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읽다 986

저항하는 몸들을 보라

저항하는 몸들을 보라 이슬아 ‘일간 이슬아’ 발행인·글쓰기 교사 이 찬란한 봄, 밥알을 씹어 삼킬 때마다 떠오르는 두 얼굴이 있다. 미류와 이종걸이다. 그들이 국회 앞에서 단식 투쟁을 한 지 15일째다. 실제로 만난 적 없어도 그들의 단식이 나와 상관있다는 걸 안다. 당신과도 상관있을 것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이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과 무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것은 소수자 우대법이 아니다. 선택할 수 없는 조건으로 태어나서 살아가다 죽는 생애 주기의 순리대로라면 모두가 한 번 이상 겪게 될 정체성을 차별로부터 보호하는 법이다. 그 법이 아직 없어서 누군가는 곡기를 끊는다. 생사만큼이나 중대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무수한 시민의 절박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법 제정은 거대 양당의 방치 속에..

칼럼읽다 2022.05.05

이런 비문명인들 같으니!

이런 비문명인들 같으니! 고병권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고맙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공이 크다. 스피커 큰 사람이 욕해대니 욕먹는 사람도 주목을 받는다. 그가 아니었다면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역사가 이처럼 조명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일반단체라고 해도 지하철을 막는 방법으로 투쟁하면 실정법 위반”인데 이런 상황을 “몇 개월이나” 정치인들이 “장애인단체 시위라는 이유로 방치”해왔다고 분개했다.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이들의 시위를 “비문명적 관점”의 불법 시위라고 부르기도 했다. ‘비문명적’이라고 에둘러서 말했지만 실상은 문명사회에 안 맞는 ‘야만적’ 시위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준석 대표가 말한 장애인들의 비문명적 시위와 이것을 방치한 역사는 더 오래되었다. 몇 개월이 아니라 수십년이..

칼럼읽다 2022.05.05

대통령 관저와 여주 영릉

대통령 관저와 여주 영릉 이주현ㅣ 이슈부문장 지지율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기어이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고집한 명분은 ‘제왕적 대통령제’다. 지난 3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와대 이전 티에프(TF)’는 한때 ‘청와대에서 일단 근무를 하고 시간을 두고 대통령실을 이전하자’는 속도조절론도 검토했으나, 윤 당선자가 강하게 ‘용산 집무실에서 업무 시작’으로 드라이브를 걸었다고 한다. ‘청와대로 가는 순간 내가 제왕적 대통령제에 찌들 것 같다’고 토로했다는 것이다. 윤 당선자가 그리도 혐오하는 제왕적 대통령제란 무엇인가. 헌법상 한국 대통령은 국가수반인 동시에 행정수반이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지만 주정부가 실질적 행정권을 쥐고 있는 연방제 국가라는 점에서 한국 대통령이 국..

칼럼읽다 2022.05.05

질량 작을수록 쉽게 움직이고 쉽게 멈춘다

질량 작을수록 쉽게 움직이고 쉽게 멈춘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같은 힘으로 밀어도 쉽게 움직이는 물체와 잘 움직이지 않는 물체가 있다. 커다란 바위는 아무리 밀어도 꿈쩍하지 않지만, 크기가 작은 바위는 조금은 움직일 수 있고, 이보다 더 작은 돌멩이는 슬쩍 밀어도 쉬이 움직인다. 힘으로 밀 때 물체가 안 움직이려고 뻗대는 정도가 물리학의 질량이다. 물질의 양이 많으면 질량도 크다. 작은 당구공이 커다란 볼링공보다 쉽게 움직이는 이유다. 질량이 큰 물체가 가만히 정지해 있으면 밀어도 잘 움직이지 않고, 막상 움직이기 시작하면 멈추기도 어렵다. 멈춰 있다 움직이거나, 움직이다 멈추거나, 물체의 운동 상태가 변한다. 물체가 현재의 운동 상태를 지속하려는 경향을 관성이라고 한다. 질량이 바로 관성의 척..

칼럼읽다 2022.04.30

적어도 한 사람은

적어도 한 사람은 이소영 제주대 사회교육과 교수 “얼핏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인간으로 보이잖아요. 근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사람은 본인이 지향하는 특정한 가치만은 한 번도 버린 적 없어요. 가끔 존재하죠. 그런 사람들이.” 제주에 출장 오신 선생님과 식사하던 중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분이 누군가를 두고 이렇게 평했다. 언급하신 그 공인에 대해 사실 그다지 관심 없었지만 저 말씀은 깊이 닿았다. 발화내용에 동의했다기보다 발화자의 시선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위안 같은 걸 받았다. 다음날 커피 마시면서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 아침 방송에서 본 에피소드를 들려주셨다. 농담의 소재인 줄 알고 키득거릴 채비하던 내게 그분이 이야기했다. 겉으론 실리를 추구하며 세속에 젖어 사는 것처럼 보여도 혀끝만..

칼럼읽다 2022.04.30

3년 만에... 한적한 골짜기가 '아트 밸리'로

3년 만에... 한적한 골짜기가 '아트 밸리'로 경북 상주 연악산에 위치한 갤러리 카페 ‘포플러나무아래’와 ‘에파타’ 이야기 22.04.09 11:11l최종 업데이트 22.04.09 11:11l장호철(q9447) ▲ 갤러리 카페 "포플라나무아래"는 2018년 6월에 문을 열어 지금껏 60여회의 전업 작가와 동호인 모임의 각종 전시회를 치러냈다. ⓒ 장호철 며칠 전 갤러리 카페 '포플러나무아래'가 있는 상주 연악산 골짜기를 다녀왔다. 정확히 말하면 '포플러나무아래'를 운영하는 안인기 화백(60)을 만났고, 카페 건너편 언덕에 문을 연 새 갤러리 '에파타(Ephatha)'를 둘러보고 돌아왔다. 은퇴한 미술 교사, 무료 갤러리 '포플러나무아래'를 열다 안 화백이 연악산 갑장사로 오르는 길섶에 갤러리 카페 '포..

칼럼읽다 2022.04.30

무책임한 선장의 사회

무책임한 선장의 사회 최성용 청년연구자 공부한다는 건 특혜다.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대학원생으로서 단 한 번도 내가 지닌 특권을 잊어본 적 없다. 물론 “대학원생은 사람도 아니”라는 자조가 심심찮게 들리는 시절이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와 일을 병행하고 중위소득 100%에 미달하는 돈으로 근근이 살아가지만, 그래도 공부와 연구를 업으로 삼으며 특정 분야 전문가가 되기 위한 훈련 과정을 거치고 있다는 건 특권이다. 더욱이 내가 전공하는 분야에서 나의 말과 글은 전문가로서 권위와 영향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이 사회가 전문가를 키워내어 그에게 합당한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므로, 내가 지닐 권위는 사회에 기여할 의무를 다하는 데 쓰여야 한다. 이런 생각은 사회적 신뢰의 기초가 된다. 직업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다하..

칼럼읽다 2022.04.30

고즈넉한 죽음

고즈넉한 죽음 홍인혜|시인 한 그루의 나무와 살았다. 몇해 전에 들여온 녹보수 화분이었다. 어른 가슴께 정도 오는 키에 반들거리는 잎사귀가 빼곡한 멋진 식물이었다. 나는 원예에 전혀 재능이 없지만 나의 유일한 반려나무를 애지중지 가꿨다. 동거하기 시작한 첫해에는 화분흙에 묻어온 흰개미를 소탕하느라 애를 먹었다. 이 약 저 약 바꿔 쳐가며 바글대던 개미 군단을 겨우 몰아냈다. 이듬해에는 깍지벌레와 장기전을 벌였다. 잎사귀 뒷면과 줄기에 불법 거주하던 벌레들을 테이프로 하나하나 떼어내며 나무를 간호했다. 매서운 겨울 날씨도 나무에겐 시련이었다. 적어진 일조량, 건조한 기후, 무거워진 실내공기 삼박자 때문에 녹보수는 겨울 끝물엔 항상 기력을 잃곤 했다. 나무가 초록색 불꽃이라면 2월 즈음엔 언제나 사위기 직전..

칼럼읽다 2022.04.30

위근우의 리플레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윤석열의 안하무인과 유재석의 딜레마

위근우의 리플레이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윤석열의 안하무인과 유재석의 딜레마 위근우 칼럼니스트입력 : 2022.04.22. 16:10 길 위로 나가길 포기한 프로그램, 하고 싶은 말만 한 권력자 유재석도 살릴 수 없는 토크가 있다. 지난 20일 방송된 tvN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편 이야기다. 요즘 가장 큰 고민에 대해 질문하자 “국민이 편하게 잘 살 수 있는 좋은 결과를 내놔야 되기 때문에 어떡하면 잘할 수 있는지 여러 가지로 고민도 한다”는 식의 추상적이고 원론적인 답변이나 내놓겠다고 굳이 인기 토크 프로그램을 찾아온 사람에게 뭘 더 꺼내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나마도 젊은 시절 검찰에서 밥총무를 맡았던 이야기나, 친구 결혼식 함진아비를 하러 가는 길에 공부하기 싫어 읽은 법전 구석의 내용..

칼럼읽다 2022.04.30

더불어민주당의 온더록, 박지현

더불어민주당의 온더록, 박지현 구혜영 정치에디터 드라마 는 불행한 시대를 건너왔던, 지금도 거친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현지인과 외지인이 제주를 무대로 얽히고설키며 변화하는 내용이 드라마의 줄기다. 주인공 은희는 생선 비늘 털어내듯 억척스러운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제주 푸릉마을의 생선 장수다. 은희는 딸의 골프 유학 뒷바라지에 빚투성이로 고향 제주에 떠밀려온 첫사랑 한수와 30년 만에 마주한다. 두 사람은 동창회에서 ‘위스키 온더록’이란 노래를 함께 부르며 고단했던 지난 세월을 위로했다. 하필 이 노래가 주제곡이었을까. 당초 ‘암초 위에 좌초된 배’를 뜻하는 말이었던 ‘록’(rock)은 19세기 미국 서부개척시대엔 다이아몬드를 뜻하는 광부들의 은어였다고 한다. 현지인과 외지인의..

칼럼읽다 2022.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