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986

이 도시의 주인이 되는 방법

이 도시의 주인이 되는 방법 입력 : 2024.04.10 22:15 수정 : 2024.04.10. 22:17 서진영 저자 최근 도발적인 제목에 이끌려 읽은 (스리체어스, 2023)는 전국구 유명세를 자랑하는 빵집 ‘성심당’ 말고 딱히 손꼽을 만한 게 없는 것 아니냐 하는 도시, 대전을 조명한다. 언젠가부터 ‘노잼도시 대전’은 공공연한 우스갯소리가 됐다. 나 역시 이직하며 대전으로 이주하게 된 친구에게 “대전 노잼도시라는데 괜찮겠니?” 놀림조로 말한 적이 있다. 대전에 특별한 연이 없으니 관심 뒀을 리 없는, 고로 잘 알지도 못하면서 분위기에 휩쓸려 대전을 노잼도시로 넘겨짚었음을 고백한다. 노잼의 도시라 불리는 대전에 살며 그 지자체가 출연하여 만든 정책연구기관에서 일하는 저자 주혜진은 노잼도시라는 수식어..

칼럼읽다 2024.04.11

잠시 생각을 멈추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잠시 생각을 멈추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입력 : 2024.03.12 21:59 수정 : 2024.03.12. 22:05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말이 난무하는 시기이다. 한편으로 특정 경험, 특정 정보, 특정 이념, 특정 세력, 특정 정파, 특정 이해관계에 사로잡힌 행태인 ‘반지성주의’가 사람들을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누어 놓고, 다른 한편으로 소위 진영론과 음모론이 결합하여 사람들을 유혹하고 강요하는 시기이다. 이런 시기에는 헬레니즘 철학자들이 권했던 ‘판단 중지(epoche)’도 도움이 된다. 가끔은 판단을 멈추는 것도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판단 중지’란 헬레니즘 시대에 유행했던 회의주의 철학의 핵심적인 수행 방식이었다. 하지만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훈련을 요구하기에 쉬운 일은 ..

칼럼읽다 2024.04.09

무표정

무표정 입력 : 2024.04.08 20:08 수정 : 2024.04.08. 20:09 김상민 기자 캔버스에 아크릴(41×32㎝) 입꼬리의 크기, 눈썹의 각도, 주름의 깊이, 눈동자의 크기와 방향, 얼굴색의 차이 등. 이런 미묘한 변화로 나의 감정이 표현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나의 감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데 그게 잘되지 않습니다. 화가 나면 나도 모르게 눈썹은 찌푸려지고, 주름은 깊어집니다. 당황할 때는 얼굴이 붉어지고, 땀이 나며, 눈동자는 춤을 춥니다. 내 속마음을 숨기고 태연한 듯 있고 싶지만, 야속한 내 얇은 껍데기는 내 속마음도 모르고 솔직하게 나의 감정을 표현해 줍니다.

칼럼읽다 2024.04.09

우연과 운명 사이에서

우연과 운명 사이에서 입력 : 2024.04.03 20:24 수정 : 2024.04.03. 20:28 이은희 과학저술가 대개 구분 없이 쓰곤 하지만, 사실 우연(偶然)이란 단어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다. 하나는 어떠한 현상이 너무나도 무작위적이라 예측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경우에 쓰인다. 바닷가의 파도는 끊임없이 밀려왔다 밀려나가며 모래사장에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이들이 남기는 자국은 무작위적이어서 다음에 어떤 흔적이 남을지 예측할 수도 없고, 한 번 만들어진 자국이 재현되지도 않는다. 이는 신기한 현상이지만 기억에 남지는 않는다. 어떤 의미와 연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 의미의 우연은 좀 다르다.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 맞물려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낼 때, 우리는 이를 ‘기..

칼럼읽다 2024.04.08

정치적 자유를 주는 일이 최고의 정치교육 [세상읽기]

정치적 자유를 주는 일이 최고의 정치교육 [세상읽기] 수정 2024-04-03 18:44 등록 2024-04-03 18:25 선거를 몇 주 앞두고, 아이들에게 ‘선거 관련 특강’을 했다. 이병곤 제공 이병곤 | 제천간디학교 교장·건신대학원대 대안교육학과 교수 선거를 몇주 앞둔 날 교사 회의. 아이들에게 ‘선거 관련 특강’을 해보겠노라, 자청했다. 고학년 아이들이 곧 유권자가 될 터인데 정치 상황이나 선거제도에 관해 알려주는 일관된 정보 제공 통로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교안을 작성하려니 막막함이 밀려왔다. 아이들에게 3분 정도 분량의 뉴스 보도를 들려주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려 했다. 기사 몇 꼭지를 찾아 들어보았으나 아이들을 ‘정알못’(정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전문 용어가 넘쳐났다. 공천, 초..

칼럼읽다 2024.04.06

가공육이 먹음직스러운 이유

가공육이 먹음직스러운 이유 입력 : 2024.04.04 20:30 수정 : 2024.04.04. 20:33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 햄이나 소시지만큼 손쉬운 반찬거리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냥 삶거나 볶아도 맛있고 다른 야채들과 함께 조리하면 제법 그럴싸한 요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가공육에는 식품첨가제들이 들어 있습니다. 특히 ‘아질산나트륨’이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아질산나트륨은 지방의 산화와 유해한 세균의 번식을 막아 가공육의 보존기간을 늘리는 데 사용되는 일종의 보존제입니다. 이를 사용하지 않은 가공육은 유통기간이 10일 내외인 데 비해, 아질산나트륨을 첨가하면 30일 이상으로 늘릴 수 있다고 합니다. 보다 안전한 식품 섭취와 식재료의 낭비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을 주는 것이죠. ..

칼럼읽다 2024.04.05

넓은 집과 넓은 도시

넓은 집과 넓은 도시 [크리틱] 수정 2024-04-03 19:02 등록 2024-04-03 18:19 임우진 | 프랑스 국립 건축가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보니 한강을 덮은 물안개가 근사하다. 컨시어지 서비스로 배달된 아침식사를 마치고 출근 준비를 한다. 초고속 엘리베이터로 50층을 내려가 지하주차장에 세워둔 승용차를 타고 회사로 직행한다. 업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차를 세워두고 아파트 2층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고 아내를 불러 건물 지하의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하루를 마무리한다. (생각나는 데로 갈겨썼지만, 충분히 있을 법한) 대도시 고층주상복합아파트에 사는 어떤 이의 일상이다. 럭셔리한 인테리어의 넓은 아파트, 멋진 전망, 호텔식 서비스, 엘리베이터만 타면 도달할 수 있는..

칼럼읽다 2024.04.04

4월의 흔한 풍경

4월의 흔한 풍경 입력 : 2024.04.03 20:33 수정 : 2024.04.03. 20:42 복길 자유기고가 저자 시장 초입의 버스정류장에서 한 할머니와 버스기사가 실랑이를 벌였다. 할머니에게는 아직 정류장까지 오지 못한 세 명의 일행을 위해 시간을 끌어야 하는 미션이 있었고, 버스기사에게는 대부분이 노인인 승객들을 데리고 이 복잡한 시장통을 무사히 벗어나야 하는 미션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로의 목표가 충돌하니 언쟁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할머니는 자기 말을 무시하고 자꾸만 문을 닫으려 하는 기사가 야속했고, 버스기사는 다리를 계단에 올린 채 막무가내로 기다려달라 조르는 할머니의 행동에 화가 났다. ‘참전하겠습니까?’ 눈앞에 상태창이 깜빡였다. 지체 없이 ‘YES’ 버튼을 누른 것은 노인을 공경하는 ..

칼럼읽다 2024.04.04

사람을 알아본다는 일

사람을 알아본다는 일 입력 : 2024.04.02 20:34 수정 : 2024.04.02. 20:35 송혁기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관포지교는 두터운 우정을 이르는 말로 알려진 고사성어다. 그런데 고사의 출전인 에서는 관중의 열전 첫머리를 포숙아와의 교유로 시작하면서 “관중은 가난해서 늘 포숙아를 속였지만, 포숙아는 관중을 끝까지 잘 대해주고 그 일을 거론하지 않았다”고 했다. 관중의 회고담으로 제시된 일화도 좀 이상하다. 장사를 해도, 관직에 올라도, 전쟁에 나가도 실패만 거듭해서 탐욕스럽고 무능하며 비겁하기까지 하다는 비난을 받던 관중을 포숙아는 끝내 변호했을 뿐 아니라, 관중 때문에 죽을 뻔한 제환공에게 관중을 강력히 추천한다. 아름다운 우정을 넘어 지나친 사적 감정으로 비칠 정도다. 사마천이 관중의..

칼럼읽다 2024.04.03

사람들 말소리

사람들 말소리 입력 : 2024.04.01 20:06 수정 : 2024.04.01. 20:07 김상민 기자 종이에 아크릴(53×78㎝) 가만히 혼자 앉아 있어도 오만가지 소리가 다 들려옵니다. 바람, 새, 나뭇잎, 음악, 차 지나가는 소리들…. 이런 소리들은 그냥 흘려들을 수 있지만, 사람들 말소리는 그냥 흘러가지가 않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쫑긋하게 합니다. 그냥 조용히 머리를 비우고 멍하니 있고 싶은데, 사람들의 하루 일과와 사랑이야기, 정치 성향, 술 먹고 풀어놓는 신세 한탄까지 다 듣게 됩니다. 내 고민도 산더미인데, 다른 사람들의 고민까지 듣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시끄러운 음악으로 보호막을 치고 다시 내 속으로 빨려 들어가 봅니다.

칼럼읽다 2024.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