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쓰다

청소년에게 그림책을

닭털주 2022. 2. 10. 12:49

중고등 1면_메인 <아침독서신문>

 

그림 길벗어린이(『모르는 척』) 제공

 

청소년 성장소설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내가 좋아했던 책의 폭이 너무 좁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청소년들에게 색다른 책을 권해보려 고민하다가 예전에 도서관직무연수를 받을 때 만났던 그림책 『모르는 척』(길벗어린이)이 생각났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일이었기에 엄두를 못 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림책에 대한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오래 전 유치원에 다니던 딸에게 그림책을 읽어준 기억,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 서울모임에서 책놀이 연수를 진행하면서 선생님들이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은 일 등. 그러다가 5년 전부터 국어 수업시간에 그림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의외로 아이들이 너무 좋아했다. 특히 첫 시간에 읽어준 『로쿠베, 조금만 기다려』(양철북)는 최고였다. 5년간 이 책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은 열광 그 자체였다. 그날 이후 3, 4월은 아이들에게 ‘로쿠베 선생님’으로 불리기도 하고, 내가 복도를 지나갈 때면 아이들이 주먹 쥔 오른손을 들고 “로쿠베, 힘내”라고도 했다. 내가 그림책을 읽어준 모습 그대로였다. 그림책이 좋아졌고, 여러 모임에 나가 그림책을 공부하게 되었다. ‘한 번 읽어주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그림책 읽어주기가 좋은 반응을 보이자, 지속적으로 읽어주게 되었고, 그림책을 공부하면서 점점 빠져들게 되었다.

얼떨결에 시작했던 그림책 읽어주는 일은 이젠 하나의 습관이 되었다. 사실 처음부터 그림책을 좋아해서 읽어준 것은 아니었다. 인사동에서 「우연에서 필연을 찾다」라는 전시를 본 적이 있다. 화가의 수묵화 속에서 찾은 필연 이야기가 나에게 와 닿으면서 매주 읽어주는 그림책 이야기가 떠올랐다. 세상일들은 수많은 우연 속에서 필연적인 일이 중요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나에게 그림책은 필연 이야기를 찾아가는 축복 같은 것이다.

 

그림책 이야기

첫 국어시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림책 이야기를 꺼낸다. 아이들은 대부분 비웃는다. 자신들은 초등학교 때 끝낸 책들을 선생님이 좋아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편견이며 왜 그런지 그 이유를 말해준다. 그림책은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든 연령대가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야기가 짧고 그림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림만 읽어도 되고 함께 읽어도 된다. 한편 시처럼 짧기 때문에 깊이 있는 읽기가 가능하고 그림을 통한 무한한 상상력을 경험할 수도 있다. 순수함을 찾고 예술을 맛보려는 어른들도 함께할 수 있다. 그림책의 1차 대상은 어린이지만 어른들도 어린이 이상으로 즐거운 책읽기를 경험할 수 있다. 그뿐인가. 읽어주기와 읽기의 의미가 다양하게 교차하는 것이 그림책이다. 어려서는 어른이 읽어주고, 자라서는 스스로 읽으며, 더 자라면 어른에게 읽어줄 수도 있다.

오늘도 국어수업시간에 그림책을 읽어주었다. 매주 목요일이 다가오면 어떤 그림책을 읽어줄지 고민에 빠진다. 아무리 좋은 그림책이라도 많이 알려진 그림책은 흥미가 떨어지니 오래전에 나왔던 그림책을 포함하여 새로운 그림책을 고르는 등 나만의 그림책 목록을 고민해야 한다.

청소년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교사가 그림책을 좋아해야 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교사독서동아리에서 ‘그림책’을 주제로 활동한 적이 있는데, 그림책이 정말 재미 없다고 말하는 선생님도 보았다. 그건 그림책이 내용으로만 읽히고 마음으로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 순수한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림책을 좋아하게 되면 읽을 때마다 그림책 속 주인공이 되어 순수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데, 보통 어른들은 그림을 보고 느끼기보다는 글자를 보면서 내용을 이해하려고 한다. 교사 자신이 그림책을 즐기지 못하는데 어떻게 청소년들이 그림책을 즐기게 만들 수 있겠는가?

다음으로 그림책 선택의 문제가 있다. 분명한 것은 지식 중심의 그림책이 아니어야 한다는 점이다. 감성과 예술성을 살려주고 이야기의 구조를 이해시키는 등 그림책을 읽어주어야 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물론 그림책을 읽다 보면 책 속 지식을 저절로 알게 되기도 한다. 다음으로 아이들의 흥미를 끌 수 있는 책이어야 한다. 이것 역시 만만찮은데 이럴 때는 먼저 잘 알려진 책을 읽어주면서 고민하는 것이 좋다. 좋은 그림책이라 할지라도 왜 좋은지를 알지 못하고 읽어준다면 그 책은 좋은 책이 되지 못한다. 읽어주는 사람이 제대로 그 책을 알고 읽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림책을 읽어줄 때는 아이들의 반응과 리듬을 살펴가면서 읽어주는 것이 좋다. 적어도 중고등학생들에게는 그들에게 맞는 그림책 읽기 방식이 있다. 이 역시 읽어주는 사람과 듣는 학생들과의 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나의 경우 남학생과 여학생도 다르게 읽어준다. 여학생은 좀더 감성적인 접근법을 시도하는 반면, 남학생들은 간단하게 읽어주는 식이다. 또 ‘자유’와 같이 깊은 생각을 필요로 하는 주제의 그림책은 읽어주기 전에 어떻게 고민하면서 들어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를 미리 해줄 필요도 있다. 처음부터 진지하게 빠져들 수 있도록 톤을 유지해야 한다.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마법상자

힘든 아이들에게 그림책만큼 용기를 줄 수 있는 책이 있을까? 특히 여러 가지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청소년들에게 그림책은 마법상자와 같다. 나도 우울할 때면 읽는 그림책이 따로 있다. 좋아하는 그림책은 무조건 서점에서 산다. 그림책을 품고 있기만 해도 우울함이 사라지고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기초학력부진학생들과의 수업시간에 그림책을 활용한 적이 있다. 그림책을 읽어준 이유는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기 위해서다. 청소년들의 기초학력이 부진한 이유 중 많은 부분이 공부하기 싫어하는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부터 다독거려주고 책읽기가 즐겁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그림책은 최고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읽기에 흥미를 갖도록 도와주고 그림책의 내용을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준다. 그러면서 조금씩 긴 이야기가 담긴 그림책으로 내용을 파악하고 정리하고 질문하는 공부를 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소위 문제학생이라고 불리는 학생들에게도 유용할 수 있다. 지역공부방이나 가출청소년 쉼터에 있는 청소년들은 마음이 힘든 경우가 많다. 그림책은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순수함을 되살리게 할 수 있다. 다만 책의 내용이 그들의 마음을 더욱 상하게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물론 지도하는 분이 어떻게 이끌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림책으로 어떻게 수업하나

그림책으로 수업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고민을 해야 한다. ‘어떤 대상인가’ ‘어떤 책으로 할 것인가’ ‘어떤 방법으로 할 것인가’다. 그림책으로 ‘전체의 수업을 이끌어갈 것인지’ 아니면 ‘처음 단계에서만 사용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어떤 대상인가에 따라 선택되는 책이 달라진다.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인문학 수업이라면 처음에는 책과 친구가 되는 이야기가 담긴 책을 고르고, 점차 자신, 친구, 세상으로 범위를 넓혀가며 생각할 수 있는 책을 선택한다. 책의 내용이 달라지면서 책의 길이와 깊이도 달라지게 된다.

어떤 그림책은 읽어가면서 수업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고, 어떤 그림책은 다 읽고 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예술에 대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그림책은 기초적인 이야기부터 그림을 함께 보면서 예술을 이해하고 즐기는 방향으로 수업을 진행하면 되지만,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은 미리 읽어오게 하거나, 그 시간에 혼자 읽거나, 돌아가면서 읽고 나서 느낌이나 생각을 나누면 된다. 구체적인 수업지도안은 대체로 세 가지 단계로 하면 된다. 마음열기와 생각펼치기, 생각갈무리다. 책으로 이끌기 위한 마음열기는 짧게 하고, 구체적인 책 이야기는 생각펼치기 단계에서 하고, 책이야기를 정리하거나 실제 적용 이야기는 마지막에 하면 된다.

교사가 읽어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법도 있다. 이때는 구체적인 지도안보다는 교사가 부분적으로 혹은 전체를 읽어주고 중요한 부분에 대하여 서로 질문을 주고받으면 된다. 그냥 느낌만을 적고 책과 소통할 수도 있다.

 

청소년들에게 그림책은 보물창고와 같은 것이다. 그 보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선생님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물론 그림책이 보물창고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끼고 깨달은 다음에야 가능한 일이다. 그림책으로 청소년들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세상 속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을 길러주고 세상이 아름답고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더불어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