 조문을 끝내고 식사 중이었는데, 순식간에 장례식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들은 보호자 없이는 숟가락도 혼자 사용하기 힘든 중증 장애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죽은 라정식씨의 동료 이정은씨에게 죽음은 곧 새로운 몸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뒤틀린 고통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로 건너갈 수 있다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지금 수많은 라정식씨와 이정은씨에게 희망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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